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celife365(주신삶에 감사하자)

[1-2절]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니 허다한 무리가 좇으니라. 한 문둥병자[나병 환자]가 나아와 절하고 가로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한 나병 환자가 예수께 나아왔다. 나병은 살이 붓고 얼굴, 손, 발이 변형되고 감각이 없어지는 무서운 병이다. 나병 환자는 일반 사람들과 격리되어야 했다(레 13:46). 많은 사람이 좋은 조건을 갖고도, 아니 그 좋은 조건 때문에, 예수께 나오지 않았고 그에게 절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나병 환자는 아마 이 병 때문에 겸손해졌고 그의 자존심을 앞세우지 않았고 자신의 누추한 모습 그대로 예수께 나왔고 그에게 절했다. 사람은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께 더 나오기 쉬운 것 같다. 시편 119편 저자는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고백했다(67, 71절).

[3절]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즉시 그의 문둥병[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

예수께서는 자신에게 나아와 그의 병고침을 간청한 그 나병 환자의 간청을 물리치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구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주께서는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마 7:7-8).

[4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의 명한 예물을 드려 저희에게 증거하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은 병고침이 그가 세상에 오신 주된 임무가 아니었음을 보인다. 일차적으로, 그는 병자들을 고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었고, 죄인들을 불러 회개시키기 위하여(마 9:13; 눅 5:32) 또 사람들에게 이 구원의 복음을 널리 전하기 위하여(막 1:38; 16:15) 오신 것이었다. 그가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셨지만, 그것은 단지 부수적인 일이었다.

또 예수께서 그 고침 받은 이에게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의 명한 예물을 드려 저희에게 증거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 사람이 자기가 병고침 받았음을 확증하고 또한 율법의 규정을 지켜야 함을 보이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고 완전하게 이루기 위해 오셨다. 마태복음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5-9절]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가로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와하나이다. 가라사대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백부장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백부장은 100명의 부하를 지휘하는 군대 장교이다. 이 백부장은 자기 종의 병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왔다. 그의 종은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그 백부장은 자기 종에 대해 사랑과 동정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또 예수님의 존귀한 신분과 자신의 천한 영적 상태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예수께서 자기 집에 들어오심을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마음 속에는 예수님의 신적 인격과 능력을 믿는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예수께서 단지 말씀만 해주셔도 자기 종의 질병을 고치실 수 있음을 믿는다고 말하였다. 참으로 놀라운 지식과 믿음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영광을 아는 지식과 작은 믿음을 주셨다.

[10-13절] 예수께서 들으시고 기이히 여겨 좇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이스라엘 중에서라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시로 하인이 나으니라.

예수께서는 백부장에게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그 믿음의 간구를 들어주셨다. 이 백부장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고 이방인이었으나, 그의 믿음은 이스라엘 중에서라도 찾아볼 수 없는 큰 믿음이었다. 주께서는 동서로부터 많은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을 것이지만 이스라엘 자손들은 천국에서 제외되고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가는 처지가 될 것을 예언하셨다. 사람의 믿음은 반드시 그의 부모가 가진 믿음에 비례하지 않는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다.

[14-15절]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운 것을 보시고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

예수께서는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셨다. 마가복음은 그가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들어가셨다고 증거한다(막 1:29). 예수께서는 많은 무리들 중 특히 몇 명의 제자들을 늘 그와 함께 있게 하셨다. 그는 베드로의 집에서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워 있는 것을 보셨다. 누가복음은 그의 장모가 중한 열병에 붙들렸다고 증거한다. 열병은 높은 열로 고생하는 무서운 병이었다.

[16절]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를 다 고치시니.

[17절]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사 53:4)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주께서는 우리의 죄뿐 아니라, 죄의 결과인 모든 질병과 슬픈 일들도 담당하셨다. 우리는 아직 모든 질병과 슬픈 일들이 믿는 자들에게서 완전히 제거됨을 보지 못한다. 그러나 죄사함은 그것들을 제거하지만, 주께서 남겨두신 것들은 우리의 영적 유익을 위함일 뿐이다. 우리가 천국에 이를 때면 죄와 그 결과들은 다 사라질 것이다.

 

[18-20절] 예수께서 무리가 자기를 에워쌈을 보시고 저 편으로 건너가기를 명하시니라.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말씀하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人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21-22절] 제자 중에 또 하나가 가로되 주여,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하시니라.

 

[23-27절] 배에 오르시매 제자들이 좇았더니 바다에 큰 놀[풍랑]이 일어나 물결이 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는 주무시는지라.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가로되 주여, [우리를]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대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그 사람들이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고 하더라.

예수께서는 나병환자, 중풍병자, 열병 걸린 자, 귀신 들린 자 등을 고치셨을 뿐 아니라, 또한 바람과 파도도 꾸짖어 잔잔케 하셨다. 그는 단순히 사람이 아니시고 신성(神性)을 가지신 사람이셨다. 어떤 사람이 그런 불치의 병들을 고치고 바람과 풍랑을 꾸짖어 잔잔케 할 수 있겠는가? 오직 하나님께서만 또한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들께서만 그런 일들을 하실 수 있다. 우리를 죄와 지옥 형벌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신적 구주이시다.

[28-34절] 또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겔게세네](갈릴리 호수 동쪽 해변)(전통본문) 지방에 가시매 귀신 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 저희는 심히 사나와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 만하더라.

이에 저희가 소리질러 가로되 하나님의 아들 [예수]이여, 우리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하더니 마침 멀리서 많은 돼지 떼가 먹고 있는지라.

귀신들이 예수께 간구하여 가로되 만일 우리를 쫓아내실진대 돼지떼에 들여보내소서 한대 저희더러 가라 하시니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는지라.

온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 들어가서 물에서 몰사하거늘 치던 자들이 달아나 시내에 들어가 이 모든 일과 귀신들린 자의 일을 고하니 온 시내가 예수를 만나려고 나가서 보고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마가복음 5:1-20과 누가복음 8:26-40은 이 사건을 더 자세히 증거하지만, 귀신 들린 자가 두 명이라는 말은 마태복음에만 나온다. 복음서들은 서로 보충적이다. 마가복음 5:13은 돼지떼가 거의 2천 마리가 되었다고 말한다. 돼지를 치던 자들은 달아나 시내에 들어가 이 모든 일과 귀신 들린 자의 일을 고하였으나, 온 성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나려고 나가서 보고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였다.

사람의 가치가 참으로 큼을 보인다. 귀신 들린 영혼들의 가치는 돼지 2천 마리보다 더 귀하였다. 그러나 가다라[겔게세네] 사람들은 그 귀신 들린 자들의 회복이 얼마나 귀한 일임을 깨닫고 감사하고 기뻐하기보다 예수께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했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에게 항상 환영을 받는 자가 아니셨다. 주를 믿고 따르는 길은 항상 사람들의 환영을 받는 길이 아닐 것이다.

큰 풍랑을 잔잔케 하시고 귀신 들린 자를 고쳐주신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가 아니고서는 큰 풍랑을 잔잔케 하실 수가 없으며 귀신 들린 자를 고쳐주실 수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확신해야 하고, 그를 알지 못하는 자는 그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구원받아야 한다.

주를 믿고 따르는 길은 큰 풍랑도 있고 사람들의 배척도 있지만,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길이다. 주를 믿고 따르는 길은 평탄한 길이 아니고 고난의 길이지만, 능력의 주님과 늘 동행하는 길이다. 그 길은 주의 능력을 체험하는 길이며 선한 열매를 체험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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