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celife365(주신삶에 감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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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절] 사울이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사울은 스데반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겼다. 잘못된 지식은 잘못된 판단을 가져온다. 우리는 어떤 일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과 잘못된 감정을 버리고 바른 생각과 판단을 가져야 한다. 그 날에 예루살렘 교회에 큰 핍박이 났다. 신앙생활의 길이 항상 평안의 길은 아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에게 늘 평안이 있지만 때때로 고난과 핍박도 예상된다. 예루살렘 교회는 핍박으로 인하여 사도들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졌다. 사도들이 예루살렘에 머문 것은 핍박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함과 충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아마 예루살렘에 아직도 더 전도할 일이 남았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고난 중에서도 우리의 직분과 직무를 완수해야 한다.

[2절]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3절] 사울이 교회를 잔멸[파괴]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끌어내어] 옥에 넘기니라.

누가는 사울에 대하여 서술한다. 사울의 열심은 특별하였다. 그는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교회를 다 파괴하려 하였다. 그는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내어 옥에 넘겼다. 그는 후에 갈라디아서 1:13-14에서,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핍박하여 잔해[파괴]하고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유전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4-8절] [그러므로]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표적들]도 보고 일심으로 그의 말하는 것을 좇더라[주목하더라].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으니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유대와 사마리아로 흩어진 사람들은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하였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었다. 성도에게 닥친 고난은 유익하다. 로마서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개인적으로도, 교회적으로도 그러하다. 일곱 집사 중 하나인 빌립은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백성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였다. 전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 곧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구주이시며 그를 믿는 자는 죄사함과 영생을 얻는다는 사실을 전하는 것이다. 주 예수의 명령대로, 제자들은 예루살렘에서 뿐만 아니라, 유대와 사마리아에서도 주를 증거하는 증인이 되어야 하였다. 예수께서는 이미 사마리아 지방의 수가라는 동네에 복음을 전하신 적이 있었다(요 4장). 이제 집사 빌립을 통해 사마리아 성에도 복음이 전파되었다.

[9-13절] 그 성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라 하니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청종하여 가로되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큰] 능력이라 하더라. 오랫동안 그 마술에 놀랐으므로 저희가 청종하더니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저희가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 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

하나님의 복음은 빌립을 통해 힘있게 증거되었다. 심지어 그 성에서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던 마술사 시몬도 복음에 복종하였고 세례를 받았다. 복음은 마술사도 굴복시켰다. 여러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전심으로 빌립을 따랐다. 이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이었다.

[14절]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예루살렘에 머물렀던 사도들은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복음 전파의 일이 사마리아로 확장되었다. 복음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그것은 그 성에 한두 명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 수십 명 이상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음을 의미할 것이다.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은 이 소식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사마리아로 보냈다. 그것은 사마리아에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들이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았는지를 확인하고 사마리아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의 지체임을 증거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15-17절] 그들이 내려가서 저희를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러라. 이에 두 사도가 저희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두 사도는 사마리아에 가서 그들의 참된 믿음을 보았으나 그 교회에 한가지 부족한 점이 있었다. 그것은 그들이 아직 성령을 받지 못한 것이었다. 성령께서는 예수께서 십자가의 대속 사역을 이루시고 부활 승천하신 후 위로자 혹은 돕는 자로 신약 성도들 속에 오셨다(요 14-16장).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된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 이후, 신자들은 누구나 성령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사마리아 교회는 예외적으로 성령을 받지 못했다.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에게서 보냄을 받은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 교인들을 위해 기도하고 안수할 때 성령께서 내려오셨다. 안수는 그 자체에 효력이 있다기보다 단지 하나님의 은혜를 전달하는 상징에 불과하다고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도들의 안수로 그 교인들이 성령을 받게 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사마리아 교회도 교회의 한 지체로 인정하신다는 것을 확실하게 증거하셨다. 그들은 성령을 받을 때 아마 방언 등의 성령의 은사들을 경험했을 것이다.

[18-19절]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함으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가로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사마리아 교회에는 아직 철저하게 회개하지 못한 것 같은 교인이 있었다. 그는 과거에 마술사이었던 시몬이었다. 교회 속에는 때때로 쭉정이나 가라지가 있다. 그것들은 마지막 심판 때까지 함께 자란다. 그것들을 완전하게 제거하는 것은 어렵다(마 13:29, 30). 그는 사도들이 안수함으로 성령을 받게 하는 것을 보고 돈을 주며 자기도 그 권능을 얻어 누구든지 자기가 안수하는 사람이 성령을 받게 해달라고 소원했다. 그는 돈으로 하나님의 은사를 사려 했다. 그의 속에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높이고 과시하려는 교만과 명예심이 있었다. 하나님 앞에서 누구든지 자신을 크게 생각하는 자는 큰 잘못을 범하고 있다.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아니다. 우리의 우리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뿐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크게 여기지 말고 낮추고 오직 하나님만 높여야 한다.

[20-24절] 베드로가 가로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일](KJV, NASB)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도다.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당신이] 말한 것이 하나도 내게 임하지 말게 하소서 하니라.

사도 베드로는 직선적이게 그를 책망하였다. 시몬의 마음 속에는 아직도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하려는 물질만능주의 우상이 있었다. 성도는 돈 사랑을 버려야 믿음의 바른 길로 들어설 수 있다. 베드로는 그에게 그의 악함을 회개하고 용서를 받으라고 말하였다. 우리가 바른 믿음 생활을 하려면, 우리는 돈을 사랑하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순수하고 영적이어야 한다. 모든 죄들을 버리고 씻음 받고 순수하게 하나님만 사모하고 믿고 섬기며 하나님의 말씀만 순종해야 한다. 우리의 교회 생활의 동기와 방법이 물질적인 복이나 육신적인 재미나 친교나 오락이나 혹은 명예심이어서는 안 된다.

[25절] 두 사도가 주의 말씀을 증거하여 말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갈새 사마리아인의 여러 촌에서 복음을 전하니라.

예수께서는 일찍이 수가 성에 복음을 전하셨었고(요 4:39-42), 또 빌립을 통해 사마리아 성에, 또 사도들을 통해 사마리아 지방의 여러 마을들에 복음이 증거됨으로, 주께서 명하신 대로 복음이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에까지 증거되었다. 복음의 불길은 예루살렘과 유대 땅을 넘어서서 사마리아와 온 세계를 향해 퍼져나가고 있었다.

[26절] 주의 사자가 빌립더러 일러 가로되 일어나서 남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하나님께서는 비상한 방법으로 천사를 빌립에게 보내셔서 전도하게 하셨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특별히 행하신 일이었다. 에디오피아 내시는 예루살렘까지 왔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돌아가고 있었다. 그가 지금 전도를 받지 못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고 죽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위하여 긴급히 전도자를 파송하셨다. 빌립은 천사의 지시대로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갔다. 그 길은 광야이었다.

[27-28절]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큰 권세가 있는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는데 병거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

빌립은 주의 사자의 지시에 즉시 순종했다. 본문의 에디오피아는 예루살렘에서 약 1,50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곳이다. 그것은 서울에서 부산까지 거리의 약 4배 되는 거리이다. 그렇게 먼 곳에서부터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까지 와서 예배드린 것을 보면 그 내시는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이었다. 하나님을 섬기는 데는 거리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는 사모함으로 먼 곳까지 왔다.

[29-30절]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병거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뇨?

성령께서는 빌립더러 이 병거로 가까이 나아가라고 말씀하셨다. 오늘날도 성도들 속에 거하시는 성령께서는 감동하셔서 전도자들을 권면하시고 격려하신다. 빌립은 그 병거에 가까이 달려갔다. 그것은 그가 성령의 감동과 권면에 즉시, 즐거이 순종했음을 나타낸다. 우리는 성령께서 감동하시며 말씀하실 때 즉시 순종해야 한다. 전도자는 낯선 사람에게라도 접근하여 말을 걸어야 한다. 빌립은 그가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읽는 것을 깨닫느냐고 말하였다.

[31-34절] 대답하되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뇨 하고 빌립을 청하여 병거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 읽는 성경귀절[구절]은 이것이니 일렀으되

저가 사지(死地)[도살장]로 가는 양과 같이 끌리었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양의 잠잠함과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낮을 때에 공변된[공정한] 판단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가히 그 세대를 말하리요.

그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로다 하였거늘 내시가 빌립더러 말하되 청컨대 묻노니 선지자가 이 말 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뇨? 자기를 가리킴이뇨? 타인을 가리킴이뇨?

그 에디오피아 내시는 빌립을 청하여 병거에 올라 같이 앉게 하며 그가 읽는 성경구절에 대해 그의 말을 듣기를 원하였다. 그가 읽던 성경구절은 이사야 53:7-8의 말씀이었다. 

[35절]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빌립은 입을 열어 말하였다. 이 표현은 그 동안 빌립이 말을 많이 하지 않고 잠잠했음을 보이는 것 같다. 전도자는 말쟁이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는 두려운 마음으로 말하되 하나님의 은혜로 담대히 말해야 한다. 빌립은 성경에 상당히 익숙했다고 보인다. 오늘날 우리도 바쁜 날들 속에서 성경책을 많이 읽음으로 믿음이 강한 자들이 되고 전도의 도구로 쓰이기를 원한다. 빌립은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님을 가르쳐 복음을 전하였다. 그것이 전도이다.

[36-40절]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뇨? 이에 명하여 병거를 머물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주고 둘이 물에서 올라갈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간지라. 내시는 흔연히[기뻐하며]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내시는 세례를 받기를 원하였다. 그는 병거를 멈추게 하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주었다. 빌립이 구스 내시에게 세례를 베푼 것은 먼 곳으로 떠나는 자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배려이었다.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은 죄사함을 표시하고 확증한다. 빌립이 세례를 베풀고 물에서 올라올 때 주의 영은 빌립을 이끌어 가셨다. 전도는 전도자보다 전도의 내용인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도리가 중요한 것이며 그것만 영속적으로 기억되는 것이 중요하다. 에디오피아 내시에게는 또한 성경책이 있었다. 그것이면 충분할 것이다. 내시는 기뻐하며 길을 가므로 빌립을 다시 보지 못했다. 전도자는 떠나갔지만, 전도를 받은 구스 내시에게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었다. 그는 기뻐하며 그의 길을 갔다. 한편,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렀다. 하나님께서는 빌립을 전도의 귀한 도구로 사용하셨다. 그를 통해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곳곳에 전파되고 있었다.

집사 빌립은 비록 사도는 아니었으나 하나님을 위해 쓰임 받은 전도자이었다. 그는 주의 사자의 인도를 받아 광야로 가서 예루살렘에서 고국으로 병거 타고 돌아가며 성경을 읽던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전도하였다. 또 그는 그 후에도 아소도와 그 외에 여러 성을 지나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전도는 하나님의 뜻이며 명령이다. 우리는 어디든지, 누구에게든지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 디모데후서 4: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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