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celife365(주신삶에 감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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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이 여호와께 고하되 내 죄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않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만나는 누구에게든지 죽임을 면케 하시니라” (4:13-15)



가인의 고백에서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이 발견된다.

가인은 여전히 영적으로 사탄의 권세에 묶여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가인은 스스로 회개할 줄 몰랐다. 그러나 그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사죄의 은총만이 양심의 가책에서 해방시킨다. 그리고 가인은 죄인이 하나님의 얼굴을 뵐 수 없음도 알았다. 죄인은 창조주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다. 창조주의 은총 밖에 산다. 이것이 저주이다.

저주로 가인은 유리하는 자가 되었다. 죄인은 사탄의 영적 권세 아래 있어 쉼과 안식을 누릴 수 없다. 심리적 불안은 삶의 불안정을 동반한다. 살인자는 언젠가 살인 당할 것을 생각하며 늘 불안해한다. 그리고 농경문화의 출현 이전 사람은 채집 삶을 살았다.

죄인 가인은 구속을 목표하는 하나님의 특별은총에서 제외되었다. 그러나 창조가 주는 하나님의 일반은총에 여전히 포함되었다. 살아있는 한 그의 목숨은 보존될 것이다
(4:13-15). 타락 후에도 살인은 여전히 금지되었다. 타락 후에도 창조 목적의 달성까지 인류 사회는 보존되어야 한다.

한 가지 질문이 있다. 가인은 자신 이외 다른 사람들을 의식했다. 아담과 하와 그리고 가인과 아벨 이외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는 뜻이다. 아담은 130세에 셋을 낳았다(4:25, 5:3). 이 때까지 아담은 셋 - 가인, 아벨과 셋 - 만 낳지 않았다. 다른 후손들도 많이 낳았다. 가인이 놋 땅에서 에녹이란 후손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였다. 성경 기록을 위해 가인, 아벨과 셋이 택해졌다.

아벨을 죽인 가인은 부모를 볼 면목을 잃었다. 에덴 동편에 있는 놋 땅으로 그는 도망쳤다(4:16). 그가 여호와의 앞을 떠났다고 성경은 기록한다. 원복음(3:15)의 약속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특별은총에서 완전히 제외되었다. 그러나 창조주가 보편 인류에게 베푸는 하나님의 일반 은총에선 제외되지 않았다(4:13-15).

구속의 소망을 잃은 가인은 땅을 갈며 농부의 삶을 살아야 했다. 살인 사건 후 땅은 그가 노력한 만큼 효력을 주지 않았다(4:12). 농사 지을 수 있는 땅을 찾아 여기저기 떠돌아다녀야 했다. 생존을 위해 사람들과 다투어야 했다. 다른 한편 만나는 사람들이 자신을 죽일 것이란 두려움으로 그는 살았다(4:14). 

상당한 세월이 지난 후 그가 에녹을 얻었다. 공교롭게도 가인의 에녹은 셋의 5대손 에녹과 동명이인이다(5:21-24). 셋의 에녹은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했다. 가인은 이에 대해 듣고 자신의 아들을 에녹으로 호칭했다. 사람들 앞에서 가인 가문은 셋 가문보다 뒤질 수 없었다. 열등감을 갖게 하는 비정통성을 그는 늘 위장해야 했다.

아담 이후 에녹의 승천까지 약 700년 동안 가인은 이리저리 유리하며 살았다. 에녹을 낳은 후 비로소 가인은 성을 쌓았다. 에녹 성이라 불렀다. 이 때 즈음 그가 넓은 대지를 끼고 흐르는 큰 강을 찾았다. 비로소 그는 정착할 수 있었다. 성 건축을 가능케 하는 건축술이 농경 사회를 세운 가인 계열의 사람들에 의해 개발되었다

그 동안 축적된 농업 기술과 습득한 건축술은 비정착 삶을 청산하도록 가인을 도왔다. 자신과 후손의 안전을 위해서도 성 건축은 불가피했다. 인류 최초의 정착적 농경 사회가 비로소 출발했다. 그리고 가인의 5대손 라멕은 셋의 7대손 라멕과 동명이인이다. 셋의 에녹부터 라멕까지 약 300년의 세월이 흘러갔다(4:17-19). 천년 지난 후 가인의 후손에 의해 인류 문명이 속속 발전했다

라멕의 첫 부인 아다를 통해 야발이 출생했다. 그는 육축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다(4:20). 야발의 아우는 유발은 음악의 조상이 되었다(21). 그리고 둘째 부인 실라를 통해 가인은 두발가인을 낳았다. 그는 청동 문화의 조상이 되었다(22). 홍수 이전 인류의 고대 문명을 구성하는 농업 기술, 건축술, 목축업, 예술인 음악과 청동 문화가 가인 계열의 후손에 의해 개발되었다

청동 문화는 갖가지 농사나 생활 기구 그리고 무기를 만들게 했다. 덕분에 남을 지배할 수 있는 실질적 힘과 권력도 얻었다. 그리고 농업도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돌과 나무를 농기구로 사용할 때보다 농산물의 수확은 훨씬 더 많았다. 쌓은 성 안에서 안정적으로, 풍요롭게 그리고 즐겁게 인생을 살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홍수 이전 인류의 농경적 고대 문명의 모습이다. 
덕분에 사람들은 현세(現世)를 더욱 즐기며 살게 되었다. 더더욱 사람들은 창조기사(1-2)의 시간 개념보다 타락(3) 결과인 공간 개념에 따라 살았다. 창조(1-2)를 믿지 않고 원복음(3:15)의 구속을 소망하지 않는 인류에게 이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이들의 문명과 문화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창상을 인하여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을 인하여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 (4:23-24)

창조기사(1-2)의 일부일처(一夫一妻: monogamy)가 아닌 중혼(重婚: bigamy)이 눈에 띤다. 권력과 부를 가진 라멕은 첫 부인 이외 첩을 두었다. 결혼, 부부 그리고 가정 제도는 육적 쾌락주의의 도구가 되었다. 이로 인해 성경적 결혼, 부부와 가정(창1:26-28절) 제도의 붕괴는 불을 보듯 당연했다. 일부일처제를 주장하는 창조기사(창1-2장)는 인류 사회의 붕괴의 원인이 가정의 붕괴에 있다고 가르친다. 

가인의 문명과 문화는 포악하고 잔혹했다. 라멕은 자신이 입은 조그만 창상을 살인으로 보복했다. 농경 문화는 물질적 부의 축적을 가능케 했고 청동 무기는 힘 있는 자만 소유했다. 가진 자인 강한 자는 힘으로 약한 자를 지배했다. 가인의 문명은 진화론이 주장하는 양육강식과 적자생존의 사회였다. 그러나 인류 문명의 발전은 그만큼 더 살상(殺傷)의 넓이와 폭을 급속하게 확장시킨다.

그리고 가인 계열의 라멕은 자신의 잔악성과 포악성을 여자들 앞에서 자랑했다. 자신과 권력을 자랑하기 좋아하는 권세자의 천박한 영웅주의이다. 이런 사회는 하나님의 창조 목적(1:26)이나 문화사명(1:28)의 목표와는 거리가 아주 멀다. 이것이 창조 신앙을 무시하는 농경 문화의 내용, 성격과 모습이다.

셋의 5대손 에녹의 출생 후 약 천년 지나 전세계적 홍수가 발생했다. 가인 계열의 에녹이 성을 짓고 농업적 정착 사회를 살기 시작한 이후 이 기간 동안 인류는 서서히 윤리도덕적으로 타락했다. 가인의 5대손 라멕이 그 절정을 보여주었다. 공간적 사고에 의해 사는 인류의 미래와 종말이 어떤 것인가를 잘 보여준다.

아담은 가인과 아벨만 낳지 않았다. 성경은 하나님의 일을 위해 택해진 인물들만 기록한다. 일천 년을 산 아담과 하와가 가인, 아벨만 낳을 수 없었다. 이들 이외 수많은 다른 자녀들도 낳았다(5:4). 그들 중 죽은 아벨 대신 출생한 이 있었다

그렇다면 아담의 후손은 혈통적으로 셋이다. 가인과 셋의 후손들 그리고 셋 이후 출생한 아담의 다른 후손들. 창세기 4장의 족보는 가인의 가계(家系)로써 그리고 5장의 족보는 셋의 가계로써 각각 이들이 누구인가를 잘 설명한다. 아담의 다른 자녀들은 익명으로 기록된다(창4:14, 15, 23, 26, 6:1절 참조). 

홍수 이전 고대 인류 문명은 가인 계열의 후손에 의해 창설되었다. 가인 후손은 농경적 정착 사회를 세웠다. 그러나 셋의 후손은 이 일에 공헌 바가 전혀 없었다. 이들은 성()이라는 정착지가 아니라 산야(山野)를 이리저리 유리하며 비정착 삶을 살았다. 아담이 낳은 다른 후손은 가인의 혈통적 후손에 속하지 못한 체 사회적 약자로서 셋의 후손처럼 살았을 것이다.

셋의 일대 손 에노스부터 에녹이 승천하기까지 약 700년 동안 영적 부흥이 있었다. 그러나 에녹의 승천 이후 400년 동안 서서히 영적 쇠퇴가 시작되었고 가인 계열의 라멕이 성을 지은 이후 홍수까지 천년 동안 영적 쇠락은 급속했다. 영적 쇠락은 홍수 심판을 초래시켰다. 창세기 6장은 이를 잘 기록한다.

성경은 셋이 에노스를 낳자 그 때부터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기록한다(4:26). 에녹이 승천하기까지 700년간 동안 지속된 영적 부흥기 아담의 다른 자녀들도 영적으로 아벨을 대신한 셋의 혈통적 후손에 연합했다. 이들과 셋의 후손 그리고 가인의 형통적 후손과 여기에 합류한 아담의 다른 자녀들영적으로 인류는 둘로 분명히 나뉘었다.

그럼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은 누구인가? 하나님의 아들들은 창조주와 원복음(3:15)의 약속을 믿고 소망하며 사는 경건한 사람들을 뜻한다. 근본적으로 셋의 후손과 믿음으로 이에 연합한 아담의 다른 자손들이다. 그러나 사람의 딸들은 하나님의 아들인 경건한 신자들과 대조되는 즉 원복음의 약속과 무관한 세상 사람들이 낳은 딸들이다. 주로 가인의 후손일 것이다. 영적으로 하나님의 아들들은 여인의 후손이고 사람의 딸들은 뱀의 후손이다.

이 당시 하나님의 아들들은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취해 부인으로 삼았다. 이들의 딸들은 쾌락을 추구하며 자신을 아름답게 꾸몄다. 산야(山野)에서 거칠게 사는 여인들보다 도시의 여인들이 더 아름답게 보임은 당연하다. 하나님의 아들들도 사람의 딸들의 미색에 끌려 결혼했다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 사이 연혼(聯婚)은 아주 위험하다. 창조주와 구속주를 믿는 가족과 이런 믿음을 부인하는 가족 사이 혼인 관계를 뜻한다. 사도 바울은 이의 영적 위험을 이렇게 지적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고후6:14-16)

바울은 신자와 불신자 사이 혼인을 의와 불법 사이, 빛과 어두움 사이,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 사이 그리고 그리스도와 벨리알 사이 완전히 불가능한 관계로 설명한다. 창조기사의 가르침에 따르면 이들 사이 연혼은 시간적 사고와 공간적 사고 사이 전혀 어울릴 수 없는 짝이다. 신학적으로 말한다면 창조론의 종말과 무신론의 비종말 사이 양립할 수 없는 관계이다. 유신론과 무신론 사이 어울리지 않는 억지 짝이다. 이런 혼합주의는 결국 불법, 어두움, 우상, 벨리알에 속한다. 

연혼으로 인해 원복음(창3:15절)을 믿고 소망하며 사는 경건한 신자들의 수가 인류 사회에서 점점 줄어들었다. 이 기간은 약 1,400년 동안 계속 되었다. 이를 본 하나님의 영()은 더 이상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없었다(6:3).  하나님은 심판을 작정했다. 하나님의 일반 은총마져 거두어졌다.

이들 사이 연혼으로 고대 용사들이 출현했고 당시 네피림들과 패권(覇權) 싸움을 했다(4). 하나님이 한탄할 정도로 인류 사회에 죄악과 불의가 만연했다(창6:5-6). 하나님이 심히 근심하고 한탄할 정도였다(7). 폐권 싸움은 무엇을 위했는가? 가문과 부족들 사이 힘과 권력을 제공하는 재물을 얻게 하는 대지 쟁취을 위함이었다. 고대로부터 전쟁과 싸움의 원인은 결국 경제에 있다

이의 근본적 원인은 공간 개념에 의해 지배 받는 인류의 사고 방식 자체에 있다. 인류 문화가 생존 근거를 농경에 두는 한 전쟁, 싸움과 사회적 갈등은 피할 수 없다. 이런 싸움과 갈등은 하나님의 창조 목적 달성을 불가능케 한다(딤전2:1-4). 인류를 심판으로 멸망 시킨 후 새롭게 출발함이 하나님께 더 좋은 선택이다. 이 점에서 공간적 사고 방식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의 중요한 전략과 전술이다. 경건한 신자는 당연히 시간적 사고 방식으로 산다.

두 족보들 사이 차이가 발견된다. 창세기 4장의 족보는 가인과 그 후손이 인류 문명과 문화의 창설에 공헌했음을 자랑스럽게 기록한다. 그러나 창조 신앙을 부인하는 문명과 문화에 많은 심각한 문제들이 있었다. 이들은 현세적 쾌락주의자로서 결국 흙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창세기 5장의 족보에 기록된 셋의 후손은 가인의 후손에 비해 너무나 초라했다.

그러나 가인의 후손과 달리 셋의 후손은 출생, 생존과 사망에 관련된 때와 기간이 분명히 기록된다. 반면 찬란한 고대 문명의 창설자인 가인의 후손은 마치 개나 돼지처럼 '낳았다'라는 표현으로 소개된다. 관점 면에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 차이가 있다. 셋의 족보는 앞으로 올 메시아의 혈통을 그러나 가인의 족보는 이에서 제외된 혈통을 각각 보여준다. 달리 말해 구속의 은총을 소망케 하는 시간 개념으로 사는 경건한 무리와 현세만 보게 하는 공간 개념으로 사는 세상 사람들 사이 차이를 보여준다. 

이 차이는 너무나 크다. 셋의 후손 중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했다. 그리고 홍수 심판에서 셋의 후손만 구원 받아 살아 남았다. 흥미로운 사실은 가인 후손의 이름이 셋 후손의 이름과 같거나 비슷하다는 것이다. 세상의 승리자인 가인의 후손은 세상의 패배자 같은 셋의 후손을 늘 부러워했다는 뜻이다.

가인과 셋 사이 대조는 가인이 세운 농경적 정착 사회와 셋의 유목적 비정착적 사회의 내용과 성격을 잘 설명한다. 이렇게 공간 개념 시간 개념 사이 비교와 대조를 설명한다. 이런 비교는 경건한 신자가 어떻게 신앙 삶을 이 세상에서 살아야 하는가를 잘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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