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celife365(주신삶에 감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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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절]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得男)하였다 하니라.

 하와는 첫아들을 낳고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고 말했다. ‘여호와로 말미암아’라는 원어(엣-예호와)는 ‘여호와의 도움으로’라는 뜻이라고 본다

[2절]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었더라.

농사하는 것과 양을 치는 것은 가인과 아벨의 직업으로 인류 역사의 아주 초기로부터 있었던 가장 오래된 직업들이었다.

[3-4a절]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세월이 지난 어느 날, 가인은 곡식 제물로 하나님께 드렸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을 드렸다. 훗날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가인이 드린 곡물 제사는 정당한 제사의 한 방식이었고, 아벨이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을 드린 제사도 정당한 제사 방식이었다.

[4b-5a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열납하다’는 원어(솨아)는 ‘[호의를 가지고] 주목하다, 존중하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벨과 그 제물을 주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주목하지 않으셨다. 두 사람의 제사의 차이가 무엇이었는가? 히브리서 11:4는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고 말한다. 아벨의 더 나은 제사는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이라는 제물이었다. 그것은 두 가지 점이었다고 본다.

첫째로, 아벨의 제물은 정성어린 제물이었다. ‘첫 새끼’는 짐승 중에 가장 귀한 것을 가리킨다. ‘기름’이라는 원어(켈렙)도 ‘가장 좋은 부분’이라는 뜻이 있다. 민수기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은 소득의 십일조를 레위인들에게 주고 레위인들은 그들이 받은 모든 예물 중 그 아름다운 것을 취하여 하나님께 드려야 했다(18:29-32). 거기에 세 번이나 나오는 ‘아름다운 것’이라는 원어가 바로 이 단어이며 영어성경들은 ‘가장 좋은 부분’이라고 번역하였다(KJV, NASB, NIV). 신명기 6:5는 우리가 유일하신 여호와 하나님께 마음과 영혼과 힘을 다하여 사랑해야 한다고 교훈했다. 잠언 3:9는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고 교훈한다. 아벨은 바로 이런 정신으로 정성어린 제물을 하나님께 드렸던 것이다.

[5b-7a절]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안색이 변하였다’는 원어는 ‘얼굴이 떨어졌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자기 제물을 받지 않으셨을 때 그는 자신의 부족을 깨닫고 엎드려 회개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교만하였고 심히 분노하며 얼굴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그가 그런 태도를 취하는 것이 정당치 않다고 지적하셨다.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라는 구절의 원어는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열납되지 않겠느냐?”고 번역되기도 한다(Syr, Vg, KJV, NIV). 하나님의 말씀은 가인의 제사가 선하지 않았다는 뜻을 내포한다.

[7b절]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8절]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그 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

가인은 그 아우 아벨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었다. 그 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 가인은 그 아우 아벨을 죽였다. 그의 교만과 불쾌함은 분노와 시기심과 미움으로 발전하였고 그 미움은 마침내 살인의 행위로 나타났다. 이것이 인류 역사 최초의 살인 사건이었다.

선하게 창조되었던 아담과 하와의 아들 가인 속에 이런 무서운 죄성이 있었다. 우리는 분노와 시기와 미움을 경계해야 한다. 성경은 이런 악을 행하는 자들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하였다(갈 5:19-21; 계 21:8; 22:15).

[9-10절]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가로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가라사대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을 때 가인은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거짓말을 했고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라고 뻔뻔스럽게 대답했다. 가인은 하나님의 전지하심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아벨의 억울한 죽음을 변호해줄 자가 아무도 없어도 하나님께서는 그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호소하는 것을 들으셨다. 하나님께서는 그 살인 사건을 다 알고 계셨다.

[11-12절]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밭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가인이 아벨을 죽인 죄의 결과는 컸다. 그는 땅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다. 사람이 땅에서 하나님의 복을 받지 않고 저주를 받는 것은 큰 불행이 아닐 수 없다. 또 땅은 다시 그 효력을 그에게 주지 않을 것이다. 농사의 수확은 인간의 삶에 필수적인 요소인데, 땅이 다시 효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은 큰 물질적 타격이 아닐 수 없다. 또 가인은 땅에서 떠돌며 방랑하는 자가 될 것이다. ‘피하며 유리하는 자’라는 원어( 와나드)는 ‘비틀거리며 방황하는 자’라는 뜻이다(BDB). 사람은 누구나 땅 위에서 평안과 안정을 원하지만, 그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 누릴 수 있는 복이다. 사람이 안정이 없이 이리저리 떠돌며 방랑하고 방황하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13-14절] 가인이 여호와께 고하되 내 죄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

또 가인은 하나님의 징벌이 너무 무거워 견디기 어렵다고 느꼈고 또 자신이 이후로는 하나님을 뵈올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과 또 그를 만나는 자들이 그를 죽이려 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사건은 세월이 좀 흐른 때의 일이었다고 보이며, 그때에는 가인과 아벨 외에 아담의 다른 자녀들도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죄의 결과는 무거운 죄책감과 두려움이다.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하나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친다(잠 28:1).

[15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않다[혹은 ‘그러므로’].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7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만나는 누구에게든지 죽임을 면케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두려워하는 가인에게 긍휼을 베푸셨다. 그가 가인에게 주신 표가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것은 살인자에게 주신 은혜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고 계셨다.

우리는 죄를 멀리해야 한다. 사람들은 원죄 즉 아담의 죄책과 죄성(부패성)을 가지고 태어났다. 중생한 자들 속에도 죄성이 남아 있다. 가인 속에는 교만, 시기심, 미움, 분노가 있었고 그것이 살인에 이르게 하였다.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죄악된 성질이다. 우리 속에도 이런 죄성이 있다. 우리 속에도 교만, 시기심, 미움, 분노가 있다. 우리는 이런 죄성을 죽여야 하며 이런 죄악성을 경계해야 한다. 악인에게는 평안이 없다. 그러나 회개하고 예수님 믿는 자들에게 영생이 있고 또 의와 선을 행하는 자들에게 이 땅에서도 풍성한 평안이 있다.

 

16-26절, 가인과 셋

[16-18절] 가인이 여호와의 앞을 떠나 나가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하였더니 아내와 동침하니 그가 잉태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였더라. 에녹이 이랏을 낳았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았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았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가인은 하나님의 앞을 떠나 나가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했다. 그가 하나님의 앞을 떠나 나갔다는 표현은 그가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를 섬기는 일을 멀리했음을 나타내는 것 같다. 가인의 후손들에게서는 경건성을 찾아볼 수 없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아벨 대신에 주신 셋의 아들 에노스 때가 되기 전까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줄 몰랐다.

가인은 에녹을 얻은 후에 한 성을 쌓았는데 그 성의 이름을 에녹이라고 불렀다. 그가 성을 쌓은 것은 불안과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가인의 6대손으로 라멕이라는 인물이 태어났다.

[19-22절] 라멕이 두 아내를 취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며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하여 육축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그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동철로 각양 날카로운 기계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이었더라.

[23-24절]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창상을 인하여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을 인하여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7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77배이리로다 하였더라.

라멕은 자기 아내들에게 그가 그의 상함을 인하여 소년을 죽였다고 말했고 가인을 위해 벌이 7배일 것이라는 하나님의 긍휼의 배려를 인용하며 자신을 위해서는 벌이 77배일 것이라고 말하였다. 가인의 6대손 라멕 속에는, 가인 속에 있었던 거칠고 과격한 감정이 있었을 뿐 아니라, 가인보다도 더 뻔뻔스러운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25-26절] 아담이 다시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그 여자가]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의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시작되었더라].

 창세기 5:3은 아담이 셋을 얻은 것이 그의 나이 130세 때라고 말한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 전 에덴 동산에서의 생활이 얼마 동안이었는지 모르지만 1년 정도 잡고 가인과 아벨의 출생과 성장에 약 40년을 잡는다면 아벨이 죽은 후 약 90년의 세월이 흐른 셈이 될 것이다. 그 동안, 아담과 하와는 다른 자녀들을 많이 낳았을 것이다.

셋은 105세 때에 아들 에노스를 낳았는데(창 5:6), 그때에 사람들은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표현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송하고 예배드렸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본다. 아담이 셋을 낳은 것은 130세 때이며 셋이 에노스를 낳은 때가 105세 때이니, 아담과 하와가 몇 세에 범죄했는지는 모르나, 그들이 범죄한 지 200년 이상의 세월이 흐른 후에, 또 아벨이 살해된 지 상당히 세월이 흐른 후에, 사람들이 비로소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는 말이 된다. 범죄한 아담과 그 자손들은 영적으로 매우 무디어져서 오랜 시간이 흐르도록 창조자, 섭리자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고 섬기지도 않았고 찾지도 않았던 것이다. 죄인들은 영적으로 어둡고 무지하였다.

 성경이 가인의 자손들에 대해 이렇게 기록한 것은 그 다음에 기록된 셋의 아들 에노스 때의 일과 대조하기 위한 것이 분명하다. 셋의 아들 에노스 때에 사람들은 비로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하였다. 여기에 성경의 강조하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 그러면 가인 자손의 문제점은 한마디로 불경건과 부도덕이었다. 그들은 오랜 세월 동안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라멕은 두 아내를 취했고 살인까지 했다.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는 자들은 온갖 죄를 짓는다. 가인의 자손들은 세상일에는 힘썼을지 모르나 하나님 앞에서는 근본적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인간의 본분을 모르고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살고 있었고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주신 재능과 직업을 따라 일상 생활에 충실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인간의 본분을 따라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과 영생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을 회복하고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교훈과 명령을 따라 경건과 의와 선을 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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