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절] 그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새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고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율법에 의하면, 이웃의 밀밭 사이로 지날 때 이삭을 따먹는 것은 가능하였다(신 23:25). 특히 예수님의 제자들의 행위는 노동의 행위가 아니고 배가 고파서 얼마큼 따먹은 것뿐이므로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주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였다고 비난한 것이다.
[3-5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한 자들이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성소의 떡상의 떡은 제사장들이 먹는 떡이지만(레 25:9), 사무엘상 21:1-6에 보면, 다윗의 일행이 몹시 배가 고팠을 때, 그들에게 제공되었다. 또 제사장들은 안식일에도 쉬지 않고 율법에 규정된 제사들을 드려야 하였다(민 28:9-10). 그것은 예외적인 일들이었다.
[6-8절]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면 무죄한 자를 죄로 정치 아니하였으리라.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예수께서는 성전보다 더 크신 분이시다. 성전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곳이며 하나님께서 친히 거기에 거하시는 거룩한 장소이다. 사람으로서 자신이 하나님의 성전보다 더 크다고 말할 수 있는 자는 세상에 아무도 없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실상, 구약시대의 성막이나 성전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자신이 성전보다 더 크다고 말씀하신 것은 정당한 말씀이었다.
또 예수께서는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는 호세아 6:6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친히 인용하시면서, 그들이 그 말씀의 뜻을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단지 예배 의식보다 자비한 마음을 원하신다. 안식일 문제에 대하여, 남을 비난하고 정죄하는 태도보다 남을 이해하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 즉 이 경우 제자들의 배고픈 형편을 이해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마가복음 2:27에 보면, 예수께서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규례들은 사람의 유익을 위해 주신 것이다. 신명기 10:13은,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또 “나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놀라운 말씀이다. 구약의 안식일은 여호와의 안식일이다. 출애굽기 20:10, “제7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출애굽기 31:13,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나는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뜻이 된다. 그것은 삼위일체의 신비를 보인다. 예수께서는 단순히 사람이 아니시고 하나님의 아들, 곧 참된 신성을 가지신 하나님이시다.
[9-14절] 거기를 떠나 저희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편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송사하려 하여 물어 가로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붙잡아 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이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손을 내밀라 하시니
저가 내밀매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더라.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꼬 의논하거늘.
예수님을 비난하려는 자들은 그에게서 비난거리를 찾으려 애썼고 그것을 안식일 문제에서 찾은 것 같았었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안식일에도 양이 구덩이에 빠지면 그것을 붙잡아 내는 것을 예로 들면서 안식일에 대한 그들의 잘못된 생각을 지적하시고 교정하시기를 원하셨다. 사람은 양보다 훨씬 더 귀한 존재이므로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합당함을 암시하셨다. 그런 후 예수께서는 그 사람에게 “손을 내밀라”고 말씀하셨다. 그가 그 마른 손을 내밀자 그 손은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건강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날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믿기는커녕 나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꼬 의논하였다. 실상 안식일을 범한 자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의논한 바리새인들이었다. 자신들은 안식일을 잘 지키며 예수는 안식일을 범하고 있다고 생각한 바리새인들은 그 날 예수님을 송사할 꼬투리나 찾았고 그를 죽이려 공모하였던 것이다. 그것은 악한 일이었다. 예수께서는 안식일에 선한 일을 행하신 것이지만,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악을 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15-21절] 예수께서 아시고 거기를 떠나가시니 사람이 많이 좇는지라. 예수께서 저희 병을 다 고치시고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 경계하셨으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바 보라, 나의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 바 나의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성령을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외치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또한 이방들이 그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우리는 안식일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오늘날 주일을 그리스도인의 안식일로 지킬 때 단순히 예배 의식을 중시하는 데 머물지 말고 참된 경건과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기 위해 마음을 열고 사모하며 또 병약한 자들을 돌아보고 처음 교회에 찾아온 자들을 기쁨으로 맞자.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교회를 비방하거나 교우들을 비방하지 말고,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며, 교회를 허무는 자가 되지 말고 교회를 세우는 덕스러운 자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성도의 바른 태도이다.
[22-30절] 그때에 귀신들려 눈멀고 벙어리된 자를 데리고 왔거늘 예수께서 고쳐주시매 그 벙어리[눈멀고 벙어리된 자](전통본문)가 말하며 보게 된지라.
무리가 다 놀라 가로되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하니 바리새인들은 듣고 가로되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 하거늘 예수께서 저희 생각을 아시고 가라사대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사단이 만일 사단을 쫓아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저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 또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저희가 너희 재판관이 되리라.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늑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늑탈하리라.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예수께서는 그 불쌍한 사람을 고쳐주셨다. 그 눈멀고 벙어리된 자는 말하며 보게 되었다. 그러자 무리들은 다 놀라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라고 말했다. ‘다윗의 자손’이라는 표현은 메시아를 가리킨다. 선지자 이사야는 예언하기를,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같이 피어 즐거워하며 무성하게 피어 기쁜 노래로 즐거워하며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사론의 아름다움을 얻을 것이라. 그것들이 여호와의 영광 곧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리로다,” “그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때에 저는 자는 사슴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고 말하였다(사 35:1-2, 5-6). 사람들은 예수님의 행위가 이런 메시아 예언을 성취하는 것이라고 느꼈다.
[31-32절]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악한 비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비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주께서는 모든 죄와 악한 비방은 사하심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 앞에 용서받지 못할 죄는 없다. 살인과 간음의 죄라도, 또 하나님을 비방한 죄라도 회개하면 용서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성령을 훼방하며 비방하는 죄는 사하심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사람이 성령을 비방하면 성령의 감동으로 이루어지는 회개를 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그런 죄의 경계선을 넘고 있다고 보인다. 그들은 예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내시는 그의 신적 영광을 보고도 그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한다고 비난하기 때문이다.
데살로니가후서 2:9-10,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33-35절] 나무도 좋고 실과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실과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실과로 나무를 아느니라.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예수께서는 그들을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부르셨다. 그것은 마귀의 자녀라는 뜻이다. 세례 요한도 그에게 왔던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을 그렇게 불렀었다(마 3:7).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다”고 말씀하셨고(요 8:44),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라고 말씀하셨다(마 23:33). ‘독사의 자식들’이라는 말은 정신적 의미이다. 사탄은 죄의 근원자이다. 독사의 자식들은 사탄의 죄성을 받은 자들이라는 뜻이다.
[36-37절]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아르고스)[쓸데없는, 부주의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사람의 말은 그 인격의 표현이다. 주님의 말씀은, 우리가 쓸데없이 혹은 부주의하게 던진 한 마디 말이라도 심판날에 그 말에 대해 답변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의 말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우리의 말로 의롭다 하심을 얻기도 하고 우리의 말로 정죄를 받기도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르고 참되고 선한 말을 하도록 힘써야 한다.
[38-40절] 그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人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
그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예수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말하였다. 그들은 예수님의 표적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실상, 그들은 예수께서 행하신 많은 기적들을 이미 들었을 것이지만 그것들을 믿지 않았다. 예수께서는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고 대답하셨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요나의 표적’이라는 말씀은 자신의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과 3일 만의 부활을 가리켰다. 예수께서는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예수께서 무덤에 묻히신 지 3일 만에 부활하실 것을 암시한다. ‘밤낮 사흘’이라는 말은 3일을 가리키는 대략적 표현일 것이다. 예수께서 무덤에 계셨던 시간은 금요일 저녁부터 주일 새벽까지, 즉 정확히 말하면, 하루 반쯤이었지만, 성경은 그가 3일 만에 부활하셨다고 말한다(마 16:21; 고전 15:4).
[41-42절]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어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끝에서 왔음이어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43-45절]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46-50절]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실 때에 그 모친과 동생들이 예수께 말하려고 밖에 섰더니 한 사람이 예수께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이 당신께 말하려고 밖에 섰나이다 하니 말하던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시고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가라사대 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시더라.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실 때 그 모친과 동생들이 예수께 말하려고 밖에 섰다. 예수께는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 등의 남동생들과 누이들이 있으셨다(마 13:55-56; 막 6:3). 예수께서는 맏아들이셨다(마 1:25 전통본문 눅 2:7). 천주교회가 마리아가 평생 처녀이었고 죄가 없이 출생했고 후에 승천했고 기도의 대상이며 하늘의 여왕이라고 가르치는 것은 비성경적이며 우상숭배적인 교리이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이 당신께 말하려고 밖에 섰나이다”라는 한 사람의 말에 대해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고 하시며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육신의 가족 관계보다 영적인 가족 관계를 더 중요하게 여기셨다. 그는 그의 제자들을 “나의 동생들”이라고 부르셨다. 부활하신 후에도 그는 제자들을 “내 형제들”이라고 부르셨다(마 28:10). 사도 바울은 로마서 8:29에서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가족에 맏아들이 되셨다.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고 말씀하셨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은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성경말씀을 순종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은 사람이 모든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주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하나님의 한 가족이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육신의 가족 관계보다 더 중요한 영적 가족 관계이다. 우리는 이미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 믿고 구원받은 자들이다. 이제 우리는 성경에 가르친 모든 선한 교훈을 듣고 마음에 두고 힘써 실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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