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celife365(주신삶에 감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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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절]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道)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 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사울은 본래 예루살렘의 신자들을 핍박하던 자이었으나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당시 유대인 공회 의장인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회당들에 갈 공문을 요청했다. 다메섹은 수리아의 수도로서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240킬로미터 떨어진 곳이었다. 예루살렘의 유대인 공회는 그곳의 회당들에도 영향력을 가졌던 것 같다. 무지에서 나온(딤전 1:13) 잘못된 열심은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성도들을 죽이는 극히 악한 일에 몰두하게 만들었다.

[3-5절]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주께서](전통사본)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사울에게 비친 그 빛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빛이었다. 그것은 햇빛보다 더 밝은 빛이었을 것이다. 살아계신 예수께서는 그에게 나타나셔서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고 말씀하셨다. 주께서는 자기의 제자들을 자기 자신과 동일시하셨다(마 10:40).

[6-9절] 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섰더라.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것도[아무도](전통사본)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사흘 동안을 보지 못하고 식음[먹고 마시는 것]을 전폐하니라[완전히 중단하니라].

사울이 예수님을 만난 후 앞을 보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것을 완전히 중단했던 그 3일은 하나님께 기도하며 회개하고 예수님을 주님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그의 삶에 큰 변화가 일어난 시간이었다.

[10-12절] 그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가라사대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직가(直街)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자를 찾으라.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 저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환상 중에](전통본문)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부활하신 주께서는 살아계셔서 직접 제자들에게 역사하셨다. 본문에는 ‘주께서 가라사대’라는 말이 두 번 나온다(10, 11절). 주께서는 환상 중에 그의 제자 아나니아에게 말씀하셨다. 환상은 하나님께서 구약시대나 사도 시대에 자신을 계시하신 한 방법이었다. 주께서는 아나니아에게 장소와 사람 이름을 구체적으로 말씀하시며 지시하셨다. 사울은 3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하고 있었고 아나니아라는 이가 와서 그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되는 환상을 보았다.

[13-14절]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성도들]에게 적지 않은 해(害)를 끼쳤다 하더니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를 결박할 권세를 대제사장들에게 받았나이다 하거늘.

아나니아는 사울에 대해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들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으며 다메섹에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을 결박할 권세를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다고 많은 사람에게서 들은 바가 있었고 나름대로 판단하고 있었다고 말하였다. 사울에 대해 여러 사람들에게서 들었다면 그것은 어느 정도 믿을 만한 일들일 것이다.

[15-16절]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는](원문)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그릇임이니라][이는]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보일 것임이니라] 하시니.

아나니아의 불만스러운 생각에서 나온 질문에 대한 주님의 대답은 처음 명령 그대로이었다.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들의 생각과 다르며 하나님의 긍휼과 너그러움은 사람들이 다 측량할 수 없다. 주께서는 아나니아에게 그가 사울에게 가야 할 두 가지의 이유를 말씀하셨다. 첫째는 그가 주의 이름을 이방인들과 왕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주의 그릇이었기 때문이다. 주께서는 원수 같은 사울을 택하셨다. 둘째는 그가 주의 이름을 위해 많은 해를 받을 것을 그에게 보여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사울은 주의 이름을 위해 많은 고난을 받을 것이다. 과연 그는 많은 고난을 받았다.

[17절]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가로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주님의 답변은 아나니아에게 충분했다. 그는 주의 명령에 순종했다. 그는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사울에게 안수하며 “형제 사울아”라고 말했다. 그는 주의 지시대로 사울을 형제로 받아들였다. 또 그는 그가 오는 길에 나타나셨던 주께서 자기를 보내어 그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고 말했다. 그는 예수께서 살아계신 주님이심을 증거했다. 그의 말들은 사울이 예수님의 살아계심과 주 되심을 한번 더 확인하고 확신하게 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18-19a절]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주께서 사울에게 주셨던 환상은 그대로 이루어졌다.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되었다. 그는 일어나 세례를 받고 음식을 먹었고 강건하여졌다. 세례는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함으로 죄사함을 받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확증하는 일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성도들을 핍박했던 사울은 이제 그의 제자가 되었다. 이것은 참으로 놀랍고 은혜로운 사건이었다.

[19b-22절]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즉시로 각 회당[회당들]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 부르는 사람을 잔해[진멸]하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저희를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이 사람이]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시키니라[당황케 하니라].

사울은 다메섹에 있는 동안 새 친구들이 생겼다. 예수님 믿는 자들이 친구가 되었다. 그것은 새로운 교제이었다. 사울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확신하였고 즉시 회당들에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였다. 그것은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다른 유대인들이 자기처럼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함이었다. 듣는 사람들은 다 놀라며 그를 믿지 않았으나, 그는 힘을 더 얻어 예수님을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황케 하였다.

[23-25절]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저희가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그의 제자들이 밤에 광주리에 사울을 담아[제자들이 밤에 광주리에 그를 담아](전통본문) 성에서 달아 내리니라.

약 3년의 시간이 흘렀던 것 같다. 그는 갈라디아서에서, 예수님을 믿은 후 자기보다 먼저 사도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고 3년 후 베드로를 만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15일간 그와 함께 유했다고 말했다(갈 1:17-18). 그 3년 중 얼마 동안 그는 아라비아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던 것 같다. 그러나 다메섹의 유대인들은 사울 죽이기를 공모했고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자, 제자들은 밤에 그를 광주리에 담아 성에서 달아 내려 피신케 하였다.

[26-27절]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의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본 것과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던 것을 말하니라.

갈라디아서 1장에 보면, 그는 3년 만에 베드로를 만나기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갔고 그와 함께 15일간 머물렀으나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했다(갈 1:18-19). 제자들은 과거에 자신들을 핍박했던 자에 대하여 두려움과 거리낌을 가졌다. 그때 그 어려움을 도와준 자는 바나바이었다. 그는 자기 밭을 팔아 그 값을 사도들의 발 앞에 둘 정도로 진실히 주를 믿고 따른 자이었다(행 4:36-37). 또 사도행전 11:24는 그가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고 증거하였다. 이런 경건하고 선한 인물이 사울과 사도들 간의 교량 역할이 되었다. 그것은 사도들이 사울을 이해하고 그를 주의 제자로 용납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바나바는 믿음의 좋은 친구이었다.

[28-30절] 사울이 제자들과[그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에 출입하며 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 형제들이 알고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내니라.

사울은 예루살렘에서도 담대히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했다. 또 그는 헬라파 유대인들 즉 ‘헬라어를 사용하는 유대인’들과 변론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한때 유대교에 열심이었던 사울이 배신자가 되었다고 생각해 격분한 마음으로 그를 죽이려 했다. 형제들은 그를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 다소로 보내었다. 나중에 바나바는 그를 다소에서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함께 큰 무리를 가르칠 것이다(행 11:25-26).

[31절]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교회들](전통본문)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교회들은 든든히 서 가고 있었다. ‘든든히 서 간다’는 원어(오이코도메오)는 ‘집을 세운다, 증진시킨다, 성장시킨다’는 뜻이다. 그것은 성도들의 영적 건립과 성장 즉 성화(聖化)를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초대교회 성도들은 지식과 믿음이 자라가고 있었고 의와 선과 사랑을 실천하고 있었다.

[32-33절] 때에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행하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더니 거기서 애니아라 하는 사람을 만나매 그가 중풍병으로 상 위에 누운 지 팔년이라.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이 사울을 죽이려 하므로 주의 제자들이 사울을 다소로 보내었 때, 베드로는 사방으로 두루 행하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다. 룻다는 예루살렘에서 서북쪽으로 약 35킬로미터쯤에 있었다. 베드로는 룻다에서 애니아라 하는 성도를 만났는데 그는 중풍병으로 상 위에 누운 지 8년이나 된 자이었다. 예수께서 사역하셨을 때도 모든 병자들이 다 고침 받은 것은 아니었겠지만, 애니아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을 때 즈음 병상에 눕기 시작한 듯하다. 그는 그에게 병 고침 받을 기회를 얻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제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사도 베드로를 통해 병 고침을 받게 될 것이다.

[34절] 베드로가 가로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대 곧 일어나니.

예수께서는 살아계셔서 사도들을 통해 능력의 일들을 이루셨다. 사도들을 통해 기적들이 많이 일어났다(행 2:43; 5:12). 기적은 사도들의 신분증과 같았다(고후 12:12). 사도들을 통해 이루어진 기적들의 목적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증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사람이 회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아 죄를 떠난 거룩하고 선한 새 삶을 사는 것이다.

[35절]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가니라.

전에는 예수님을 알지 못했고 믿지 않았던 룻다와 사론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주 예수님을 믿고 그를 따르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이었다. 병 고침의 기적을 본다고 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의 은혜를 주셔야 사람이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다.

[36-37절]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영양[羚羊, gazelle]이라는 뜻)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그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뉘우니라.

선행과 구제는 참된 경건의 표이다. 성경의 전체적 요지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으라는 것이요, 또 하나는 서로 사랑하며 선을 베풀라는 것이다. 요한일서 3:23,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그런데 욥바에 사는 경건하고 착한 여제자 다비다가 병들어 죽었고 그의 시체를 씻어 다락에 뉘었다. 성도들도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죽는다. 그러나 그들은 천국에서의 안식과 장차 몸의 복된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죽는다.

[38-39절] 룻다가 욥바에 가까운지라. 제자들이 베드로가 거기 있음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내어 지체말고 오라고 간청하니 베드로가 일어나 저희와 함께 가서 이르매 저희가 데리고 다락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베드로의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어 보이거늘.

룻다는 욥바에서 가까웠다. 룻다에서 서북쪽으로 10여 킬로미터 떨어진 해안도시가 욥바이다. 욥바에 있는 제자들은 베드로가 룻다에서 중풍병으로 8년간 침상에 누워 있었던 애니아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쳐주었다는 소식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내어 지체말고 빨리 와 달라고 간청했을 것이다. 모든 과부들은 베드로의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어 보였다. 그 옷들은 이웃들을 위해 지은 것들일 것이다. 그것들은 다비다의 선행의 증거들이었다고 보인다. 모든 과부들의 눈물과 그들이 보여준 그 옷들은 다비다가 어떻게 진실하고 선한 성도이었는지를 잘 증거했다고 본다.

[40절]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가로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베드로는 사람들을 다 내어보냈다. 그것은 그가 기도하는 데 방해를 받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기도하기 위함일 것이다. 우리는 기도할 때 하나님께 해야지 사람 앞에 하듯 해서는 안 된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 우리의 마음 중심을 아뢰는 것이어야 한다. 베드로는 기도를 마친 후 돌이켜 다비다의 시체를 향해 “다비다야, 일어나라”고 말하자 다비다는 눈을 떠 베드로를 보았고 일어나 앉았다. 사도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만 의지하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고 그를 일으켰고 살렸다.

[41-43절]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들여 그의 산 것을 보이니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이 주를 믿더라. 베드로가 욥바에 여러 날 있어 시몬이라 하는 피장[무두장이]의 집에서 유하니라.

다비다를 살린 자는 베드로가 아니고 그와 함께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셨다. 베드로를 통해 이루어진 기적은 베드로를 증거하는 것이 아니고 그가 전하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은 그 사건을 통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웃과 친지들에게 성경말씀을 전해야 하고 그들을 성경말씀 앞으로 초청해야 한다. 그들에게 지를 나누고 성경책을 전하며 성경강해와 책자들을 전하고 교회로 초청하며 스마트폰에서 교회홈페이지와 인터넷 주소를 소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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