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celife365(주신삶에 감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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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절]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다른 방언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오순절은, 유대인들의 전통에 의하면, 무교절 주간에 처음 추수한 보리 곡식단을 안식 후 첫날 곧 1월 16일에 하나님께 흔들어 드리는 보리 초실절로부터 50일째 되는 날이다. 이 날은 일요일 즉 주일이었다고 본다. 그 날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주셨다. 오순절 성령 강림은 구약의 요엘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된 바와(욜 2:28-29), 주 예수께서 마지막 유월절 식사 후 제자들에게 교훈하실 때 약속하신 바가(요 14-16장) 이루어진 것이다. 성령께서는 약속대로 오셨다. 신약시대는 성령께서 활동하시며 구원 사역을 이루시는 시대이다. 성령의 오심은 성도들에게 큰복이다. 그는 성도들 속에 위로자로 영원히 거하신다. 또 그는 성도의 신앙생활과 성화(聖化)를 도우시고 특히 전도의 능력을 주신다. 우리는 성령을 의지하여 자신의 죄성(罪性)과 세상과 마귀를 이기고 영혼들을 구원한다.

[5-13절] 그때에 경건한 유대인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우거하더니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방언들]으로 제자들의[그들의]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다 놀라 기이히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방언들]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뇨?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림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가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 온 사람들과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그들이] () 우리의 각 방언[방언들]으로 하나님의 큰 일[일들]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다 놀라며 의혹하여 서로 가로되 이 어찐 일이냐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가로되 저희가 새 술이 취하였다 하더라.

오순절 성령 강림의 독특한 한 표시는 방언을 말한 것이었다. 방언이라는 원어(글로싸)는 ‘언어’라는 뜻이다. 성령 충만을 받은 제자들은 다른 방언들 즉 다른 언어들로 말하였다. 본문은 약 15개 지역들에서 온 경건한 유대인들이 제자들이 각각 자기 지역의 언어들로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세 번이나 반복해 증거한다(6, 8, 11절). 신약성경의 방언은 이와 같이 언어를 가리킨다. 사도시대의 방언은 외국어, 즉 주의 제자들이 아직 배워본 적이 없는 외국어들이었다.

하나님께서 제자들로 방언을 하게 하신 것은 그들이 언어의 장벽을 극복하고 세계복음화의 일을 이루게 될 것도 암시하는 것 같다. 세계복음화의 한 큰 장애물은 언어 소통의 장벽일 것이다. 인류는 본래 한 언어를 가지고 있었으나(창 11:1) 홍수 심판 이후 노아의 자손들이 바벨탑을 쌓고 연합을 도모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고 인류는 의사 소통의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신약교회로 하여금 언어의 장벽을 극복하고 온 세계에 복음을 전하게 하셔서 택한 백성들을 다 구원하실 것이다.

[14-21절] 베드로가 열한 (사도)[열한 명]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때가 제3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베드로는 다른 사도들과 더불어 서서 소리를 높여 담대하게 말하였다. 이것은 베드로의 첫 설교이었다. 그것은 원고를 준비한 설교가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성령의 감동과 힘에 이끌리어 한 설교이었다.

그의 설교의 요지는, 우선 그들이 방언을 하는 것이 당시 시각이 제3시 즉 오전 9시이니 제자들이 술 취한 것이 아니고, 선지자 요엘의 예언의 성취로서 성령을 받은 현상이라고 증거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요엘을 통해 말세에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을 모든 육체에게, 하나님의 남종들과 여종들에게 부어주실 것이며 성령께서 부어지면 사람들은 예언을 하고 환상을 보고 꿈을 꿀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예언은 구약 백성이 경험하지 못했던 성령의 풍성한 임하심을 약속한 것이었다. 이것이 오순절에 제자들에게 이루어졌던 것이다.

[22절]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

베드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성령의 강림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말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증거한다. 그는 먼저 예수께서 많은 기적들을 행하신 사실을 증거한다. 그는 예수님을 ‘나사렛 예수’라고 말한다. 이것은 그가 나사렛 동네에서 어릴 때부터 자라나셨고 물질적 몸을 가진 사람이셨음을 보인다. 그러나 그는 또한 하나님이셨다. 그것은 그가 행하신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들을 통하여 증거된다. 이 기적들은 은밀한 곳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요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이루어졌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너희도 아는 바에,” “너희 가운데서,” “너희 앞에서”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23-24절]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 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예수께서는 기적을 행하심으로 자신의 신성(神性)을 밝히 증거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를 영접지 않고 배척하였고 마침내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 그의 십자가는 사람들의 심히 악함을 증거한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많은 은혜를 받았고 믿을 만한 많은 일들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부정하고 멸시하고 배척하고 대적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된 것이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건져 다시 일으키셨다.

[25-32절] 다윗이 저를 가리켜 가로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웠음이여, 나로 요동치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입술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는 희망에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지옥](KJV)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셨으니 주의 앞에서 나로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니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位)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지옥](KJV)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베드로는 시편 16편을 인용하며 그리스도의 부활이 시편에 예언된 바임을 증거했다. 거기에서 다윗은 주께서 그의 영혼을 지옥에 버리지 않으시고 또 그로 하여금 썩지 않게 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실상 다윗은 죽어 장사되었고 그의 무덤은 그때까지 그들 중에 있었다. 그의 육체는 다 썩었음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시편에서의 그의 고백은 자신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그의 뒤에 오실 메시아에 대한 것이었다. 이 시편은 메시아의 부활에 대한 예언이었다.

[33-36절]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주셨느니라.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가로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베드로는 또 예수님의 승천에 대해서도 시편 110편을 들어 성경의 예언대로 되었음을 증거한다. 예수께서는 승천하심으로 주와 그리스도이심이 증거되셨다. 또 그는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 하나님 우편에 앉는다는 말은 하나님과 동등한 권위와 통치권을 가진다는 뜻이다. 오늘날 우리의 원수들은 사탄과 악령들이다. 그들은 다 함께 하나님의 일을 대적하고 방해한다. 그러나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 주께서는 우리를 도우시고 마침내 그들을 다 멸하실 것이다.

[37절]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오순절에 모인 무리들은 그의 설교를 듣고 마음에 찔림을 받았다. 사도 베드로의 전도 설교는 효력이 있었다. 그것은 성령의 역사하심이었다.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지 않으면 사람은 마음이 굳어 찔림을 받지 못하나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면 사람들은 마음에 찔려 회개하고 믿어 구원을 얻는다. 그들은 말씀을 들으면서 회개하고 믿을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 그들은 구원의 문 앞에 서 있었다.

[38절]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회개하다’는 원어(메타노에오)는 ‘생각을 바꾸다’는 뜻이다. 사람이 구원을 얻으려면 생각을 바꿔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에 근거하여 세례를 받으라는 뜻이다. 세례는 죄씻음을 상징한다. 죄씻음이 가장 중요하다.  세례 자체가 죄를 씻는 것은 아니지만, 세례는 그의 피로 죄씻음 받음을 표시한다. 사람이 죄사함을 얻으면 성령을 선물로 받는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영이시다. 사람이 하나님의 영을 마음에 받는다는 것은 놀라운 특권이다. 하나님의 영께서는 우리를 위로하시고 격려하시며 우리에게 힘을 주신다. 성도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자라가며 거룩해지고 또 하나님의 뜻을 힘있게 행하며 전도할 수 있게 된다.

[39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이 약속’은 죄사함 받고 성령을 받는다는 약속을 가리킨다.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그의 이름으로 세례 받는 자는 죄사함을 받고 성령을 받는다. 이것은 ‘너희와 너희 자녀’ 곧 유대인들과 ‘모든 먼데 사람’ 곧 이방인들 중 주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자들에게 주신 약속이다. ‘부르심’이란 마음의 변화를 주시며 부르시는 것을 가리킨다. 이 부르심으로 사람은 회개하고 믿어 구원을 받는다.

[40절]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41절]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약](원문) 3천이나 더하더라.

사도 베드로의 전도와 확증과 권면은 결실을 얻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이었고 성령의 역사이었다.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았고 이 날에 제자들의 수가 약 3천명이나 더했다. 그들은 다 예수께 복종한 제자들이 되었다. 예루살렘 교회는 120명의 무리에 3천명의 신입교인이 더하여졌다. 이것은 기적과 같은 기쁜 사건이었다.

[42절]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초기 예루살렘 교회는 몇 가지 일에 힘썼다. 첫째로,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았다. 바른 가르침이 중요하다. 둘째로, 그들은 서로 교제하기를 힘썼다. 그것은 주 예수께서 명하신 대로 서로 사랑하는 교제이다. 셋째로, 그들은 전심으로 기도하는 일에 힘썼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자신의 영적 성장 곧 성화를 위해, 전도와 영혼 구원을 위해, 참된 교회들의 건립을 위해, 또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를 잘 대처해 나가기 위해 기도에 힘써야 한다. 기도는 신앙생활의 힘의 통로이다.

[43-45절]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해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다. 사도들에 대한 사람들의 두려움은 그들의 가르침을 믿고 순종하게 함으로써 자신들의 구원과 성화(聖化)에 이르게 하는 유익한 두려움이었다. 사도들이 행한 기적들은 그들이 전하는 복음이 하나님의 진리임을 확증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기적들을 통해 구원의 진리들을 확증하셨다(히 2:3-4). 기독교는 기적들로 확증된 종교이다. 또 초기 예루살렘 교회의 교제는 구제로 표현되었다. 그들은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었다. 물론, 사도 바울은 자기 손으로 열심히 일하여 먹고살라고 가르쳤고(살전 4:11; 살후 3:12) 친히 일하면서 복음을 전함으로 본을 보여주었다(행 20:34-35). 또 그는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고 말하였다(살후 3:10). 그러나 재산이 넉넉히 있는 자들이 그것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구제하는 것은 선하고 좋은 일이다.

[46-47절]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카트 오이콘)[각 집에서, 각 집을 돌아가며]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그 교회에](전통사본)더하게 하시니라.

그들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다. 성전은 그들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장소가 되었다. 그들은 거기서 하나님께 찬송하며 기도하고 또 다른 이들에게 전도할 기회를 얻었을 것이다. 오늘날도 예배당은 성도들이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찬송하며 기도하기 위해 준비된 거룩한 집 곧 성전(聖殿)이다.그들은 또 하나님을 찬미하였다. 찬양은 교회의 중요한 임무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송케 하시려고 우리를 창조하셨다(사 43:21).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궁극적 목적도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케 하려 하심이었다(엡 1장). 교회는 하나님을 찬송하는 무리들의 모임이다. 찬송은 성도의 마땅한 의무이다(시 33:1).

그들은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정상적인 모습이다. 그들이 죄를 지으면 주위 사람들은 그들과 그들의 하나님을 욕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경건하게 살고 서로 사랑하며 구제를 힘쓰면 주위 사람들은 그들을 칭찬하고 또 그들의 하나님을 칭송할 것이다. 신자는 가족들과 이웃들에게 인정을 받아야 한다.

그들은 서로 교제하였다. 그들은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고 또 각 집에서 모여 성찬을 나누었고 식탁교제를 하였고 모든 물건을 함께 사용하였고 어려운 교우들을 구제하였다. 오늘날 우리도 서로 교제하며 병든 교우들을 방문하며 궁핍한 교우들을 돌아보며 구제해야 한다.

그리고 기도하기에 힘써야 한다. 기도는 하나님과 교통하는 일이다. 우리가 성화하는 길은 기도이며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며 전도할 힘을 얻는 길도 기도뿐이다. 오늘날 우리는 모여 기도하기를 힘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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