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 일 뒤에 유대인들의 명절이 있어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 가시니라.
‘그 후에’라는 원어(메타 타우타 meta; tau'ta)는 ‘이 일들 후에’라는 뜻으로 시간의 상당한 경과를 나타낸다(요 3:22; 6:1; 7:1 등). ‘유대인의 명절’은 아마 유월절일 것이다. 유월절은 유대인의 절기들 중에 가장 대표적인 절기이며 또 겨울이 지난 다음에 맞는 첫 번째 큰 절기이다. 마태와 마가와 누가복음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일들을 생략하지만, 요한복음은 그것들을 증거한다.
2 이제 예루살렘의 양 시장 곁에 히브리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연못이 있는데 거기에 주랑 다섯 개가 있고 3 이것들 안에 허약한 자, 눈먼 자, 다리 저는 자, 몸이 오그라든 자들의 큰 무리가 누워 물이 움직이는 것을 기다리더라. 4 이는 어떤 때에 천사가 연못에 내려와 물을 휘저었고 물을 휘저은 뒤에 누구든지 먼저 들어가는 자는 무슨 병에 걸렸든지 온전하게 되었기 때문이더라.
‘베데스다’(Bhqesdav)는 아람어(벧 케스다)로서 ‘자비의 집’이라는 뜻이다. ‘행각’ 혹은 ‘주랑’은 벽이 없고 지붕과 기둥만 있는 방을 가리킨다.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할 때 물이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가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되는 일은 신기한 하나님의 은혜이었다. 베데스다 못은 과연 하나님의 자비의 집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시고 긍휼이 많으시나, 웬일인지 병고침을 사모하는 자에게 한 사람씩만 허용하셨다.
5 거기에 삼십팔 년 동안 병약함을 지닌 어떤 사람이 있더라. 6 예수님께서 그가 누운 것을 보실 때에 그가 이제 그런 상태로 오랫동안 있은 줄 아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 가 온전하게 되고자 하느냐? 하시니 7 그 허약한 사람이 그분께 대답하되, 선생님이여, 물을 휘저을 때에 나를 연못에 넣어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가는 동안 다른 사람이 나보다 먼저 내려가나이다, 하매
8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9 그 사람이 곧 온전하게 되어 자기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바로 그날은 안식일이더라.
예수께서 그에게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38년 동안의 투병 생활을 끝내게 하시는 치료의 말씀이었다. 그 사람은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갔다. 그는 즉시 고침을 받았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걸을 수 있었다. 그는 38년 동안 익숙했던 자리를 치워버렸다. 예수님의 말씀의 신적 능력은 태초에 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던 하나님의 능력과 동일하였다. 예수님의 신성(神性)은 그의 말씀의 능력을 통해 충분히 증거되었다.
10 ¶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오늘은 안식일이니 네가 네 자리를 나르는 것은 율법에 어긋나느니라, 하매 11 그가 그들에게 응답하되, 나를 온전하게 하신 분 바로 그분께서 내게,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셨느니라, 하니
12 이에 그들이 그에게 묻되, 네게,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도대체 누구냐? 하매
13 병 고침을 받은 사람은 그분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곳에 무리가 있으므로 예수님께서 이미 자리를 옮기셨기 때문이라.
유대인들은 잘못된 안식일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명하셨다. 그 날은 온종일 휴식하며 노동이나 세속적 업무를 하지 말아야 했다. 그 날 온종일 쉬는 것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로 모이기 위해서이다. 공적 예배의 시간을 지키는 것은 중요하다. 그것은 실상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자신의 믿음의 성장을 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병자가 고침을 받아 자리를 들고 일어나 가는 것은 안식일을 범하는 일이 아니었다.
14 그 뒤에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그를 만나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가 온전하게 되었으니 더 심한 것이 네게 생기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하시매
15 그 사람이 떠나가서 유대인들에게 자기를 온전하게 하신 분은 예수님이라고 말하니라. 16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핍박하며 죽이고자 하니 이는 그분께 서 안식일에 이 일들을 행하셨기 때문이라.
17 ¶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시되, 내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18 유대인들이 이런 이유로 더욱더 그분을 죽이려 하니라. 이는 그분께서 안식일을 어길뿐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 아버지라고 말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하게 만드셨기 때문이더라.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일을 행하셨는데, 그것은 죄인들을 구원하는 일, 즉 전도하는 일이다(막 1:38).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를 인해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였다. 이는 그가 안식일만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시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가 증거하신 대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의 본질을 가지신 자이시다. 신적 구주께서 세상에 오셨다. 그러므로 그는 38년된 병자도 쉽게 고쳐주셨다. 그는 몸의 병뿐 아니라 영혼의 죄 문제도 해결해 주시는 신적 구주이시다.
19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은 자기가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느니라. 그분께서 무슨 일들을 하시든지 이것들을 아들도 그와 같이 하느니라. 20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하는 모든 것을 그에게 보이시고 또 이것들보다 더 큰일들을 그에게 보이사 너희를 놀라게 하시리니 21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키사 그들을 살리시는 것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22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모든 심판을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23 이것은 모든 사람이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를 공경하지 아니하느니라. 24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또 정죄에 이르지 아니하리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 25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고 있는데 곧 지금이라. 듣는 자들은 살리라. 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는 것 같이 아들에게도 주사 그 속에 생명이 있게 하셨고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사랑하셔서 자기의 행하는 모든 것을 아들에게 보이신다. 하나님의 삼위일체는 사랑의 관계이다. 삼위는 세 인격으로서 서로 사랑하신다. 삼위일체는 우리가 머리로 다 이해할 수 없는 신비이다. 또 아버지께서는 ‘그보다 더 큰 일’도 보이시는데, 그것은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일을 가리키는 것 같다.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일 곧 중생(重生)은 육신의 병을 고치는 것보다 더 큰 일이다. 아버지께서 죽은 자를 살리심같이 아들도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살리신다.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살린다’는 말은 예수께서 주권(主權)을 가진 하나님이심을 보인다.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11:27에서도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중생 곧 거듭남은 구원의 시작이요 몸의 부활은 구원의 완성이다. 사람의 영혼이 살아야 장차 몸도 부활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심은 사람의 영혼을 먼저 거듭나게 하시고 후에 몸도 다 구원하시는 것이다.
27 또 그가 사람의 아들이므로 그에게 또한 심판을 집행할 권위를 주셨느니라. 28 이 말에 놀라지 말라. 무덤속에 있는 모든 자들이 그의 음성을 듣고 나올 때가 오고 있나니 29 선을 행한 자들은 생명의 부활로, 악을 행한 자들은 정죄의 부활로 나오리라. 30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나는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내가 내 뜻을 구하지 아니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구하므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31 내가 만일 내 자신에 대하여 증언하면 내 증언은 참되지 아니하니라. 32 ¶ 나에 대하여 증언하시는 다른 분이 있는데 나는 그분께서 나에 대하여 증언하시는 그 증언이 참된 줄을 아노라. 33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을 보내매 그가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였느니라. 34 그러나 나는 사람에게서 나온 증언은 받아들이지 아니하며 다만 너희가 구원을 받도록 이것들을 말하노라.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통해 다시 살아나는 것이 가능한 이유는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셨고 또 사람됨을 인하여 심판 권세를 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는 사람이 되셔서 구원받을 모든 사람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대신 형벌을 받으심으로 대속 사역을 성취하셨다. 그가 한 사람인데 많은 사람의 모든 죄를 대속(代贖)할 수 있으셨던 것은 그가 단순히 사람이 아니시고 신성(神性)을 가진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그의 대속 사역을 통해 그는 많은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의롭다고 여기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실 수 있게 된 것이다.
예수님의 사람 살리시는 사역의 목표는 몸의 부활이다. 우리는 몸의 부활을 믿는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날, 무덤들은 다 열리고 시체들은 부활할 것이다. 장차 두 종류의 부활이 있을 것이다. 하나는 생명의 부활이고 다른 하나는 심판의 부활이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을 할 것이고,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을 할 것이다. 선행은 구원의 조건이 되지 못하나 믿음의 증거로서 중요하다. 믿는 자는 죄 짓지 않고 선을 행하고 거룩의 열매를 맺다가 영광스럽게 부활하여 영생에 들어갈 것이다. 두 종류의 부활에 대해서는 다니엘도 증거하기를,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단 12:2).
35 그는 타오르며 빛나는 등불이었노라. 너희가 한동안 그의 빛을 기뻐하기 원하였느니라. 36 ¶ 그러나 내게는 요한의 증언 보다 더 큰 증언이 있나니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끝마치게 하시는 일들 즉 내가 행하는 바로 그 일들이 나에 대하 여 증언하되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증언하느니라. 37 또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에 대하여 증언하셨느니라. 너희는 아무때에도 그분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그분의 모습을 보지 못하였으며 38 또 그분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지 아니하기 때문이라. 39 ¶ 성경 기록들을 탐구하라. 너희가 그것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줄로 생각하거니와 그것들은 곧 나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들이니라. 40 그러나 너희는 생명을 얻기 위해 내게 오기를 원치 아니하는도다. 41 나는 사람들에게서 존귀를 받지 아니하노라. 42 다만 내가 너희를 알거니와 너희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너희 속에 없느니라. 43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는데 너희가 나를 받아들이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자가 자기 이름으로 오면 너희가 그를 받아들이리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또 하나의 중요한 증거는 구약성경의 증거이다. 경건한 유대인들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자세히 연구하고 있었다. 성경은 사람들에게 영생을 얻는 길을 증거한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함으로써 그렇게 한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증거한다. 누가복음 24:25-27, “가라사대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디모데후서 3:15,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들은 풍성하다. 그것들은 세례 요한의 증거들, 예수께서 친히 이루실 일들(기적들, 죽으심, 부활), 하나님 자신의 증거, 그리고 구약성경의 증거들이다.
44 너희가 서로 존귀를 받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만 나오는 존귀는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믿을 수 있겠느냐? 45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하리라고 생각하지 말라. 너희를 고소하는 자가 있으니 곧 너희가 신뢰하는 자 모세니라. 46 너희가 모세를 믿었더라면 나를 믿었으리니 그는 나에 대하여 기록 하였느니라. 47 그러나 너희가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말들을 믿겠느냐? 하시니라.
유대인들은 세상적 영광, 즉 인간의 칭찬과 세상적 자랑을 구하였다. 그것은 교만과 욕심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길은 돈과 육신적 쾌락과 세상 사랑하는 마음을 버리지 않고서는 갈 수 없는 길이다. 누가복음 14:33,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모세는 율법에서 성막 제도, 제사 제도, 절기들, 할례 등을 통해 그리스도를 증거하였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모세의 글들도 믿지 않고 있으니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겠는가? 오늘날도 성경을 믿지 않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믿을 수 없다.
사도 바울도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한다고 증거했다(딤후 3:15).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들은 풍부하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아직도 확신하지 못한 자들은 이러한 증거들을 자세히 검토함으로써 그를 확신해야 한다.
우리는 유대인들과 같이 세상의 헛된 영광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영적 어두움과 불신앙과 불순종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육신의 쾌락과 세상의 부귀, 명예, 영광을 구하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우리는 하나님을 참으로 경외하고 사랑하며 성경말씀을 사모하며 읽고 듣고 배우며 묵상해야 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확신하고 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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