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celife365(주신삶에 감사하자)

728x90

[1-2절] 우리의 배 타고 이달리야로 갈 일이 작정되매 바울과 다른 죄수 몇 사람을 아구사도 대(隊)의 백부장 율리오란 사람에게 맡기니 아시아 해변 각처로 가려 하는 아드라뭇데노 배에 우리가 올라 행선할새 마게도냐의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도 함께하니라.

사도 바울은 로마에 가서 전도하기를 원하였는데, 이제 죄수의 몸으로 가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때 때때로 우리가 예상치 못하는 방식으로 들어주신다. 아리스다고는 바울과 함께 로마 옥에 갇혔던 자요 그의 동역자이었다(골 4:10; 몬 24).

[3-8절] 이튿날 시돈에 대니 율리오가 바울을 친절히 하여 친구들에게 가서 대접받음을 허락하더니 또 거기서 우리가 떠나가다가 바람의 거스림[거스름]을 피하여 구브로 해안을 의지하고 행선하여 길리기아와 밤빌리아 바다를 건너 루기아의 무라 성에 이르러 거기서 백부장이 이달리야로 가려 하는 알렉산드리아 배를 만나 우리를 오르게 하니 배가 더디 가 여러 날 만에 간신히 니도 맞은편에 이르러 풍세가 더 허락지 아니하므로 살모네 앞을 지나 그레데 해안을 의지하고 행선하여 간신히 그 연안을 지나 미항(美港)이라는 곳에 이르니 라새아 성에서 가깝더라.

백부장 율리오는 바울에게 호의를 베풀었고 바울이 친구들의 대접을 받는 것을 허락하였다. 시돈에서 미항에 이르기까지는 약 1,000킬로미터 이상 되는 긴 여정이었고 거기서 이탈리야까지는 갑절을 더 가야 하는 먼 길이었다.

[9-11절]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행선하기가 위태한지라. 바울이 저희를 권하여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행선이 하물[짐]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가 있으리라 하되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금식하는 절기는 유대인의 속죄일인 9월말 즈음을 가리킨다. 가을에는 바람이 많이 불어서 항해하기에 좋지 않았던 것 같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견지명이 있었지만, 백부장은 선장과 선주(船主)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었다. 그것이 이성적으로는 당연한 일일 것이다. 선장과 선주는 항해에 관한 전문가들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과 밀접히 교제하는 하나님의 종들에게는 때때로 현실을 더 정확히 보는 눈과 바른 통찰력과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견지명도 있다.

[12-14절] 그 항구가 과동(過冬)하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과동하자 하는 자가 더 많으니 뵈닉스는 그레데 항구라. 한편은 동북을(카타 리바)[남서](KJV, NASB, NIV), 한편은 동남을(카타 코론)[북서로](KJV, NASB, NIV) 향하였더라. 남풍이 순하게 불매 저희가 득의한 줄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가까이 하고 행선하더니 얼마 못되어 섬 가운데로서 유라굴로[유로클뤼돈](전통본문)라는 광풍이 대작하니.

그들은 처음에 자기들의 계획대로 잘되는 줄 알고 출발하였으나 얼마 못되어 유로클뤼돈이라는 큰 광풍이 일어났다. 우리는 인생의 여정을 너무 쉽게 생각해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너무 어렵게 생각해서도 안 된다. 하나님께서 도우시고 인도하시면 어렵게 보이는 것도 쉽게 해결되고 하나님께서 버려두시면 쉬워 보이는 것도 어려운 일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성도는 날마다 순간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야 한다. 잠언 3:6은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고 말하였다.

[15-20절] 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 가다가 가우다[클라우덴](전통본문)라는 작은 섬 아래로 지나 간신히 거루[작은 배]를 잡아 끌어올리고 줄을 가지고 선체를 둘러 감고 스르디스(빨아들이는 모래, quick-sand)에 걸릴까 두려워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가더니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저희 손으로 내어버리니라. 여러 날 동안 해와 별이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졌더라.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종 바울에게 이 어려운 일을 주셨다. 우리는 세상 속에 살고 있고 세상의 고난을 어느 정도 함께 당한다. 우리에게 닥치는 모든 일이 다 하나님의 허락 속에서만 이루어짐을 믿으며 극심한 고난까지도 성도를 단련시키는 유익한 일임을 믿는다. 로마서 8:28은,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말했다.

[21-26절]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나의 속한 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그러나 우리가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

하나님께서는 그 풍랑 속에서도 바울을 떠나지 않으시고 함께하셨고 그를 위로하셨고 그를 통해 그 배에 있던 많은 사람들을 위로하셨고 또 그를 통해 이루실 일을 착오 없이 이루고 계셨다.

[27-32절] 열 나흘째 되는 날 밤에 우리가 아드리아 바다에 이리저리 쫓겨가더니 밤중쯤 되어 사공들이 어느 육지에 가까와지는[가까워지는] 줄을 짐작하고 물을 재어보니 이십 길이 되고 조금 가다가 다시 재니 열다섯 길이라. 암초에 걸릴까 하여 고물[배 끝부분]로 닻 넷을 주고 날이 새기를 고대하더니 사공들이 도망하고자 하여 이물[배 앞쪽]에서 닻을 주려는 체하고 거루[작은 배]를 바다에 내려놓거늘 바울이 백부장과 군사들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이 배에 있지 아니하면 너희가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이에 군사들이 거룻줄을 끊어 떼어버리니라.

아드리아 바다는 마게도냐-아가야 지방과 이탈리아 사이의 바다이다. 바울은 백부장과 군사들에게 사공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했다.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신 주권적 하나님이시며 기적을 행하신 자이시지만, 일반적으로는 자연 법칙과 수단들을 사용하신다. 배를 운전하는 데는 사공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는다 해서 우리는 해야 할 책임을 회피하거나 등한히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우리에게 맡겨진 의무를 다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자연적 수단들을 다 사용해야 한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결코 소극적이고 책임 회피적 태도를 가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책임을 다해야 한다.

[33-34절] 날이 새어 가매 바울이 여러 사람을 음식 먹으라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기다리고 기다리며 먹지 못하고 주린 지가 오늘까지 열 나흘인즉 음식 먹으라 권하노니 이것이 너희 구원을 위하는 것이요 너희 중 머리터럭 하나라도 잃을 자가 없느니라 하고.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음식을 먹고 육신의 건강과 힘을 회복해야 했다. 바울은 그들 중 한 사람도 죽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하나님의 섭리의 일반적 방식은 자연적 수단을 사용하시는 것이다. 사람이 육신의 생명을 위해서는 음식을 먹는 것이 필요하다. 음식을 먹지 않고 건강한 것은 하나님의 일반적 섭리 방식이 아니다. 

[35-41절]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떼어 먹기를 시작하매 저희도 다 안심하고[기꺼이] 받아먹으니 배에 있는 우리의 수는 전부 276인이러라. 배부르게 먹고 밀을 바다에 버려 배를 가볍게 하였더니 날이 새매 어느 땅인지 알지 못하나 경사진 해안으로 된 항만이 눈에 띄거늘 배를 거기에 들여다 댈 수 있는가 의논한 후 닻을 끊어 바다에 버리는[닻을 치워버리고 자신들을(혹은 배를) 바다에 맡기는](KJV) 동시에 킷줄을 늦추고 돛을 달고 바람을 맞추어 해안을 향하여 들어가다가 두 물이 합하여 흐르는 곳을 당하여 배를 [땅에] 걸매 이물[뱃머리]은 부딪혀 움직일 수 없이 붙고 고물[배 끝부분]은 큰 물결에 깨어져가니.

바울의 마음에는 굳센 믿음과 평안이 있었다. 환난과 고통 중에서도 성도는 하나님 안에서 감사하며 평안을 누릴 수 있다. 그의 믿음의 행위를 본 사람들은 다 기꺼이 음식을 취하였다. 바울은 고난 중에서도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증거하는 기회를 가졌다.

[42-44절] 군사들은 죄수가 헤엄쳐서 도망할까 하여 저희를 죽이는 것이 좋다 하였으나 백부장이 바울을 구원하려 하여 저희의 뜻을 막고 헤엄칠 줄 아는 사람들을 명하여 물에 뛰어내려 먼저 육지에 나가게 하고 그 남은 사람들은 널조각 혹은 배 물건에 의지하여 나가게 하니 마침내 사람들이 다 상륙하여 구원을 얻으니라.

백부장은 한번 더 바울에게 호의를 베풀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죽음의 위험에서 지키시기 위해 백부장을 사용하셨다. 여기에 다시 한번 더 하나님의 섭리의 일이 증거된다. 배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헤엄을 치거나 널조각이나 배 물건을 의지해 다 구원을 얻었다.

 

성도의 삶에는 간혹 유로클뤼돈 같은 광풍이 있지만, 그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를 향하신 그의 뜻은 착오 없이 하나씩 이루어져 간다. 세상은 수고로운 세상이고 환난이 많은 세상이다. 게다가 성도에게는 특별한 고난도 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고 말했다(빌 1:29). 그러나 주께서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마 28:20). 또 그는 우리 속에 오실 성령께서 영원히 우리와 함께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요 14:16). 성령께서는 이 세상에 오셨고 우리 속에 영원히 거하신다. 바울은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노라. 주는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하실지어다”라고 말했다(살후 3:16). 히브리서 13:5는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고 말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반적인 섭리 방식을 알고 우리의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 기적은 하나님의 일반적 섭리 방식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진리를 계시하고자 하실 때 그것을 확증하기 위해 사용하신 방법이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그의 주권적 작정과 주권적 섭리를 믿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책임과 의무를 회피하지 말고 도리어 충실히 감당해야 한다.

이 글을 공유합시다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Talk kakaostory naver 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