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celife365(주신삶에 감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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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절] 시드기야 9년 10월 10일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그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와서 진을 치고 사면으로 토성을 쌓으매 성이 시드기야 왕 11년까지 에워싸였더니 그 4월 9일에 성중에 기근이 심하여 그 땅 백성의 양식이 진하였고 갈대아 사람이 그 성읍을 에워쌌으므로 성벽에 구멍을 뚫은지라.

모든 군사가 밤중에 두 성벽 사이 왕의 동산 곁문 길로 도망하여 아라바 길로 가더니 갈대아 군사가 왕을 쫓아가서 여리고 평지에 미치매 왕의 모든 군사가 저를 떠나 흩어진지라. 갈대아 군사가 왕을 잡아 립나 바벨론 왕에게로 끌고 가매 저에게 신문하고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저의 목전에서 죽이고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어갔더라.

*시드기야 9년 10월 10일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그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포위하여 11년 4월 9일에 성이 함락되었다(렘 39:2; 52:7). 성이 포위된 지 약 1년 6개월 만이다. 갈대아 군사는 왕을 잡아 립나 바벨론 왕에게 끌고갔고 그의 아들들을 그의 눈앞에서 죽이고 그의 두 눈을 빼고 사슬로 결박해 바벨론으로 끌어갔다. 시드기야 왕의 영광은 땅에 떨어졌고 왕은 극한 수치와 모욕을 당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해 그에게, “네가 만일 바벨론 왕의 방백들에게 항복하면 네 생명이 살겠고 이 성이 불사름을 입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으나,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었다. 예레미야 52:11은, 시드기야가 죽는 날까지 감옥에 있었다고 전한다.

[8-12절]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19년 5월 7일에 바벨론 왕의 신하 시위대 장관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여호와의 전과 왕궁을 사르고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귀인의 집까지 불살랐으며 시위대 장관을 좇는 갈대아 온 군대가 예루살렘 사면 성벽을 헐었으며 성중에 남아 있는 백성과 바벨론 왕에게 항복한 자와 무리의 남은 자는 시위대 장관 느부사라단이 다 사로잡아가고 빈천(貧賤)한[매우 가난한] 국민을 그 땅에 남겨두어 포도원을 다스리는 자와 농부가 되게 하였더라.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19년 5월 7일에 바벨론 왕의 시위대 장관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와 여호와의 전과 왕궁을 사르고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귀인들의 집까지 불살랐다. 그러나 예레미야 52:12에 의하면, 이제 그 성은 주위 나라들의 침략으로부터 안전한 성이 되지 못했다. 또 느부사라단은 성중에 남아 있는 백성과 바벨론 왕에게 항복한 자와 무리의 남은 자를 다 사로잡아갔고 매우 가난한 백성을 남겨두어 포도원을 다스리는 자와 농부가 되게 했다. 예루살렘 성은 이렇게 황폐케 되었다.

[13-17절] 갈대아 사람이 또 여호와의 전의 두 놋기둥과 받침들과 여호와의 전의 놋바다를 깨뜨려 그 놋을 바벨론으로 가져가고 또 가마들과 부삽들과 불집게들과 숟가락들과 섬길 때에 쓰는 모든 놋그릇을 다 가져갔으며 시위대 장관이 또 불 옮기는 그릇들과 주발들 곧 금물의 금과 은물의 은을 가져갔으며 또 솔로몬이 여호와의 전을 위하여 만든 두 기둥과 한 바다와 받침들을 취하였는데 이 모든 기구의 놋 중수를 헤아릴 수 없었으니 그 한 기둥은 고가 18규빗[약 8.1미터]이요 그 꼭대기에 놋머리가 있어 고가 3규빗[약 1.3미터]이요 그 머리에 둘린 그물과 석류가 다 놋이라. 다른 기둥의 장식과 그물도 이와 같았더라.

[18-21절] 시위대 장관이 대제사장 스라야와 부제사장 스바냐와 전 문지기 세 사람을 잡고 또 성중에서 사람을 잡았으니 곧 군사를 거느린 내시 하나와 또 성중에서 만난 바 왕의 시종 다섯 사람과 국민을 초모(招募)하는[소집하는] 장관의 서기관 하나와 성중에서 만난 바 국민 60명이라. 시위대 장관 느부사라단이 저희를 잡아가지고 립나 바벨론 왕에게 나아가매 바벨론 왕이 하맛 땅 립나에서 다 쳐죽였더라. 이와 같이 유다가 사로잡혀 본토에서 떠났더라.

*종교적 부패와 결탁하여 한 동안 세상 권세를 누렸던 자들은 이렇게 하나님의 징벌로 비극적 생을 마쳤다. 이와 같이 유다가 사로잡혀 본토에서 떠나갔다. 이것이 제3차 포로 사건이다.

제1차 포로 사건은 주전 605년경 여호야김 때이었고,

제2차 포로 사건은 주전 597년경 여호야긴 때이었으며,

제3차 포로 사건은 주전 586년경 시드기야 때이었고, 이때 유다는 멸망하였다. 그 멸망은, 왕들과 백성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거슬러 여러 가지 우상들을 숭배하고 의인들의 피를 많이 흘린 악행에 대한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이었다.

[22-26절] 유다 땅에 머물러 있는 백성은 곧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남긴 자라. 왕이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달리야[그다랴]로 관할하게 하였더라. 모든 군대 장관과 그 좇는 자가 바벨론 왕이 그달리야로 방백을 삼았다 함을 듣고 이에 느다니야의 아들 이스마엘과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느도바 사람 단후멧의 아들 스라야와 마아가 사람의 아들 야아사니야와 그 좇는 사람이 모두 미스바로 가서 그달리야에게 나아가매 그달리야가 저희와 그 좇는 자들에게 맹세하여 이르되 너희는 갈대아 신복을 인하여 두려워 말고 이 땅에 거하여 바벨론 왕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가 평안하리라 하니라. 7월에 왕족 엘리사마의 손자 느다니야의 아들 이스마엘이 10인을 거느리고 와서 그달리야를 쳐서 죽이고 또 저와 함께 미스바에 있는 유다 사람과 갈대아 사람을 죽인지라. 대소 백성과 군대 장관들이 다 일어나서 애굽으로 갔으니 이는 갈대아 사람을 두려워함이었더라.

[27-30절] 유다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 간 지 37년 곧 바벨론 왕 에윌므로닥의 즉위한 원년 12월 27일에 유다 왕 여호야긴을 옥에서 내어놓아 그 머리를 들게 하고 선히 말하고 그 위를 바벨론에 저와 함께 있는 모든 왕의 위보다 높이고 그 죄수의 의복을 바꾸게 하고 그 일평생에 항상 왕의 앞에서 먹게 하였고 저의 쓸 것은 날마다 왕에게서 받는 정수가 있어서 종신토록 끊이지 아니하였더라.

*유다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 간 지 37년, 곧 바벨론 왕 에윌므로닥의 즉위한 원년, 곧 주전 약 560 혹은 561년경 12월 27일에 바벨론 왕은 유다 왕 여호야긴을 옥에서 내어놓아 그 머리를 들게 하였다. 그때 여호야긴은 55세쯤이었다. 또 바벨론 왕은 그에게 좋게 말하고, 그 직위를 바벨론에 그와 함께 있는 모든 왕의 직위보다 높이고, 그 죄수의 의복을 바꾸게 하고, 그의 남은 세월 동안 항상 왕의 앞에서 먹게 했고, 그의 쓸 것은 날마다 왕에게서 받는 정수가 있어서 죽을 때까지 끊어지지 않게 했다. 에윌므로닥은 하나님을 경외한 자이었던 것 같다. 유다 왕 여호야긴이 이처럼 바벨론 왕의 호의를 입은 것은, 자기 백성을 향하신 하나님의 긍휼을 암시한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죄의 결과는 멸망이다.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의 우상숭배의 죄악과 의인들의 피를 많이 흘린 죄악은 그들로 결국 망하게 했다. 유다 왕 시드기야는 눈앞에서 아들들이 죽임을 당했고 자기의 두 눈은 뽑혔고 쇠사슬에 결박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가 죽을 때까지 옥에 갇혔다. 예루살렘 성전도 솔로몬의 왕궁도 다 불탔다.

둘째로, 참 선지자의 말들은 이루어진다. 거짓 선지자들은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멸망시키지 못한다고 말했으나 참 선지자 예레미야는 바벨론의 침공으로 예루살렘이 멸망할 것을 예언했다. 그는 그 예언 때문에 미움과 핍박과 학대를 당하였다. 그러나 누구의 예언이 성취되었는가? 거짓 선지자들의 예언은 헛된 거짓말이었다. 우리는 성경의 바른 교훈을 다 알고 다 굳게 믿고 그 교훈을 거역하지 말고 힘써 행하자.

셋째로, 구원은 하나님의 긍휼로 말미암는다. 유다 왕 여호야긴은 37년 포로생활 후에 바벨론 왕에게 극진한 호의와 대우를 받았다. 그것은 하나님의 긍휼의 증표이었다. 구원은 하나님의 긍휼로 말미암는다.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 안에만 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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