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celife365(주신삶에 감사하자)

1 그때에 모든 세리들과 죄인들이 그분의 말씀을 들으러 그분께 가까이 나아오니 2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수군 거리며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그들과 함께 먹는다, 하더라.

3 ¶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여 이르시되, 4 너희 중의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가 그것들 중의 한 마리를 잃어버리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남겨 두고 잃어버린 것을 찾을 때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5 또 그가 그것을 찾은즉 기뻐하며 그것을 자기 어깨에 메고

6 집에 돌아와서 자기 친구와 이웃 들을 함께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나와 함께 기뻐하라. 내가 잃어버린 내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

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로운 아흔아홉 사람보다 회개하는 한 죄인으로 인하여 더 기쁨이 있으리라. 

잃은 양의 비유라고 부르는 이 비유에서 보이는 바는 세 가지다. 첫째는 양들의 주인이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에 대해 관심을 가졌고 그것을 귀히 여기고 사랑하였다는 것이다. 둘째는 주인이 그 양을 찾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찾도록’이라는 원어(헤오스 휴레 아우토)는 ‘찾을 때까지’라는 뜻이다. 주인은 그 양을 조금 찾아본 정도가 아니었고 찾을 때까지 끈질기게 찾았고 마침내 찾았다. 셋째는 주인이 그 양을 찾은 후 매우 기뻐하였다는 사실이다. 그는 그의 기쁨을 자기 혼자만 가질 수 없어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함께 나누었다.

예수께서는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이것이 이 비유의 중심적 진리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구원받은 모든 자들보다 죄인 한 명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을 더 기뻐하신다. 우리도 이런 심령을 가져야 한다.

8 ¶ 어떤 여자에게 드라크마 열 개가 있는데 그녀가 한 개를 잃어버리면 등잔불을 켜고 집을 쓸며 그것을 찾을 때까지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9 또 그녀가 그것을 찾은즉 자기 친구와 이웃들을 함께 불러 이르되, 나와 함께 기뻐하라. 내가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찾았노라, 하리라.

1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회개하는 한 죄인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천사들 앞에서 기쁨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두 번째 비유인 잃은 은전(銀錢)의 비유도 동일한 진리를 나타낸다. 드라크마는 헬라 화폐로서 로마 화폐인 데나리온과 같은 가치이며 그것들은 다 은전(銀錢)으로서 노동자의 하루 품삯의 가치이었다. 이 비유에서 한 여인은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귀하게 여겼고 그것을 찾기 위해 열심히 애써 마침내 찾았고 그것을 찾았을 때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모아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했다.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천사들 앞에 기쁨이 된다.

잃은 은전(銀錢)의 비유는 죄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심정을 나타낸다. 첫째는 한 사람의 영혼을 귀히 여기시는 것이다. 둘째는 잃어버린 한 영혼 즉 회개해야 할 한 죄인을 열심히, 부지런히, 끝까지 찾으시는 것이다. 셋째는 죄인 한 명의 회개를 크게 기뻐하시는 것이다.

11 ¶ 또 그분께서 이르시되,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12 그중의 작은아들이 자기 아버지에게 이르기를, 아버지여, 재산 중 에서 내게 돌아올 몫을 주소서, 하니 아버지가 자기 살림을 그들에게 나누어 주매

13 그 뒤 며칠이 안 되어 작은아들 이 전부 모아 가지고 먼 나라로 가서 거기서 허랑방탕하게 살며 자기 재산을 허비하더니

둘째 아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멀리 떠난 인류의 모습를 나타낸다. 인류는 자기의 자유 의지로 창조주 하나님을 멀리 떠나갔다. 그는 하나님의 간섭을 원치 않았고 자신의 생각과 뜻을 따라 살기를 원하였다. 둘째 아들이 허랑방탕하며 재산을 낭비하였듯이, 하나님을 떠난 인류는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좋은 것들, 지혜와 재능, 시간과 건강과 재물을 허비하는 삶을 살고 있다.

14 그가 다 탕진한 뒤에 그 땅에 큰 기근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하게 되니라.

15 그가 가서 그 나라의 국민 중 하나에게 연합하니 그 사람이 그를 자기의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니라.

16 그가 돼지들이 먹는 곡식 껍질로 자기 배를 채우려 하되 아무도 그에게 주지 아니하므로 17 그제야 그가 정신을 차리고 이르되, 내 아버지께는 빵이 풍족하여 나누어 줄 수 있는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나는 굶어 죽는구나.

하나님께서는 허랑방탕한 삶을 미워하신다. 그 나라에 큰 흉년이 든 것은 하나님께서 내리신 재앙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불성실한 자들에게 큰 흉년을 내리신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 기근이거나 질병, 전쟁, 지진, 화재, 교통 사고, 실직, 가정 파탄 등의 불행을 가리킨다. 그 결과, 인류는 궁핍해지고 낮고 비천하게 되었다. 하나님을 떠난 생활은 얼마 동안 즐거움을 주는 듯했으나 곧 불행으로 드러났다.

18 내가 일어나 내 아버지께 가서 그분께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을 대적하여 죄를 짓고 아버지 앞에 죄를 지었사오니 19 더이상 아버지의 아들이라 불릴 자격이 없나이다. 나를 아버지의 품꾼 중 하나로 삼아 주소서, 하리라, 하고

‘이에 스스로 돌이켜’라는 원문은 ‘그가 자신에게 왔을 때’라는 말로서 제 정신이 들었다는 뜻이다. 큰 흉년은 하나님의 재앙인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이었다. 그는 궁핍 속에서 제 정신이 들었다. 바른 생각과 깨달음을 가지게 된 것이다. 궁핍이 그에게 불행만이 아니었다. 그는 그 궁핍을 통해 자신의 죄악됨을 깨닫게 되었고 또 자신이 돼지보다 나을 것이 없는 낮고 비천한 존재임을 알게 되었다.

탕자는 또 몇 가지를 더 깨달았다. 첫째로, 그는 자기 아버지 집의 부요하였음을 기억하였다. 둘째로, 그는 아버지께 돌아가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셋째로, 그는 자신이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음을 깨닫고 아버지께 그렇게 고백하겠다고 생각했다. 넷째로, 그는 자신이 아들의 자격이 없고 일꾼으로 여겨달라고 하겠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회개할 때 하나님의 부요하심과 자신의 빈곤함을 깨달으며 또 자신이 하나님을 멀리 떠난 죄인이므로 이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또 그는 자신이 하나님께 범죄한 자요 하나님의 아들로 여겨지기보다 하나님의 종이 되어야 마땅하다고 깨닫는다. 이런 바른 깨달음은 구원의 정상적 과정이다.

20 일어나서 자기 아버지께로 가니라. 그러나 그가 아직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그의 아버지가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달려가 그의 목을 껴안고 그에게 입을 맞추매

상거(相距)[거리]가 먼 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다. 그것은 아버지의 사랑이 얼마나 컸는지를 나타낸다. 아버지는 그를 겨우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고 뜨겁게 맞아들였다. 그것이 회개하는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다. 회개하는 죄인을 향한 그의 긍휼과 사랑은 지극히 크시다. 하나님의 그 사랑이 자기 독생자를 사람으로 세상에 보내셨고 십자가에 대속제물로 내어주셨다.

21 아들이 그에게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을 대적하여 죄를 짓고 아버지의 눈앞에서 죄를 지었사오니 더 이상 아버지의 아들이라 불릴 자격이 없나이다, 하나

22 아버지가 자기 종들에게 이르되,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가 그에게 입히고 그의 손에 반지를 끼우고 그의 발에 신을 신기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여기로 끌어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의 자녀 되기를 포기하고 죄와 마귀와 사망에게 종노릇하였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회개한 죄인에게 하나님의 자녀의 자격과 특권을 다시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죄를 씻으시고 의의 옷을 입혀주시고 영광의 천국을 기업으로 주신다.

 

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 아났으며 그를 잃어버렸다가 찾았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기 시작하 더라. 25 이제 그의 큰아들은 들에 있더라. 그가 오면서 집에 가까이 이르렀 을 때에 음악과 춤추는 소리를 듣고

26 종들 중의 하나를 불러 이것들 이 무엇을 뜻하는지 물으니 27 종이 그에게 말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는데 당신의 아버지가 그를 무사히 건강하게 받아들였으므로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매

28 그가 노하여 들어가려 하지 아니하니 그러므로 그의 아버지가 나와서 그에게 간청하매 29 그가 응답하여 자기 아버지께 이르되, 보소서, 이 여러 해 동안 내가 아버지를 섬기며 어느때고 아버지의 명령을 어긴 적이 없었거늘 아버지께서 내가 내 친구들과 함께 즐기도록 내게 염소 새끼 한 마리도 결코 주지 아니하셨나이다. 30 그러나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 들과 함께 삼켜 버린 아버지의 이 아들 이 돌아오매 즉시 아버지께서 그를 위해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하니

31 아버지가 그에게 이르되, 아들아,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고 내게 있는 모든 것은 네 것이니라. 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다시 살 아났으며 잃어버렸다가 찾았으니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 하니라, 하니라.

본문은 맏아들의 태도를 증거한다. 어떤 이들은 맏아들을 집안에 있는 탕자라고 해석하지만, 그것은 타당해 보이지 않는다. 본문은 그가 그 날도 밭에 있다가 돌아왔다고 표현하고 또 그의 고백에서도 그는 여러 해 아버지를 섬기며 그의 명령을 어김이 없었다고 하였다. 또 아버지의 말에서도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므로 그 아들은 성실한 아들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를 집안의 탕자라고 보는 것은 적절치 않다. 그러나 그는 돌아온 자기 동생을 향한 아버지의 기쁨을 이해하지 못했다.

맏아들의 노한 마음은 이해할 만하였다. 아버지의 명령을 순종하며 성실히 여러 해를 보냈던 그에게는 염소 새끼 하나라도 주어 그의 친구들과 즐기게 한 일이 없었고 근검절약하며 성실하게만 살았던 아버지께서 재산을 탕진한 동생을 위해 살진 송아지를 잡은 것은 무언가 잘못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맏아들의 불평에 대해 아버지는 자신의 기쁨이 정당하다고 증거하였다. 아버지가 너무 엄격하고 인간미가 적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버지가 맏아들을 위하지 않았거나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목자가 양우리 안에 남아있는 아흔 아홉 마리의 양들을 미워하지 않았듯이, 또 여인이 주머니 속에 있는 아홉 개의 은전을 미워하지 않았듯이, 아버지는 결코 맏아들을 미워하지 않았다. 사실상 아버지의 모든 소유는 큰아들의 것이었다. 단지, 아버지의 현재의 기쁨은 잃었던 것 같은 둘째 아들을 다시 찾은 기쁨, 죽었던 아들이 다시 살아난 것 같은 기쁨인 것이다. 그 기쁨은 잃어버리지 않은 것에 대한 기쁨보다 더 큰 기쁨이었다. 이와 같이, 죄인 한 명이 회개하면 천국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 명을 인해 기뻐하는 것보다 더한 기쁨이 있다는 뜻이다(눅 15:7).

모든 사람은 다 회개해야 한다. 그는 하나님을 멀리 떠난 죄로 인해 얼마나 궁핍하고 비천해졌는지를 깨닫고 주께 대한 믿음과 순종의 삶으로 돌아와야 한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죄인들을 측은히 여기신다. 그는 그들을 영접하시고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과 특권을 회복시켜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특히 죄인 한 명의 회개를 매우 기뻐하신다. 교회는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자 교회에 나온 한 명의 영혼을 하나님의 기쁨의 심정을 가지고 기뻐하고 환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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