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celife365(주신삶에 감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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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들의 온 무리가 일어나 그분을 빌라도에게 끌고 가서 2 그분을 고소하기 시작하여 이르되, 우리가 보니 이자가 민족을 그릇되게 하고 카이사르에게 공세 내는 것을 금하며 스스로 그리스도 곧 왕이라 하더이다, 하매 3 빌라도가 그분께 물어 이르되, 네가 유대인들의 왕이냐? 하니 그분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그렇게 말하는도다, 하시니라.

4 이에 빌라도가 수제사장들과 사람들에게 이르되, 나는 이 사람에게서 아무 잘못도 찾지 못하노라, 하매 5 그들이 더욱 사나워져서 이르되, 그가 온 유대인 거주지에서 두루 가르치고 갈릴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이곳 까지 와서 백성을 선동하나이다, 하 니 6 빌라도가 갈릴리라는 말을 듣고 그 사람이 갈릴리 사람인지 물어 7 그분이 헤롯의 관할에 속한 줄을 알고 곧 헤롯에게 그분을 보내었는데 그때에 그도 예루살렘에 있더라.

8 ¶ 헤롯이 예수님을 보고 크게 반가워하니 이는 그가 그분에 대해 많은 것을 들었으므로 오랫동안 그분을 보기를 원하였고 또 그분께서 행하시는 어떤 기적을 보려고 바랐기때문 이더라. 9 그때에 그가 많은 말로 그분께 물으나 그분께서 아무것도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10 수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서서 맹렬히 그분을 비난하더라. 11 헤롯이 자기 군사들과 함께 그 분을 무시하며 조롱하고 그분께 화려 한 긴 옷을 차려입히고 그분을 빌라도 에게 도로 보내니라.

12 ¶ 바로 그 날 빌라도와 헤롯이 함께 친구가 되었더라. 그들은 전에 서로 원수 사이였더라. 13 ¶ 빌라도가 수제사장들과 치리 자들과 백성을 함께 불러 14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이 사람을 내게로 데려와 백성을 나쁜 길로 이끄는 자라 하였도다. 보라, 내가 너희 앞에서 그를 조사하였으되 너희가 고소하는 그 일들에 대하여 내가 이 사람에게서 아무 잘못도 찾지 못하였고 15 내가 너희를 헤롯에게 보내었으나 그 역시 전혀 찾지 못하였도다. 보라, 그는 죽을 일을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세상은 참으로 악하였다. 유대 지도자들의 무지와 죄악은  컸다. 그들은 마음이 어두워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알지 못했다. 어떤 이들은 그를 고소하고 비난했고 다른 이들은 그를 무시하고 조롱했다. 그들은 다 진리나 정의에 관심이나 열심이 없었다. 빌라도나 헤롯은 예수님이 죄가 없는 죄수라면 당연히 풀어주어야 했지만, 아무에게도 그런 정의감이 없었다. 그들은 세상 권세나 명예나 돈이나 쾌락으로 인생을 즐기며 만족하며 사는 자들이었다. 우리는 정직하고 선하게 살아야 한다.

16 그러므로 내가 그를 징계하고 놓아주리라, 하니 17 (이는 그 명절이 되면 그가 필연 적으로 반드시 한 사람을 그들에게 놓아주어야 하기 때문이더라.) 18 그들이 다 일제히 소리를 지르며 이르되, 이 사람을 없애 버리고 바라바를 우리에게 놓아주소서, 하니라. 19 (그는 그 도시에서 일어난 어떤 폭동과 살인으로 인해 감옥에 갇힌 자더라.)

20 그러므로 빌라도가 예수님을 놓아주려고 다시 그들에게 말하였으나 21 그들이 소리를 지르며 이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하매 22 그가 그들에게 세번째 이르되, 도대체 그가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에게서 죽일 이유를 찾지 못하였나니 그러므로 그를 징계하고 가게 하리라, 하더라.

23 그들이 큰 소리로 재촉하며 그 분을 십자가에 못 박을 것을 요구하니 그들과 수제사장들의 목소리가 이기 니라. 24 빌라도가 그들이 요구한 대로 되도록 선고하고25 그들이 원하던 자 곧 폭동과 살인으로 인해 감옥에 갇힌 자는 그들에게 놓아주고 예수님은 넘겨주어 그들의 뜻대로 하게 하니라.

로마 총독 빌라도는 이성과 양심으로는 예수님이 죄가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사람들의 여론과 총독직의 유지를 위해 잘못된 판결을 내렸다. 그는 자신의 이성적, 양심적 판단과는 다르게 사람들의 낯을 보고 그릇된 판결을 내렸다. 공의의 판결을 내려야 할 재판장의 위치에 있었던 그가 불의한 판결을 내렸다. 우리는 빌라도처럼 사람들의 낯을 보고 비겁하고 비굴하게 악을 행하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모든 일을 하나님 앞에서, 성경에 근거하여, 그리고 이성과 양심을 따라 정직하고 용기 있게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해야 한다.

26 그들이 그분을 끌고 가다가 시 골에서 오고 있는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을 붙잡아 그에게 십자가를 지워 주고 그가 예수님 뒤에서 그것을 지고 가게 하였더라.

27 ¶ 백성과 또 그분으로 인해 슬피 울며 애통하는 여자들의 큰 무리가 그분을 따라오더라. 28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들을 향해 돌이키시며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들을 위해 울라

. 29 보라, 날들이 이르리니 그때에 그들이 말하기를, 수태하지 못하는 자와 해산하지 못한 태와 젖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 30 그때에 그들이 산들에게 말하기 시작하여 이르기를,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에게 이르기를,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

31 그들이 푸른 나무에 이런 일들을 행할진대 마른 것에는 무슨 일이 행해지리요? 하시니라. 32 또 다른 두 범죄자도 죽게 되어 그분과 함께 끌려가니라.

주께서는 처음에 그 무거운 십자가를 홀로 지셨다. 제자들 중에는 아무도 그것을 함께 질 자가 없었다. 또 그 길에는 수많은 여자들의 통곡이 있었다. 우리가 주를 따르려면, 우리는 주의 가신 고난의 길을 갈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주께서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고 말씀하셨다(마 5:10-12).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말했다(골 1:24). 우리는 고난에 참여할 각오를 가지자.

33 그들이 갈보리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고 그 범죄자들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오른편에 다른 하나는 왼편에 있더라.

34 ¶ 그때에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 분의 옷을 나누어 제비를 뽑고

35 백성은 서서 지켜보는데 치리 자들도 그들과 함께 그분을 비웃으며 이르되, 그가 남들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그가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 곧 그리스도이면 자기도 구원할 것이라, 하더라. 36 또 군사들도 그분을 조롱하면서 그분께 나아와 식초를 바치며

37 이르되, 네가 만일 유대인들의 왕이거든 네 자신을 구원하라, 하더라.

38 그분 위에는 그리스어와 라틴어와 히브리어로 이 사람은 유대인들의 왕이라 쓴 글도 있더라.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는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패가 있었다. 전통사본에는 “헬라어와 라틴어와 히브리어 글자들로”라는 말이 있다. 요한복음도 같은 내용을 증거한다(요 19:20). ‘유대인의 왕’이라는 말은 예수께서 자신에 대해 주장하신 내용으로서 사실상 그가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라는 뜻이다. 이 죄패가 헬라어와 라틴어와 히브리어로 쓰여졌다는 것은 예수께서 유대인의 왕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온 천하에 알리는 의미가 있다. 당시에 헬라어를 쓰던 일반 대중들이나 라틴어를 쓰던 지식인들이나 히브리어를 쓰던 유대인들은 누구든지 이 사실을 알아야 했다. 예수께서 유대인의 왕 그리스도라는 사실은 천하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하나님의 복음이다.

십자가 위에 달리신 예수님는 참으로 유대인의 왕 그리스도이시다. 그가 힘이 없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는가? 아니다. 그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것은 만세 전부터 하나님의 정하신 뜻이었다. 그는 죽기 위해 세상에 오셨다. 그의 죽음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의 구원을 위함이었다. 그는 친히 말씀하시기를, “인자(人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代贖物)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셨다(마 20:28). 그의 고통과 수욕의 죽음 때문에 우리는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의 큰 구원을 얻었다. 그는 이 일을 위해 오셨고 십자가에 죽으셨다.

 

39 ¶ 매달린 범죄자 중의 하나는 그분을 욕하며 이르되, 네가 만일 그리스도이거든 네 자신과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40 다른 하나는 되받아서 그를 꾸짖으며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41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합당 한 보응을 받으니 참으로 공정하게 정죄를 받거니와 이 사람은 아무 잘못도 행하지 아니하였느니라, 하고 42 예수님께 이르되, 주여, 주께서 주의 왕국으로 들어오실 때에 나를 기억하옵소서, 하매

43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44 그 때는 여섯 시쯤이며 어둠이 아홉 시까지 온 땅을 덮었더라.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행악자는 자신의 선한 행위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그의 악행으로 사형을 받고 있었다. 그것은 사람이 자기의 선행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님을 잘 보여준다. 사람의 선행은 누더기옷과 같다(사 64:6).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로 된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 에베소서 2:8-9,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우리가 영광스런 천국에 들어가고 복된 영생을 누리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다.

십자가에 달려 죽어가던 한 행악자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악한 죄인이라도, 어떤 절망적인 순간에라도, 심지어 죽음의 문앞에서라도 구원하실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원하신다면 어떤 죄인도 구원하실 것이다. 저 행악자가 받은 구원이 바로 그러한 구원이었다. 인간적으로 아무런 소망이 없었던 저 죄인을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구원하셨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는 동일하다. 그러나 오늘날도 구원얻고자 하는 자는 자신의 죄인임을 인정해야 하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고 그에게 자신을 의탁해야 한다.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다.

45 또 해가 어두워지고 성전의 휘 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니라.

46 ¶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외치 시고는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영을 아버지의 손에 맡기나이다, 하시고 이렇게 말씀하신 뒤에 숨을 거두시니라.

47 이제 백부장이 이루어진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이분은 확실히 의로운 사람이었도다, 하더라.

48 그것을 구경하러 함께 모인 모든 사람들도 일어난 그 일들을 보고는 가슴을 치며 돌아갔고 49 그분을 아는 모든 자들과 갈릴리에서부터 그분을 따라온 여자들도 멀리 서서 이 일들을 보더라.

이것을 구경하러 모인 무리들도 그 된 일을 보고 다 가슴을 두드리며 돌아가고 예수님을 아는 자들과 및 갈릴리로부터 따라온 여자들도 다 멀리 서서 이 일을 보았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는 여자들 가운데 몇 사람이 언급되어 있다. 그들은 막달라 마리아,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 그리고 살로메 등이었다(마 27:56; 막 15:40).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담대히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성소의 휘장이 찢어졌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또 어떤 연약과 어려움 가운데서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를 의지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항상 담대히 나아가자.

 

50 ¶ 보라,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공회원이며 선하고 의로운 사람으로 51 (그들의 결의와 행동에 찬성하 지 아니한 바로 그 사람이더라.) 그는 유대인들의 도시 아리마대 출신으로 역시 하나님의 왕국을 기다리더라.

52 이 사람이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 님의 몸을 달라고 간청하여

53 그 몸을 내려다가 아마포로 싸고 결코 전에 사람을 둔 적이 없는 돌무덤 곧 돌속에 판 돌무덤에 그 몸을 두니라.

54 그 날은 예비일이며 안식일이 다가오더라. 55 갈릴리에서부터 그분과 함께 온 여자들도 뒤를 따라가서 그 돌무덤을 보고 또 그분의 몸을 어떻게 두었는지 보고

56 돌아가서 향품과 기름을 예비 한 뒤 명령에 따라 안식일에 안식하더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날은 안식일의 예비일, 즉 금요일이었다. 안식일이 거의 되었다는 말은 금요일 오후가 되었다는 뜻이다. 당시의 안식일은 금요일 해가 질 때부터 토요일 해가 질 때까지이었기 때문이다. 갈릴리에서 예수님과 함께 온 여자들은 뒤를 좇아 그 무덤과 그의 시체를 어떻게 둔 것을 보고 돌아와 향품과 향유를 예비했다.

그것은 그의 시체에 바르고 그 곁에 두기 위한 것일 것이다. 그것들은, 아마도 물로 씻지도 못하고 피로 얼룩진 채로 장사된 예수님의 시체를 씻고 냄새를 줄이는 데 사용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필요하게 보이는 일이지만, 그들은 안식일 때문에 그 일을 중단하고 계명을 좇아 쉬었다. 그들은 경건한 여인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대하지 못하였다. 그들은 부활하실 주님을 기대하지 못하고 단지 그의 시체에 향품을 두고 향유를 바르려고 하였다.

예수님은 장사되었다. 그는 확실히 죽으셨고 그 시체는 바위에 판 무덤에 놓이셨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하실 일들을 위해 그의 종들을 남겨두신다. 그는 아리마대 사람 요셉을 사용하셔서 예수님의 무덤을 준비하고 장사(葬事)를 하게 하셨다. 우리는 이 어두운 시대에도 하나님께서 그의 일들을 위해 쓰시려고 남겨놓으신 종들이 되기를 원한다. 우리는 악한 시대를 분별하고 거기 물들지 말고 필요할 때는 기꺼이 이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면서 하나님과 그의 일을 위하여 한 부분, 한 분야에서 쓰이는 일꾼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악하고 불의한 자들의 틈 속에서 선하고 의롭게 살고 악한 자들의 계획과 행사에 요셉처럼 ‘아니오’라고 자신의 의사를 밝히고 또 이 세상에 가치와 소망을 두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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