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celife365(주신삶에 감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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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절]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성도는 사회적 의무도 가진다. ‘위에 있는 권세들’은 국가의 통치자들을 말한다. 성도는 국가의 통치자들에게 복종해야 한다. 그 이유는 그들의 권세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왔기 때문이다. 디도서 3:1, “정사(政事)와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라.” 베드로전서 2:13-14,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장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 방백에게 하라.”

[2절]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거스름]이니 거스리는[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정죄]을 자취하리라.

성도가 나라의 법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국가의 통치자들의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르는 것이다. 성도는 악한 국가에서라도 나라의 법을 지켜야 한다. 그 법을 거스르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므로 하나님의 심판을 자취하게 된다.

[3-5절] 관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그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자니라. 그러므로 굴복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노를 인하여만 할 것이 아니요 또한 양심을 인하여 할 것이라.

국가의 통치자들은 사회의 질서를 위해 세워진 자들이다. 그들이 악할지라도, 만일 그들이 없다면, 사회는 더욱 혼란해질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국가의 통치자들은 ‘하나님의 사자’이다. 본장은 그들을 ‘하나님의 사자’라고 두 번(4절), 하나님의 일꾼이라고 한 번(6절) 부른다.

[6-7절] [이는] 너희가 공세(貢稅)를 바치는 것도 이를 인함이라.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힘씀이니라]. [그러므로](전통본문)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공세(貢稅)를 받을 자에게 공세를 바치고 국세(國稅) 받을 자에게 국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6절의 ‘이 일’이란 사회에서 권선징악(勸善懲惡)과 질서 유지의 일을 가리킨다. 국가의 통치자들은 하나님의 일꾼들이며 그들이 바로 이 일을 위하여 힘쓰고 수고하는 것이다. 국민의 세금은 일차적으로 그런 일을 위해 쓰인다. 주께서도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말씀하셨다(마 22:21). 또 성도는 사회에서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고 존경할 자를 존경해야 한다.

[8절]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성도는 또 이웃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우리는 남에게 빚을 지지 말아야 하고 부득이 빚을 진 경우는 떼어먹지 말고 반드시 또 먼저 갚아야 한다. 그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인 우리가 그의 명하신 새 계명대로 서로 사랑한다면 우리는 서로 사랑의 빚을 많이 지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정상이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십계명의 정신이다. 이웃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법을 다 이룬 것과 같다.

[9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는 등의 십계명의 말씀들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법 속에 다 들어 있다. 사랑하라는 명령 속에 이 모든 내용들이 다 들어 있다.

[10절]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참된 사랑은 거룩한 사랑이다. 그것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않는다. 그것은 이기적이지 않고 상대방을 배려하며 악을 행치 않는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다. 십계명은 우리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우리의 이웃을 우리의 몸같이 사랑하라는 내용으로 요약된다.

[11절]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음이니라.

오늘 우리는 주 예수님의 재림의 때가 더 가깝다고 느껴야 한다. 주께서는 자신의 재림의 징조에 대해 말씀하신 후, 제자들에게 깨어 있으라고 교훈하셨다.

[12-14절]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의 의를 믿고 그의 성품을 본받고 그의 교훈대로 서로 사랑하는 것을 말한다. 정욕을 위해 육신의 일을 도모하는 것은 죄악된 일을 행하는 것을 말한다. 죄악된 일은 사람의 욕심에서 나온다.

[1-2절]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연약한 자는 채소를 먹느니라.

신앙 문제에 있어서, 성경에 명료하게 계시된 진리들이 있고 그렇지 않은 문제들이 있다. 분명한 진리들에 대해서는 다른 생각을 용납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하지 않은 문제들에 대해서는, 진리의 지식과 믿음의 정도에 따라 사람마다 이해하는 데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이때 믿음이 있는 자들은 믿음이 연약한 자들을 정죄하지 말고 그들을 포용하고 바른 지식에 이르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3-4절]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못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저를 받으셨음이니라.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뇨? 그 섰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제 주인에게 있으매 저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저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하나님께](전통본문)있음이니라.

우리는 특히 음식 문제에 있어서 믿음이 연약한 자들을 업신여기거나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믿음이 약한 자들을 판단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 그들의 서고 넘어짐이 그 주인이신 하나님께 있고, 그들이 넘어진다 할지라도 그들을 세우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연약한 형제의 부족을 판단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5절] 혹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지니라.

음식 문제뿐 아니라 절기 문제도 그렇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 2:16-17에서,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판단]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고 말했다. 

[6절]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날을 중히 여기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지 않고](전통사본)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의 의(義)를 믿어 구원 얻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주님을 위해 살 것이다. 음식과 절기에 대한 개인적 확신이 어떠하든지 간에, 그들은 다 주님을 위해 사는 자들이다.

[7-8절]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이는]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것임이로라].

구원 얻은 성도는 자기를 위해 살지 않고 오직 주 예수님을 위해 산다. 피조물이 창조주를 위해 사는 것은 당연하다. 더욱이, 주 예수님의 대속 사역으로 구원 얻은 우리는 주를 위해 살아야 마땅하다. 성도의 삶의 목표와 죽음의 목표는 우리 자신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살고 그를 위해 죽는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5:15에서,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했다.

[9절]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니라.

[10-12절]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그리스도](전통본문)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사 45:23). 이러므로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直告)하리라[아뢰리라].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주님이시요 우리는 다 그의 종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를 판단치 말고 주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우리는 다 하나님의 심판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이다(고후 5:10).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기 때문이다(요 5:22). 그때 우리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고백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연약한 형제들을 용납하고 그들을 판단치 말아야 한다.

[13-14절]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판단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으로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을 주의하라.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깨끗지 않은]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깨끗지 않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깨끗지 않으니라].

우리는 믿음이 약한 자를 용납할 뿐만 아니라, 또한 다른 형제에게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을 두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이것이 사랑으로 행하는 태도이다. 우리가 상대를 사랑한다면 그에게 시험과 장애가 되는 일을 하지 않아야 한다. 사도 바울은 먹는 문제에 관해 무엇이든지 스스로 더러운 것이 없고 더럽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 그것이 더럽다고 말하였

[15-16절] 만일 식물을 인하여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치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식물로 망케 하지 말라. 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

음식 자체가 더럽지는 않지만, 우리가 사랑이 없이 지식만 가지고 어떤 음식을 먹음으로 믿음 약한 형제를 근심케 하는 것은 좋지 않다. 예수께서 믿음 약한 자를 위해서도 죽으셨으므로 우리는 음식 때문에 약한 자의 믿음을 잃게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한 일을 하되 남에게 오해나 상함이나 거리낌을 주지 않으면서 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사랑으로 해야 한다.

[17-18절] [이는]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희락임이라].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인정]을 받느니라.

천국에서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중요하지 않고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안과 기쁨이 중요하다. 또한 성도들은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할 수 있고 또 기뻐해야 한다(살전 5:16). 기쁨은 성령의 열매이다(갈 5:22). 우리는 세상에서도 천국의 복을 누린다. 또 의와 평안과 기쁨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시고 사람들에게도 칭찬을 받을 것이다.

[19-21절] 이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힘쓰자](전통본문). 식물을 인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말라. 만물이 다 정하되[깨끗하되] 거리낌으로[남에게 거리낌을 주면서](NASB, NIV) 먹는 사람에게는 악하니라.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하거나 마음을 상하게 하거나 약하게 하는](전통본문)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

‘덕을 세운다’(건덕, 健德)는 말은 다른 이들에게 유익을 주는 것을 말한다. 모든 음식은 다 깨끗하지만, 거리낌으로 먹는 자에게 해가 될 수 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8:13에서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고 말하였다.

[22-23절]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의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책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한 연고라.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 (전통사본에는 롬 16:15-17이 있음.)

우리는 신앙에 본질적이지 않은, 중요하지 않고 지엽적인 문제들에 대해 개인적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그래서 거리낌으로 행하지 말고 믿음으로 행해야 한다. 믿음으로 행치 않고 거리낌으로 음식을 먹는 자는 범죄하게 된다. 믿음으로 하지 않는 모든 것이 죄가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범사에 개인적 확신을 가지고 행해야 한다.

우리는 믿음이 약한 자들을 비평하지 말고 용납해야 한다(1-3절). 우리는 신앙의 본질적인 문제들, 즉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구원 등에 관한 교리들은 확실하고 일치된 생각을 가져야 하지만, 비본질적 문제들은 생각이 다를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받으신 줄 알고 그들을 정죄하지 말고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화목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써야 한다(19절). 우리는 서로 화목하고 사이좋게 지내야 하고 다른 이들의 믿음을 허물거나 약하게 하지 말고 그들에게 유익을 주는 자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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