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celife365(주신삶에 감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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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절] 그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한대.

사도행전에는 믿는 자들을 ‘제자’라고 자주 불렀다(행 2:41; 6:1, 7; 11:26, 29; 13:52; 14:22; 19:9; 20:30 등). ‘제자’는 선생의 말과 행위를 배우고 본받는 자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그의 말씀과 행위를 배우고 본받는 제자들이다. 

헬라파 유대인은 세계 각곳의 출신으로 헬라어를 쓰는 유대인을 가리키고, 히브리파 유대인은 유대 땅 출신 유대인을 가리킨다. ‘매일 구제’라는 말은 매일 식사를 제공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 같다. 아마 고의로 그렇게 된 것은 아니었겠지만, 그런 일로 인하여 사랑의 공동체인 교회 안에 불평하는 말이 생긴 것은 좋지 않았다. 사람의 인격의 부족함 때문에, 교회 안에는 때때로 문제가 생긴다.

[2-4절]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공궤[식탁 봉사]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아니하니라. 그러므로](전통본문)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專務)하리라 하니.

열두 사도들은 제자들을 불러모으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구제의 일에 시간을 너무 쓰는 것이 합당치 않다고 말하였다. ‘공궤를 일삼는 것’이라는 원어는 ‘식사 봉사의 일’을 의미하며 금전출납의 일을 내포할 수 있다(BDAG). 그들은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專務)하리라”고 말했다. 사도들의 주된 임무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것이었으므로 식사 봉사나 금전출납의 일로 인해 말씀 전파의 일이 소홀히 되는 것은 합당하지 않았다.

그래서 세운 직분이 집사직이다. 본문에 집사라는 말은 없으나 그 직무가 그렇다. 식사 봉사나 구제나 금전출납의 일을 목사와 장로들이 해서는 안 되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말씀과 기도의 일에 전념하도록 하기 위해 집사들을 세워 그 일을 맡기게 된 것이다.

[5-6절]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모인 무리들은 사도들의 제안을 기뻐하였고 일곱 명의 사람들을 선택해 사도들 앞에 세웠고 사도들은 기도하며 그들에게 안수하였다. 그 일곱 명 중에 스데반은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라고 표현되었다. 예루살렘 교회는 교인들이 집사들을 선택하였다고 보인다. 선택의 방법에 대해서는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사도행전 1:21-26에 기록된 사도 한 명의 보선(補選)이나 사도행전 14:23의 장로 선택의 경우를 참고할 때, 그들은 후보를 추천하고 제비뽑기나 거수 투표로 선택했을 것이다. 사도들이 한 안수는 직분을 위탁하고 그 직분에 필요한 성령의 은사를 구하는 상징적 의식이었다. 그들의 임직식은 거창한 의식이 아니고 기도와 안수로 이루어진 조촐한 의식이었다고 보인다. 임직식은 실상 그것으로 충분하다. 거기에 야단스러운 축하행사와 꽃다발과 사진촬영 등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7절]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테 피스테이)[그 믿음에](KJV, NASB, NIV) 복종하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들의 수가 더 많아졌고 수많은 제사장들도 그 믿음에 복종하였다. ‘그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그 믿음의 내용인 복음 진리를 가리킨다. 하나님의 말씀의 왕성함과 영혼 구원의 역사 그리고 믿는 자들의 수적인 증가는 다 하나님의 은혜요 성령의 역사이었다.

[8-10절]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리버디노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이라는 각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으로 더불어 변론할새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저희가 능히 당치 못하여.

일곱 집사들 중에 스데반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집사이었으나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사람들 가운데서 행하였다. 기적들은 주로 사도들이 행하였다. 스데반은 기적을 행하였을 뿐 아니라, 대적자들과 변론할 때 지혜와 성령으로 말하였다. 리버디노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이라는 각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과 변론할 때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그들이 능히 당하지 못했다. ‘리버디노’는 어떤 지역 이름이 아니고 ‘자유인들’이라는 뜻으로 이방 나라에 포로된 종의 신분에서 자유를 얻은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말 같다. 그들은 스데반을 말로 당하지 못하자 온갖 악한 일들을 행하기 시작하였다.

[11-14절] 사람들을 가르쳐 말시키되[선동하여] 이 사람이 모세와 및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 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게 하고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충동시켰고] 와서 [그를] 잡아 가지고 공회에 이르러 거짓 증인들을 세우니 가로되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스려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 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거늘.

세상에서는 하나님의 일을 거스르는 사탄의 방해와 핍박이 항상 있다. 세상에서의 신앙 생활은 영적 전쟁이다. 개인적으로도, 교회적으로도 그러하다. 스데반을 대적한 자들은 겉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유대인들이었으나, 속으로는 진리에 대해 무지하고 이해심이 없고 악하고 편견에 사로잡혀 있고 교만하고 긍휼의 마음이 없고 이성적이지도 않고 공정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거짓되고 불의하였다.

[15절]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였는데, 그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과 같았다. 천사의 얼굴과 같았다는 말은 스데반의 얼굴이 선한 천사들이 가지고 있는 도덕성을 나타내었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그의 얼굴에는 교만, 미움, 분노, 악독이 없었고 온유와 겸손, 거룩과 사랑이 나타나 있었다. 그것은 성화된 성도의 모습이다.

공회의 모든 사람들은 스데반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았음을 보았다. 개인적 신앙 생활이나 교회 생활은 영적 전쟁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의 육신의 죄성과 세상의 악과 사탄과 싸운다. 사탄은 우리에게 많은 고난과 핍박으로 도전한다. 우리는 언제나 고난과 핍박을 각오하며 살고 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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