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celife365(주신삶에 감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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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절] 우리가 저희를 작별하고 행선하여 바로 고스로 가서 이튿날 로도에 이르러 거기서부터 바다라로 가서 베니게로 건너가는 배를 만나서 타고 가다가 구브로를 바라보고 이를 왼편에 두고 수리아로 행선하여 두로에서 상륙하니 거기서 배가 짐을 풀려 함이러라. 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 이 여러 날을 지난 후 우리가 떠나갈새 저희가 다 그 처자와 함께 성문 밖까지 전송하거늘 우리가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어 기도하고 서로 작별한 후 우리는 배에 오르고 저희는 집으로 돌아가니라.

바울 일행은 에베소 장로들을 작별하고 배 타고 두로에 상륙하였다. 그는 거기서 제자들을 찾아 7일간 머물렀고 그들과 교제를 나누었다. 두로의 제자들은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핍박받을 것을 예감하면서 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고 말했다.

[7-9절] 두로로부터 수로를 다 행하여 돌레마이에 이르러 형제들에게 안부를 묻고 그들과 함께 하루를 있다가 [바울과 함께한 자들은](전통사본) 이튿날 떠나 가이사랴에 이르러 [우리는]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유하니라. 그에게 딸 넷이 있으니 처녀로 예언하는 자라.

바울 일행은 두로를 떠나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유했다. 빌립은 예루살렘 교회가 구제와 봉사의 일을 위해 세웠던 일곱 집사들 중 한 사람이었다(행 6장).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사마리아에 최초로 복음을 전했고 에디오피아 여왕의 내시에게 복음을 전한 전도자이었다(행 8장). 

[10-11절] 여러 날 있더니 한 선지자 아가보라 하는 이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 하거늘.

사도 시대에는 사도들 외에도 예언의 은사를 받은 자들이 있었다. 선지자 아가보도 그 중의 하나이었다. 아가보는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손과 발을 잡아매고 성령으로 말하기를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바울을 이방인의 손에 넘겨줄 것이라고 했다. 바울은 밀레도에서도 에베소 장로들에게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고 하였다”고 말했었다(행 20:23).

[12-14절]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곳 사람들로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바울이 대답하되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저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

바울 일행과 가이사랴의 성도들은 선지자 아가보의 예언을 듣고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했다. 그들의 권함은 진지하였고 간곡하였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올라가려는 바울의 결심은 확고하였다. 그는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고 대답하였다.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 한 것은, 예루살렘을 사모한 이유 외에도, 아시아와 마게도냐에서 더 이상 그가 전도할 곳이 없었고 또 예루살렘 방문 후 로마와 서바나까지 가기를 소원했기 때문인 것 같다(행 19:21; 롬 15:23-26). 로마와 서바나[스페인]는 당시에 땅끝이었다. 그러나 그는 지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고 굳게 결심하고 그곳에서 결박받을 뿐만 아니라 죽을 것도 각오하고 있다. 바울은 오직 하나님을 위하여 예루살렘에 올라가려고 했다. 사람이 어떤 결심을 하든지 하나님께서는 결국 그의 뜻을 이루실 것이다.

[15-19절] 이 여러 날 후에 행장[짐]을 준비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갈새 가이사랴의 몇 제자가 함께 가며 한 오랜 제자 구브로 사람 나손을 데리고 가니 이는 우리가 그의 집에 유하려 함이라. 예루살렘에 이르니 형제들이 우리를 기꺼이 영접하거늘 그 이튿날 바울이 우리와 함께 야고보에게로 들어가니 장로들도 다 있더라. 바울이 문안하고 하나님이 자기의 봉사로 말미암아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고하니.

바울은 예루살렘에 와서 일행과 함께 야고보와 장로들에게 문안하였다. 이 야고보는 예수님 동생 야고보로서(갈 1:19) 예루살렘 교회의 대표적 인물이었다.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 특히 야고보에게 문안한 것은 좋은 본이 된다. 교회는 주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에 우리는 할 수 있는 대로 서로 교제하고 문안해야 한다. 성도의 교제는 항상 즐겁고 복된 일이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이다.

[20-22절] 저희가 듣고 하나님께[주께](전통본문) 영광을 돌리고 바울더러 이르되 형제여, 그대도 보는 바에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명이 있으니 다 율법에 열심 있는 자라. 네가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가르치되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하지 말고 또 규모[관습]를 지키지 말라 한다 함을 저희가 들었도다. 그러면 어찌할꼬 저희가 필연 그대의 온 것을 들으리니[들으므로 무리가 필연 모이리니](전통본문)

바울의 전도 보고를 들은 야고보와 장로들은 주께 영광을 돌렸다. 왜냐하면 우리가 행한 선한 일들은 다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야고보와 예루살렘 교회 장로들은 바울에게 한가지 근심된 일을 말하였다. 그것은 믿는 유대인들의 문제이었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유대인들은 수만명에 달하였다. 그들은 다 율법에 열심이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바울에 대해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사람의 정보는 매우 제한적이고 또 빈번히 잘못되기 일쑤이다. 그들은 바울이 이방인들 세계에서 유대인들을 가르치기를,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말고 유대인들의 전통적 관습을 지키지 말라고 한다고 알고 있었다. 그것은 잘못된 정보이었다. 그들은 이 잘못된 정보 때문에 바울에 대해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바울이 예루살렘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모여들 것이 분명했다. 바울에 대한 유대인들의 핍박은 예견되는 일이었다.

[23-26절] 우리의 말하는 이대로 하라. 서원한 네 사람이 우리에게 있으니 저희를 데리고 함께 결례[정결의식]를 행하고 저희를 위하여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 그러면 모든 사람이 그대에게 대하여 들은 것이 헛된 것이고 그대도 율법을 지켜 행하는 줄로 알 것이라. 주를 믿는[믿은] 이방인에게는 우리가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피할 것을[피할 것 외에는 그런 것을 지키지 않도록](전통본문) 결의하고 편지하였느니라 하니 바울이 이 사람들을 데리고 이튿날 저희와 함께 결례[정결의식]를 행하고 성전에 들어가서 각 사람을 위하여 제사 드릴 때까지의 결례[정결의식]의 만기된 것을 고하니라.

야고보와 예루살렘 교회의 장로들은 바울로 정결의식을 행하게 함으로써 그가 율법과 유대인들의 전통을 지키는 자임을 사람들에게 알리려 했다. 바울은 준비된 사람들을 데리고 이튿날 그들과 함께 그 의식을 행하고 성전에 들어가 각 사람을 위해 제사 드릴 때까지의 그 의식의 만기된 것을 고하였다. 사도시대에 예수님 믿은 유대인들은 여전히 율법의 규례를 지키고 있었다. 그것은 과도기적 현상이다. 그러나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총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방인들에게는 단지 네 가지만 조심하도록 결의하였었다.

[27-30절] 그 이레가 거의 차매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보고 모든 무리를 충동하여 그를 붙들고 외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곳을 훼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인데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게 하였다 하니 이는 저희가 전에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가 바울과 함께 성내에 있음을 보고 바울이 저를 성전에 데리고 들어간 줄로 생각함일러라. 온 성이 소동하여 백성이 달려와 모여 바울을 잡아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가니 문들이 곧 닫히더라.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은 바울을 비난하고 해치려 했다.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이나 율법이나 예루살렘 성전을 비방하지 않았으나 그들은 바울을 그렇게 생각했고 또 바울이 헬라인을 성전에 데리고 들어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렇게 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어떤 사람에 대해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바른 판단을 내려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당한 이유가 없는 어떤 선동하는 말에 바른 생각과 판단 없이 따라다녀서는 안 된다.

[31-32절] 저희가 그를 죽이려 할 때에 온 예루살렘의 요란하다는 소문이 군대의 천부장에게 들리매 저가 급히 군사들과 백부장들을 거느리고 달려 내려가니 저희가 천부장과 군사들을 보고 바울 치기를 그치는지라.

바울은 잡혀죽을 위험에 처했으나, 치안을 맡은 로마 군인인 천부장이 소동의 소식을 듣고 급히 군사들을 거느리고 왔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이었다. 사람의 죽음은 하나님의 정하신 시간이 되어야 온다. 하나님께서는 천부장을 보내심으로 바울에게 피할 길을 주셨다.

[33-36절] 이에 천부장이 가까이 가서 바울을 잡아 두 쇠사슬로 결박하라 명하고 누구며 무슨 일을 하였느냐 물으니 무리 가운데서 어떤 이는 이 말로, 어떤 이는 저 말로 부르짖거늘 천부장이 소동을 인하여 그 실상을 알 수 없어 그를 영문[병영] 안으로 데려가라 명하니라. 바울이 층대에 이를 때에 무리의 포행[폭행]을 인하여 군사들에게 들려가니 이는 백성의 무리가 그를 없이하자고 외치며 따라감이러라.

바울은 두 쇠사슬에 결박되어 끌려갔고 사람들은 그를 없이하자고 외치며 따라갔다. 이것이 어두움이 지배하는 세상의 현실이다. 예수께서 정죄를 받으실 때도 그러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신다. 그는 사람들의 선행과 악행을 다 보시고 헤아리시고 판단하시고 보응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는 그의 정하신 때에 나타날 것이고 또 마지막 날에 완전하게 드러날 것이다.

[37-40절] 바울을 데리고 영문으로 들어가려 할 그때에 바울이 천부장더러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말할 수 있느뇨? 가로되 네가 헬라 말을 아느냐? 그러면 네가 이전에 난을 일으켜 4천의 자객[암살자들]을 거느리고 광야로 가던 애굽인이 아니냐? 바울이 가로되 나는 유대인이라. 소읍이 아닌 길리기아 다소 성의 시민이니 청컨대 백성에게 말하기를 허락하라 하니 천부장이 허락하거늘 바울이 층대 위에 서서 백성에게 손짓하여 크게 종용히[조용히] 한 후에 히브리 방언으로 말하여 가로되.

바울은 자신을 결박하여 끌고가는 천부장에게 자신이 사람들에게 변명할 시간을 요청하였다. 바울은 헬라 말을 할 줄 아는 자이었다. 그는 천부장의 허락을 받은 후 층대 위에 서서 무리들에게 손짓하여 크게 조용히 한 후에 히브리 방언으로 말하였다.

바울은 두로에서도(4절) 또 가이사랴에서도(10-12절)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말라는 간곡한 권면을 받았었으나 그의 각오는 견고하였다. 13절,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그는 예루살렘에 올라가 붙잡혔고(27, 30절), 무리들은 그를 폭행했고 죽이고 없이하려고 했다(31, 32, 35, 36절).

주 예수께서는 ‘나를 인해 핍박을 받는 자는 복되다’고 말씀하셨고(마 5:11), 또 몸은 죽여도 영혼을 죽이지 못하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고(마 10:28), 또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고 말씀하셨다(마 16:24-25). 이것이 주의 제자들이 가야 할 길이며 영생의 길을 가는 제자들이 가야 할 길이다. 우리는 우리의 구주와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고난과 죽음도 각오하며 따라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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