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celife365(주신삶에 감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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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절]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

사도 바울은 고린도인들에게 복음을 전했고 그들은 그것을 받았고 그 가운데 섰다. 기독교 복음은 불변적 내용으로 사도들을 통해 세상에 주어졌다. 교회는 이 복음의 터 위에 세워져 있다. 우리는 이 복음을 헛되이 받지 않고 굳게 믿음으로 구원을 얻을 것이다.

[3절]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복음의 핵심적 내용은 그리스도께서는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 ‘성경대로’라는 말은 그의 죽음이 구약성경에 예언되고 예표된 바라는 뜻이다. ‘위하여’라는 원어(휘페르 uJpe;r)는 ‘대신하여’라는 뜻이다. 그는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다. 이것이 속죄(贖罪)사역이며 속죄의 진리이다. 기독교 복음은 속죄의 복음이다.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소식은 죄 문제의 해결, 즉 죄로부터의 구원이다.

[4절]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또 그리스도께서는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라는 말씀은 그의 부활이 그가 묻히셨던 무덤을 비우시고 다시 사신 사건임을 증거한다. 그의 부활은 복음의 주요 내용이다. 

[5-8절]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대부분] 살아 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인들을 열거한다. 복음서들과 달리, 여기서는 남자들만 언급된다.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그들은 증인들이었다. 이것은 놀라운 증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인들은 수백 명이었고 주께서 부활하신 지 약 20여년이 지난 후에도 대부분 살아 있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시요 우리의 죄와 형벌을 대속하신 자이시며 따라서 기독교는 참되고 유일한 구원의 진리이다. 오늘 우리는 성경의 이런 증거들에 근거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는다.

[9절-11절] [이는]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자임이로라]. 그러나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그러므로 내나 저희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로 자신이 신자와 사도가 되었음을 고백한다. 또 그 하나님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그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자신이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은혜로 한 것이라고 간증한다. 이것은 모든 시대에 참된 모든 종들의 고백일 것이다.

[12-13절]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고린도교회에는 죽은 자의 부활을 부정하는 자들이 있었다. 이성으로는 죽은 자들의 부활이 불가능해 보이지만, 죽은 자들의 부활은 성경의 기본 진리이며(사 26:19; 단 12:2; 마 22:23-33; 히 6:1-2) 그런 기본 진리를 부정하는 자들이 교회 안에 있다는 것은 중대한 문제이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많은 증인들에 의해 확증된 사실이며 복음의 핵심 내용임을 증거함으로써 죽은 자들의 부활을 부정하는 자들을 반박하고 부활 진리를 증거했다. 

[14-15절]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하셨으리라.

그리스도의 부활은 기독교 신앙에 매우 중요하다. 만일 그리스도의 부활이 거짓이라면 그리스도인들의 믿음도 헛것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었고 그것에 근거하여 그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모든 사도들은 거짓 증인이 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면 기독교는 거짓말에 근거한 사기(詐欺)이며, 기독교 신자들은 거기에 미혹된 가련한 영혼들이 될 것이다.

[16-19절]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바울은 앞에서 말한 요지를 반복하면서 두 가지를 덧붙이고 있다. 하나는, 만일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이 그의 부활로 확증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의 죄 문제는 여전히 미해결의 문제로 남게 될 것이다. 또 하나는, 만일 그리스도의 부활이 거짓이라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망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를 믿고 소망 가운데 죽었으나 그 소망이 헛되기 때문이며 더욱이 그를 위해 핍박과 순교를 당한 자들은 헛된 죽음을 죽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기독교 전(全) 역사를 뒤엎는 일이 될 것이다.

만일 우리의 소망이 이생뿐이라면 그리스도 때문에 고난을 당하고 순교까지 당하는 자들은 가장 불쌍한 사람들일 것이다.

[20절]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그리스도의 부활은 확실한 사실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잠자는 자들 즉 죽은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 그의 부활은 죽은 자들의 부활의 시작이 되었다!

[21절] [이는]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말미암음이로다].

첫 사람 아담의 범죄로 사망이 세상에 들어왔다(롬 5:12). 사람의 범죄로 죽음이 왔기 때문에 사람이 죗값을 받음으로 죽음을 극복해야 했다. 거기에 하나님의 아들께서 왜 사람이 되셔야 했는가 하는 이유가 있다. 물론 그는 사람이 되신 후에도 여전히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참으로 사람이 되셨던 것이다.

[22절] [이는]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얻을 것임이라].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게 된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라는 말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모든 사람들(엡 1:4)을 가리킨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생명을 얻는 것은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때문이다. 그의 대속을 입은 모든 사람은 하나도 예외 없이 다 영생을 얻는다. 예수께서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요 6:39). 이것은 하나님의 예정의 성취이다.

[23절]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호이 투 크리스투)[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들]요.

부활에는 순서가 있다. 처음에는 부활의 첫 열매이신 그리스도의 부활이 있다. 그 다음에는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 곧 그의 재림 때에 그에게 속한 자들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모든 자들은 그의 재림 시 다 영광스럽게 부활할 것이다(살전 5:16).

[24절] 그 후에는 나중이니[마지막이 오리니](KJV, NASB, NIV)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그리스도의 재림과 의인의 부활이 있은 후에 세상의 종말이 올 것이다. 그때 악인의 부활도 있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악인의 부활을 ‘심판의 부활’이라고 표현하셨다(요 5:29). 다니엘서에는 그것이 수욕과 무궁한 부끄러움을 입을 부활로 묘사되었다(단 12:2). 요한계시록은 모든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심판 보좌 앞에서 심판받을 것을 증거했다(계 20:12). 그것은 참으로 두려운 일이다. 또 그때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 즉 마귀의 권세를 다 멸하실 것이다.

[25-26절] 저가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노릇하시리니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모든 원수’는 사탄과 악령들과 세상의 악한 정권들을 가리킨다(엡 6:11-12; 단 10:20-21). 그는 모든 원수를 다 복종시키실 것이다. 그는 만왕의 왕으로서 온 우주를 통치하시고 모든 원수를 복종시키실 것이다. 맨 마지막으로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다.

[27-28절] 만물을 저의 발아래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저의 아래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 만물을 저에게 복종하게 하신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신 이에게 복종케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모든 것의 모든 것이 되시려] 하심이라.

사람이 되신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친히 아버지께 복종하셨다. 그는 죽기까지 아버지께 복종하셨다(마 26:3; 빌 2:8). 그때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와 세상과 인류에게 모든 것의 모든 것이 되실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복된 부활의 첫 열매이시다. 우리도 장차 그의 영광스런 모습과 같이 부활할 것이다. 빌립보서 3:20-21,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우리는 그 복된 부활을 사모하자.

[29-32절]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저희를 위하여 세례를 받느뇨? 또 어찌하여 우리가 때마다 위험을 무릅쓰리요?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내가 범인(凡人)처럼(카타 안드로폰)[인간적 동기로] 에베소에서 맹수로 더불어 싸웠으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느뇨? 죽은 자가 다시 살지 못할 것이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죽은 자들을 위해 세례받는다는 말은 비세례교인이 세례받기 전에 죽었을 때 그의 가족이 그를 대신하여 세례를 받았던 초대교회의 한 잘못된 풍습을 가리킨 것 같으나, 그 풍습은 부활 신앙에 근거했었다. 바울은 그것을 들어 그들의 부활 소망을 증거하려 한 것 같다.

현세주의자들의 좌우명은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이다. 부활이 없다면 우리도 그런 자가 될지도 모르나, 부활과 내세가 있음을 믿기 때문에 우리는 근신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바르게 살려고 한다.

[33-34절]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호밀리아이)[교제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깨어 의를 행하고[마땅히 정신을 차리고](NASB)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교제는 영향이 있다. 부활을 부정하는 자들과의 교제는 악한 교제이며, 악한 교제는 선한 행실을 더럽힌다. 우리는 마땅히 정신을 차리고 범죄치 말아야 한다.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구주 예수님을 믿어 죄씻음과 의롭다 하심을 얻고 이제는 선하고 의롭게 살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알게 된 자들은 그렇게 살 것이다.

[35-38절]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어리석은 자여, 너의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또 너의 뿌리는 것은 장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갱이뿐이로되 하나님이 그 뜻대로 저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죽은 자의 부활을 의심하는 자들은 사람이 죽으면 몸이 썩어버리는데 어떻게 다시 살 것인가라고 말한다. 그러나 죽은 자의 부활은 자연계에서도 추론할 수 있다. 사람은 벼나 밀을 직접 심는 것이 아니고 단지 그것의 낟알 곧 씨를 땅에 뿌리고 그 씨가 땅에 심겨 썩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기쁘신 뜻대로 그것에게 각각의 형체를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벼와 밀의 씨가 썩은 후에 싹이 나고 자라 각각 벼와 밀의 형체가 되게 하시는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사람은 죽어 그 몸이 땅에 묻혀 썩지만, 장차 그 몸이 부활할 것이다.

[39-41절] 육체(사르크스)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또한]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형체들]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해의 영광도 다르며 달의 영광도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하나님께서는 사람과 짐승들과 새들을 흙으로 창조하셨다(창 2:7, 19). 물고기들도 흙으로 창조하셨다(시 104:29). 그러나 그 몸들은 다 동일하지 않고 각각 다르다. 생명체의 몸들도 다 다르고, 해와 달과 별들의 형체들도 다 다르다. 하늘의 것들과 땅의 것들의 영광이 서로 다르고 하늘의 것들 간에도 영광이 서로 다르다. 해와 달과 별들은 그 크기와 밝기에 있어서 각기 다르다.

[42-44절]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부활 전의 사람의 몸은 썩을 몸이지만, 부활 후의 사람의 몸은 썩지 않을 몸이다. 사람이 범죄한 후 모든 피조물과 피조 세계는 시들고 쇠하고 죽어 썩는 존재가 되었다. 그것은 죄의 결과이다. 그러나 죄씻음의 구원의 결과인 부활의 몸은 썩지 않을 몸인 것이다. 부활의 몸은 죄악성이 다 제거된 몸일진대 썩지 않아야 마땅하다.

부활 전의 몸은 육의 몸이지만, 부활 후의 몸은 신령한 몸이다. ‘육의 몸’은 타고난 죄성(罪性) 즉 죄악된 욕구와 감정의 지배를 받는 몸이라는 뜻이나, ‘신령한 몸’은 ‘성령께서 거하시는 몸, 죄성이 없는 몸’을 가리킬 것이다. 또 그 몸은 예수님의 부활의 몸처럼 시간과 공간의 제약성을 초월하는 성질도 가질 것이다(요 20:19).

[45-46절]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프쉬케 조산)[산 존재]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자가 아니요 육 있는 자요 그 다음에 신령한 자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마지막 아담으로 죄 없는 인성(人性)을 입고 오셔서 인류의 모든 죄와 불행의 문제를 해결하셨다. 그는 살려주는 영이 되셨다. ‘살려주는 영’ 혹은 ‘생명을 주는 영’이라는 말은, 예수께서 인류의 대속(代贖)을 이루셨고 지금 성령으로 죄인들에게 그 속죄를 적용하여 새 생명을 주시는 구원의 일을 하심을 의미한다. ‘먼저는’은 첫 사람 아담을 가리키고, ‘그 다음에’는 마지막 아담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첫 사람 아담은 육적 생명을 가진 존재이었고, 마지막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영적 존재이시다. 예수께서는 처음부터 신성(神性)의 영이셨지만, 부활 전에는 그 사실이 그의 육신에 가리워 있으셨으나 부활 후에는 그것이 밝히 드러나셨다.

[47-49절]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곧 주(主)]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무릇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는 저 하늘에 속한 자들과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입자].

첫 사람은 몸이 먼저 지음 받고 그 후에 영혼이 지음 받았다. 그러나 둘째 사람 곧 주께서는 본래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신 영이시다. 그는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이시다(요 1:1). 신적 영이신 그가 때가 되어 처녀 마리아의 몸에 잉태되어 사람의 본질을 취하신 것이다. 그의 근본은 육이 아니며 영이시다. 그는 하늘로부터 오신 분이시다.

[50절]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血)과 육(肉)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썩을 것]은 썩지 아니한 것[썩지 아니할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51-52절]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이는]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변화할 것임이라].

주의 재림 때에 있을 죽은 자들의 부활과 살아 있는 자들의 변화는 우리가 지금 다 이해할 수 없는 비밀과 같다. 주 예수님의 재림을 알리는 나팔소리가 끝날 때 죽은 성도들의 부활과 살아 있는 성도들의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그것은 ‘순식간에 홀연히’ 일어날 것이다. ‘홀연히’라는 원어(엔 리페 오프달무)는 ‘눈 깜짝할 사이에’라는 뜻이다(KJV, NASB, NIV).

[53-54절] [이는]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입어야 하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입어야 함이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부활의 시간이 오면 사망의 확실한 패배가 증명될 것이다. 이것은 이미 구약성경에 예언된 바이었다. 이사야 25:8은 “[여호와께서]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고 예언했다. 역사상 사망처럼 강력한 승리자가 없었지만, 그때가 되면 그것이 패배하고 말 것이다. 성도의 부활과 변화는 사망에 대한 영원한 승리이며 사망의 영원한 추방이다.

[55-56절]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무덤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사망의 권세는 죄 때문이며 죄가 힘을 가지는 것은 율법 때문이다. 인류 6천년 역사는 사망과 무덤이 지배해왔다. 모든 사람은 죽었고 무덤에 묻히었다. 그러나 죽은 성도가 부활하고 산 자들이 변화될 때 그 기록이 깨질 것이다. 이것은 인류의 최종적 원수인 사망에 대한 승리이다. 부활과 영생의 승리보다 더 감격적인 것은 없을 것이다.

[57-58절]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바울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주신 사망에 대한 승리를 감사하며 두 가지를 권면한다. 첫째는, 우리가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과 그의 약속들, 특히 죽은 자들의 부활에 대한 약속들을 확신하고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 둘째는, 우리는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는 것이다. 주의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요 6:29) 복음을 전하고(막 16:15) 교회를 세우는 일이다(마 16:18). 우리의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죄를 짓지 말고 선을 행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거룩함이다. 구원은 죄로부터의 구원이며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과 거룩하게 하심이다. 부활과 천국을 소망하는 자는 이 세상 것들 때문에 비굴하게 범죄하지 않는다. 우리는 죄를 멀리하고 선을 행해야 한다.

우리는 견고히 서서 주의 일에 더욱 힘써야 한다. 우리가 세상에 살아 있는 목적은 주의 일을 하기 위해서다. 주의 일은 복음을 전하며 참 교회를 세우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그것보다 더 귀한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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