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celife365(주신삶에 감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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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절] 내가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갈 터이니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정하리라.

사도 바울은 “내가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갈 터이라”고 말한다. 그는 첫 번째는 그가 소아시아에서의 전도를 마치고 소위 2차 전도여행에서 유럽 전도를 시작할 때 마게도냐 지방에 있는 빌립보와 데살로니가와 베뢰아에서 전도했고 또 그 후에 아가야 지방의 아덴을 거쳐 고린도에서 1년 6개월 동안 전도함으로써 고린도 교회를 세웠었다. 고린도에서의 그의 전도 사역은 사도행전 18장에 기록되어 있다. 그는 이제 세 번째 그들에게 갈 예정이며 이 일은 두세 증인의 입으로 확정할 것이라고 말한다. 율법은 사람의 죄를 확정할 때 한 증인으로만 하지 말고 두세 증인의 입으로 하라고 규정했다(신 19:15). 그리스도인은 범사에 진실하게 말하고 진실하게 살아야 하고, 또 그의 진실성은 두세 증인의 입으로 확증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2절] 내가 이미 말하였거니와 지금 떠나 있으나 두 번째 대면하였을 때와 같이 전에 죄지은 자들과 그 남은 모든 사람에게 미리 말하노니 내가 다시 가면 용서하지 아니하리라.

사도 바울은 자신이 고린도 교회에 다시 가면 죄를 회개치 않는 자들에 대해 징벌할 것이라고 엄하게 경고한다. 사도 바울의 주관심은 죄 문제이었다. 하나님의 주관심도 죄 문제이다. 우리의 주관심도 죄 문제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문제는 죄 문제이며 범죄자들의 문제이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죄를 정직하게 회개해야 한다. 구원은 죄로부터의 구원이다. 죄를 회개하고 죄씻음을 받은 자들만 천국에 들어가 영생을 누릴 수 있다.

[3절] 이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증거를 너희가 구함이니 저가 너희를 향하여 약하지 않고 도리어 너희 안에서 강하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살아계셔서 사도 바울 안에서 그리고 사도 바울을 통하여 말씀하셨으나, 고린도 교인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그 증거를 요구하였다. 그들은 사도 바울의 약한 모습만 보았고 사도 바울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향해 결코 약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강하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의 종들의 연약한 외모만 보지 말고 그들을 세우시고 그들 안에서 역사하시는 능력의 주님을 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4절]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우리도 저의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으나 삼일 만에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셨다. 그가 십자가에 죽으셨을 때는 참으로 약하게 보였지만 그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활하셨다. 이와 같이, 주의 종들은 사람들 보기에 약해보이지만,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며 일한다.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주의 종들의 능력이 되시며 그들을 통해 능력으로 일하신다.

[5절]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자신들의 믿음을 시험하고 확증하라고 말한다. 또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 안에 계심을 알지 못하는가라고 묻는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믿는 성도들 속에 계신다.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을 가진 인격자로서 그는 지금 하늘에 하나님의 오른편에 계시지만, 그의 신성(神性)의 영으로는 지금 그를 믿는 성도들 속에 계시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성령을 받게 되었을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받게 된 것이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영이시며 그리스도의 영이시다. 만일 그들이 이 사실을 안다면 바울 속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될 것이다. 만일 그들이 참된 믿음을 가졌다면 바울의 권면대로 회개하고 순종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 속에 계심을 알지 못한다면 그들은 버리운 자일 것이다.

[6-7절] 우리가 버리운 자 되지 아니한 것을 너희가 알기를 내가 바라고 우리가 하나님께서 너희로 악을 조금도 행하지 않게 하시기를 구하노니 이는 우리가 옳은 자임을 나타내고자 함이 아니라 오직 우리는 버리운 자 같을지라도 너희로 선을 행하게 하고자 함이라.

사도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께 버리운 자가 아님을 확신하고, 고린도 교인들도 그 사실을 알기를 바란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히 믿고 순종하는 자들은 자신의 구원을 확신할 수 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은 자신이 옳은 자임을 나타내려는 것이 아니고 고린도 교인들로 하여금 죄에서 떠나 선을 행하게 하고자 함이었다. 참된 믿음과 구원은 거룩하고 선한 삶으로 나타난다. 구원받은 신자들 속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들로 하여금 선한 삶을 살도록 이끄신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목적은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다(딛 2:14). 예수께서는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하셨다(마 7:17). 구원받은 자들은 의롭고 선하게 산다.

[8-10절] [이는] 우리는 진리를 거스려[거슬러]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뿐임이니라.] [이는] 우리가 약할 때에 너희의 강한 것을[우리가 약하나 너희가 강할 때에] 기뻐하고 또 이것을 위하여 구하니 곧 너희의 온전하게 되는 것이라[것임이니라]. 이를 인하여 내가 떠나 있을 때에 이렇게 쓰는 것은 대면할 때에 주께서, 너희를 파하려 하지 않고 세우려 하여 내게 주신 그 권세를 따라 엄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라.

사도 바울은 자신이 진리를 거슬러 행하지 않고 진리를 위하는 자라고 말한다. 그는 하나님의 진리만 위하고 진리대로만 행하고 사람 앞에서 진실만을 말하였고 또 계속 그러하기를 원한다. 마귀의 세계는 거짓의 세계이지만, 하나님의 세계는 진실의 세계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진리만 위하고 진리대로만 행하고 진실만 말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약하지만 고린도 교인들이 믿음에 굳게 서서 강건하게 행하는 것을 기뻐하며, 또 그들이 온전하게 되기를 기도한다고 말한다. 사람은 예수님 믿고 구원받은 후에도 몸의 죄성이 남아 있어 아직 완전하지 못하다. 그러나 구원받은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얻은 완전한 의를 실제의 삶 속에서 나타내어야 한다. 이것이 성화(聖化)의 과정이다. 성화의 목표는 도덕적 완전이다. 우리는 도덕적으로 온전케 되기 위해 성령님의 도우심을 힘입어야 하고 또 자신도 애써야 한다. 바울은 성도들의 온전함을 위해 일하는 일꾼이다. 그는 고린도 교인들을 떠나 있을 때에도 그들의 온전함을 위해 편지를 썼다. 만일 그들이 죄를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는 사도의 권세로 그들을 징벌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들이 모든 부족과 연약을 회개하고 고침으로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고 있다.

[11-12절]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형제들아, 기뻐하라. 온전케 되며 위로를 받으며 마음[생각]을 같이 하며 평안할지어다. 또[그러면]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모든 성도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13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있기를 원하노라](벧전 1:2; 벧후 1:2). [아멘.]

[14절] 없음.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마지막으로 몇 가지를 권면한다. 첫째로, 그는 “기뻐하라”고 말한다. 그들은 죄를 범했을 때 근심했지만, 이제 회개했으므로 기뻐해야 한다.  데살로니가전서 5:16-18,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빌립보서 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둘째로, 그는 “온전케 되라”고 말한다. 고린도 교인들은 자신들의 부족을 고치고 온전해져야 한다. 마태복음 5:48,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골로새서 1:28,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디모데후서 3:16-1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셋째로, “위로를 받으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를 환난에서 위로하시는 자이시다(고후 1:3-4). 특히 그는 책망의 편지로 인해 근심하며 회개했던 자들과 고린도교회 교인들을 위로한다. 범죄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선포되지만, 회개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위로가 선언된다.

넷째로, 그는 “생각을 같이하라”고 말한다. 고린도 교회에는 분열과 파당이 있었고 거짓 교사들을 인해 사도 바울을 향해서도 간격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모든 교만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생각을 같이하고 온유와 겸손과 순종으로 일치단합해야 한다. 고린도전서 1:1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생각]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다섯째로, 그는 “평안하라”고 말한다. 평안은 죄씻음의 구원에서 오는 큰 복이다. 이 평안은 성도 상호간의 화목을 포함한다. 지상에서의 성도들의 거룩한 교제와 문안과 화목은 참으로 아름답고 복되다.

사도 바울은 “그러면 사랑과 평안의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고 말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여 온전케 되고 생각과 마음을 같이하고 서로 화목한 인간 관계를 유지하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늘 함께 계심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죄를 대속(代贖)하신 은혜이다. 그의 보혈은 우리의 과거의 추하고 더러운 죄들을 씻어주셨을 뿐 아니라, 지금도 또 주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우리의 부족과 실수와 연약을 씻어주실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만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신 구원의 사랑이다. 그 사랑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무제한적으로 주어지지 않았다.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은 택자들에게만 제한되었다. 그 사랑이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셨고, 또 그 사랑이 우리를 구원의 완성 곧 영화의 단계에까지 이끄실 것이다. 하나님의 그 사랑은 너무 크고 놀라워 아무도 그 높이와 깊이와 넓이를 측량할 수 없다.

‘성령의 교통하심’은 성령께서 우리의 영혼을 중생(重生)시키시고 회개와 믿음을 주시고 우리 속에 거하셔서 우리를 도우시고 위로하시며 의의 길로 가게 하시는 것을 가리킨다. 성령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과 구원받은 자들 속에 영원히 거하시는 목적은 바로 구원과 의를 위해서이다. 그는 우리의 구원을 실제로 시작하시고 완성하신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 즉 삼위일체 하나님의 도우심과 복 주심을 늘 사모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만세 전에 택함을 받았고, 때가 되어 성령의 중생케 하심으로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받았고, 성령께서는 우리 속에 오셔서 거하시며 우리를 위로하시고 도우신다.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원과 복 주심을 받으며 더욱 사모하며 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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