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절] 예수께서 그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예수께서는 열두 제자를 부르셨다. 마가복음에 의하면, 예수께서는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셨다(막 3:13). 누가복음은 주께서 밤새도록 기도하신 후 그들을 세우셨다고 말한다(눅 6:12-13).
예수께서는 열두 제자들에게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셨다. 물론, 그들의 더 중요한 일은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 그에게 듣고 배우는 것이며 또 나가서 전도하는 것이었다.
[2-4절]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가나안인 시몬과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
마태는 열두 제자의 이름을 기록하였다. 마태는 그들을 ‘사도’라고 불렀다. ‘사도’는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뜻이다. 바돌로매는 아마 나다나엘(요 1:45)을 가리키고, 다대오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 언급된 야고보의 아들 유다를, 또 가나안인 시몬은 셀롯인 시몬을 가리키는 것 같다(눅 6:15-16; 행 1:13). 가룟 유다는 열두 사도의 명단에 들어 있지만, ‘예수를 판 자’라는 부끄러운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사람은 시작보다 결말이 중요하다.
[5-6절] 예수께서 이 열 둘을 내어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주께서는 열두 제자들에게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하셨다. 아직 사마리아나 이방 세계에 복음을 전할 때가 아니었다. 하나님의 뜻 가운데 전도에 순서가 있었다. 오늘날도 우리는 교회에 다닌 적이 있었던 자들, 교회에 다니다가 시험에 들었거나 낙심하여 교회를 떠나갔던 자들을 먼저 돌아보고 그 후에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7-8절]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주께서는 열두 제자들에게 “가라, 천국이 가까웠다고 전파하라”고 말씀하셨다. 천국은 하나님의 통치하시는 세계이다. 사람이 성령으로 거듭나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인정하고 믿었다면 천국이 그의 심령에 이미 임한 것이다. 그는 사탄이 왕노릇하던 세계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통치에 복종하는 자가 되었다.
그들의 능력의 일들은 하나님께서 거저 주신 은혜이므로 다른 이들에게 거저 주어야 했다.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돈을 버는 방법으로 사용해서는 안 되었다.
[9-11절]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군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 아무 성이나 촌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전도자들은 여비나 옷이나 신이나 먹고 마시는 것의 문제로 염려하지 말고 오직 주께서 맡기신 일에 충성해야 했다. 일꾼들이 일용할 양식을 얻는 것은 마땅하며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실 것이다.
[12-15절]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전도자들은 그들이 머무는 집을 위해 평안을 기원해야 했다. 그들을 영접하는 그 집이 이 평안을 받기에 합당하면 그들의 빈 평안은 그 집에 임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영접도 아니하고 그들의 말을 듣지도 아니하면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그들의 발의 먼지를 떨어버려야 했다. 그것은 관계의 단절을 상징한다. 어떤 성의 사람들이 사도들의 전도와, 기적들을 통한 확증을 보고도 그들을 영접하지 않고 그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그들은 소돔 사람들보다 더 큰 죄를 범하는 자들이다. 소돔 사람들은 그런 기적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16절]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전도자들은 순진한 양들이다. 그들을 세상에 내보내는 것은 마치 양들을 이리 떼 속에 보내는 것과 같다. 전도자들은 모든 사람에게 환영을 받을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도리어 이 세상에서 많은 고난을 당하고 죽임도 당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뱀같이 지혜로워야 한다. 뱀은 지혜의 비유로 사용되었다. 전도자들은 악한 세상에서 지혜롭게, 신중하고 사려 깊게 처신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비둘기같이 순결해야 한다. 참 지혜는 순결한 지혜이다. 야고보서 3:17은,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바른 사상과 거룩한 인격은 전도자의 첫 번째 덕목이다.
[17-18절] 사람들을 삼가라. 저희가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저희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또 너희가 나를 인하여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니 이는 저희와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전도자들은 특히 사람들을 조심해야 한다. 사람들은 그들을 공회에 넘겨주며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공회와 회당이 하나님의 종들을 핍박하는 기관이 될 것이다. 전도자들은 심지어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갈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할 기회가 될 것이다.
[19-20절] 너희를 넘겨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전도자들은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설 때에 무엇을, 어떻게 말할지 염려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 곧 성령께서 그들 속에 계셔서 말씀을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성령께서는 모든 전도자들에게 전할 말씀과 능력을 주실 것이다.
[21-22절]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 데 내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사탄의 역사는 강하다. 성도가 경건과 의에 굳게 서서 악과 타협하지 않고자 한다면, 사탄은 심지어 가족들과 이웃들을 통해 전도자의 믿음을 파괴하려 할 것이다. 전도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많은 사람에게 미움과 어려움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건짐을 받을 것이다.
[23절]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人子)가 오리라.
핍박으로 인한 피신은 정당하고 지혜에 속하는 일이다. 피할 수 있는 데도 피하지 않고 죽는 것이 충성은 아니다. 전도자는 할 수 있는 대로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 순교의 때가 오면 순교할 수 있다. 그러나 피신하여 다른 곳에서 전도할 수 있는 데도 피신하지 않고 잡혀 죽으려 해서는 안 된다.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人子)가 오리라”는 말씀은, 오순절 성령강림을 가리키든지, 혹은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가 온 세상에 흩어져 있는 하나님의 선택된 모든 사람들이 사는 곳들을 비유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가리킬 것이다.
[24-27절]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 그런즉 저희를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으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바알세불은 ‘귀신의 왕’ 곧 사탄을 가리킨다(마 12:24). 악한 사람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알세불이라고 불렀다면 그의 제자들에게 어떤 비난을 할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전도자들은 사람들에게 악한 비난을 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복음 전도자들과 설교자들은 사람들을 두려워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감추인 진리들은 밝히 전파되어야 하고, 그들이 집안에서 은밀하게 배운 진리들은 집밖에서 공공연히 전파되어야 한다. 오늘날도 설교자들은 골방에서 성경을 묵상하고 연구한 후에 강단에서 담대히 선포해야 한다.
[28-31절]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세상의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이루어진다. 앗사리온은 약 16분의 1 데나리온인 로마 동전이었다(BDAG, NBD). 보잘것없어 보이는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으시면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참새보다 귀한 존재인 사람은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죽지 않을 것이다. 전도자는 그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다. 그러므로 그는 사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32-33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사람들은 사람 앞에서 그를 시인해야 한다.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그를 부인한다면 그를 믿는 것이 아니다. 정말 그를 믿었다면 사람 앞에서 그를 시인해야 한다. 그러므로 전도자들은 사람들의 핍박과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거나 겁내지 말고 비겁하게 굴복하지 말고, 사람들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하고 하나님의 복음을 담대히 전해야 한다.
[34-36절]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오신 것이 아니고 검을 주러 오셨다. 그가 오셔서 우리에게 참 평안을 주신 것이 사실이지만(마 11:28), 그것은 구원받은 자들의 심령 속에와 성도들의 교제 가운데 있는 평안이며 화목이다. 그것은 세상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이 주시는 평안이 아니고, 또 진리와 비진리, 혹은 선과 악의 화해가 아니다. 복음은 막연한 평화의 개념이 아니다. 성도의 신앙생활은 오히려 죄와 마귀와 세상의 악과 싸우는 영적 전쟁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에나 전도자의 사명의 걸음을 시작했기 때문에 가정에 불화가 생긴다면, 그것은 아마 이상한 일이 아니고 정상적 과정이다. 그러나 참고 진행하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은혜와 유익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편에 계시고 그의 위로와 평안이 그의 종들과 백성들에게 있을 것이다.
[37절]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모든 성도들에게 그러하지만, 특히 전도자들에게 있어서, 부모님께 대한 사랑과 효도와 순종은 하나님께 대한 의무보다 우선 될 수 없다. 부모에 대한 의무 때문에 주의 부르심을 거부한다든지 주의 계명을 어겨서는 안 된다. 작은 예로, 부모님을 위한 생신 잔치 때문에, 친척들의 결혼식 때문에, 주일 예배를 소홀히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자녀에 대한 사랑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자녀 사랑, 자녀 교육, 자녀 후원이 하나님보다 앞서서는 안 된다. 자녀들 때문에 경건생활이나 사명의 걸음이 지장되어서는 안 된다. 자녀들을 돌보는 것보다, 혹은 같은 원리로, 남편이나 아내를 돌아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도자도 자기의 가족들을 돌보고 사랑해야 하지만, 주님을 사랑함보다 더 할 수는 없다. 모든 성도는 아무리 피곤하고 바쁜 일상생활일지라도 하루에 30분 정도라도 하나님께 기도하고 성경 읽는 시간을 우선적으로 구별해야 한다.
[38-39절]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성도는 심지어 자기 자신을 부정해야 한다. 자기 사랑은 곧 세상 사랑이요, 하나님 사랑과 반대된다. 돈을 사랑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돈 사랑인지, 하나님 사랑인지, 또 100년 간의 삶을 위할 것인지, 영생을 위할 것인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이 세상의 것을 위해 사는 자는 주님을 따를 수 없다. 그러나 주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릴 수 있는 자는 확실히 영생의 복을 받을 것이다.
[40절]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전도자들은 주 예수의 이름과 권위로 파송된다. 그러므로 그들을 영접하는 것은 주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과 같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과 같다. 제자들은 세상에서 고난이 많을 것이나 이런 존귀한 신분을 가진다. 이것은 그들에게 위로가 된다.
[41-42절]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사람이 선지자를 선지자로 알아보고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고, 의인을 의인으로 알아보고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다. 또 주의 젊은 종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대접하는 자는 결단코 상을 잃지 않을 것이다. 이 말씀은 전도자들에게 적지 않은 위로가 된다. 우리의 선행이 그 자체로는 상 받을 가치가 없지만 주께서는 그것에 대해 상을 약속하셨다. 선행의 첫 번째 동기는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이지만, 상급의 약속도 부수적인 동기는 될 수 있을 것이다. 주께서는 우리의 선행에 대해 상 주실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 얻은 모든 성도들은 복음을 위해 헌신한 하나님의 참된 종들과 전도자들을 영접해야 하고 주께서는 그들의 선행에 대해 상을 약속하셨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종들과 전도자들을 영접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다. 또 그들의 선행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상을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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