nicelife365(주신삶에 감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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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서도 전도함[1-2절] 우리가 구원을 얻은 후에 안즉 그 섬은 멜리데라 하더라. 토인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 비가 오고 날이 차매 불을 피워 우리를 다 영접하더라.

멜리데는 말타(Malta)라는 섬으로 이탈리아 남단에 있는 시실리아 섬 남쪽의 작은 섬이다. 멜리데 섬 원주민들은 바울 일행에게 특별한 동정과 친절을 베풀었다. 비가 오고 날이 찬 때이었으므로 그들은 불을 피워 바울 일행을 영접하였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이었다. 남을 측은히 여기는 마음은 하나님께서 본래 사람 속에 두신 선한 마음이다. 

[3-6절] 바울이 한 뭇 나무를 거두어 불에 넣으니 뜨거움을 인하여 독사가 나와 그 손을 물고 있는지라(카답토 kaqavptw)[그의 손에 꼭 달라붙어 있는지라](KJV, NASB, NIV). 토인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달림을 보고 서로 말하되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원을 얻었으나 공의가 살지 못하게 하심이로다 하더니 바울이 그 짐승을 불에 떨어버리매 조금도 상함이 없더라. 그가 붓든지 혹 갑자기 엎드러져 죽을 줄로 저희가 기다렸더니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려 생각하여 말하되 신(神)이라 하더라.

한 뭇은 한 짐보다 작고 한 줌보다 큰 단위를 뜻한다. 열 줌은 한 뭇이고 열 뭇은 한 짐이다. 멜리데 섬 원주민들의 도덕성과 종교성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주신 은혜이다. 

[7-10절] 이 섬에 제일 높은 사람 보블리오라 하는 이가 그 근처에 토지가 있는지라. 그가 우리를 영접하여 사흘이나 친절히 유숙하게 하더니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뒤센테리아)(전문적 의학용어)(dy- sentery)에 걸려 누웠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 이러므로 섬 가운데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고 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에 우리 쓸 것을 배에 올리더라.

그 섬의 추장 보블리오의 사흘 간의 친절과 호의는 어려움 속에서도 바울에게 주신 하나님의 위로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통해 보블리오의 부친의 열병과 이질을 치료해주셨고 또 그 외에 다른 병자들도 고침을 받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선행을 갚아주신다(마 6:3-4). 바울은 그들에게 복음도 전했을 것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며 바울 일행에게는 큰 위로와 기쁨이었을 것이다.

[11-15절] 석 달 후에 그 섬에서 과동(過冬)한[겨울을 지난] 알렉산드리아 배를 우리가 타고 떠나니 그 배 기호는 디오스구로(Diovskouroi)[‘제우스의 (쌍둥이) 아들들’이라는 뜻)라. 수라구사[시라큐스]에 대고 사흘을 있다가 거기서 둘러가서 레기온에 이르러 하루를 지난 후 남풍이 일어나므로 이튿날 보디올에 이르러 거기서 형제[형제들]를 만나 저희의 청함을 받아 이레를 함께 유하다가 로마로 가니라. 거기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압비오 저자[시장]와 삼관[세 채의 여관들]까지 맞으러 오니 바울이 저희를 보고 하나님께 사례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

수라구사[시라규스]는 시실리아 섬 동쪽 항구이며 레기온은 시실리아 섬 건너편 이탈리아 반도 최남단 항구이었다. 바울을 맞으러 나온 사람들은 주의 진실한 제자들이었음에 틀림없다. 주께서는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라고 말씀하셨다(마 10:40). 하나님께서는 그의 사랑하시는 종 바울에게 큰 위로를 주셨다.

[16절] 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백부장은 죄수들을 시위대장에게 넘겼으나](전통사본) 바울은 자기를 지키는 한 군사와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

그들은 로마에 들어갔고 백부장은 죄수들을 시위대장에게 넘겼다. 그러나 바울은 아마 백부장의 특별한 배려로 그를 지키는 한 군사와 함께 따로 있게 허락되었다.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바울과 함께 로마에 도착하여 바울 곁에 계속 있었던 것 같다. 바울은 ‘그의 우거하는 집’(23절) 혹은 ‘자기 셋집’(30절)에서 2년 동안 유했다. 바울이 로마에 도착한 때는 주후 62년경이며, 그가 그 재판에서 풀려났다가 두 번째로 투옥되어 순교한 때가 주후 68년 봄이라고 본다.

[17-19절] 사흘 후에 바울이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모인 후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내가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 조상의 규모를 배척한[관습에 대해 잘못한] 일이 없는데 예루살렘에서 로마인의 손에 죄수로 내어준 바 되었으니 로마인은 나를 심문하여 죽일 죄목이 없으므로 놓으려 하였으나 유대인들이 반대하기로 내가 마지못하여 가이사에게 호소함이요 내 민족을 송사하려는 것이 아니로라.

바울은 유대인들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자신이 조상의 관습에 대해 잘못한 일이 없는데 로마인의 손에 죄수로 내어준 바 되었으므로 부득이 가이사에게 호소한 것이요 자기 민족을 송사하려 한 것이 아니었음을 변명하였다. 그는 그들이 자신에 대해 오해하거나 잘못된 선입견을 갖지 않기를 원하였다. 바울의 처신은 지혜롭고 정당했다.  그가 그의 결백함과 신임성을 변호하는 일은 필요하고 지혜롭고 정당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20-22절] 이러하므로 너희를 보고 함께 이야기하려고 청하였노니 이스라엘의 소망을 인하여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노라. 저희가 가로되 우리가 유대에서 네게 대한 편지도 받은 일이 없고 또 형제 중 누가 와서 네게 대하여 좋지 못한 것을 고하든지 이야기한 일도 없느니라. 이에 우리가 너의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하노니 이 파에 대하여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 줄 우리가 앎이라 하더라.

‘이스라엘의 소망’은 메시아의 오심과 그의 죽음과 부활을 가리켰다고 본다. 그것은 죽은 자들의 부활에 대한 소망이기도 하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 때문에, 또 죽은 자들의 부활과 영생의 소망 때문에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다. 로마에 사는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는 신자들이 사람들의 반대를 받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23절] 저희가 일자를 정하고 그의 우거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며](원문) 증거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의 일로 권하더라[설득하더라].

하나님의 나라는 성경의 주요 주제이며 복음의 핵심이기도 하다. 그것은 하나님의 통치를 의미하며 죄인들이 하나님 없이 사는 상태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와 그 앞에 순종하는 것을 가리킨다. 주 예수께서는 처음 복음을 전하실 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말씀하셨다(마 4:17). 하나님의 나라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의 심령 안에서 시작된다. 바울은 이 복음을 구약성경에 근거해 증거하고 권하였다.

[24-29절]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일러 가로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로 너희[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을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와 나의 고침을 받을까 함이라 하였으니(사 6:9-10)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을 이방인에게로 보내신 줄 알라. 저희는 또한 들으리라. [그가 이 말을 마칠 때 유대인들은 서로 큰 쟁론을 하며 물러갔더라](전통사본).

복음이 증거될 때에 믿는 자도 있으나 믿지 않는 자도 있다. 복음은 사람들을 두 부류로 나눈다. 항상 그런 현상이 있었다. 이사야의 예언은 당시의 유대인들에게 적절하였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고 그의 가르침을 들었으나 그를 알지 못했고 오히려 그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 바울이 곳곳에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을 때에도 다수의 유대인들은 그가 전한 구원의 도를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그를 대적했다. 그것은 이상한 영적 어두움이었다. 참으로, 구원은 전도자에게나 죄인 자신에게 달려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긍휼에 달려 있다(롬 9:16). 하나님께서는 구주이시다. 물론 죄인 자신이 회개하고 믿어야 하지만,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가 아니고서는 아무도 회개치 못하고 믿지 못할 것이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다.

[30-31절] 바울이 온 이태[2년]를 자기 셋집에 유하며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

그 2년은 재판받는 기간이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죄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와 그가 보내주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에게 순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바울은 비록 죄수의 몸이지만 복음을 담대히 전하였다. 복음은 그 후에도 계속 온 세상에 전파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계속 전파될 것이다.

바울의 전도에는 두 가지 상반된 반응이 있었다. 전도에는 항상 두 가지 반응이 있다. 사람은 영적으로 심히 어두워져 있고 무능하여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아무도 복음을 깨닫고 회개하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 얻지 못할 것이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들의 구원을 위하여 또 구원받은 자들의 성화를 위하여 하나님의 긍휼을 구할 것밖에 없고 오직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또 회중의 반응이 어떠하든지 낙심치 말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의와 진리의 말씀을 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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