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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 혈통 부각된 마태복음 계보와 마리아 혈통과 위치 부각한 누가복음 계보

먼저 마태복음에 기록된 계보는 법적으로 예수님의 아버지가 되는 요셉의 가계(家系)를 나타낸다. 그리고 누가복음에 기록된 계보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가계를 나타내는 것이다. 마태복음은 주로 유대인들을 위해 기록된 복음이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요셉의 혈통과 위치가 부각되는 반면, 마리아의 비중이 약화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한편 누가복음에서는 인류의 구세주를 뱃속에 잉태하고 출산하는 마리아의 혈통과 위치가 뚜렷이 부각되는 반면, 요셉은 단지 마리아의 남편으로서만 소개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인해 두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계보 사이에 차이가 있는 것이다.

마태복음에는 예수님이 메시야로서만 나타나지만 누가복음에는 예수님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구세주인 동시에 우리와 같은 인간의 몸을 입으신 형제요 인자(사람의 아들)로서 나타나고 있다. 마태복음에는 예수님의 계보가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해서 요셉과 예수님에게 이르기까지 나타나는데, 그 이유는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에 대한 모든 약속이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누가복음에는 예수님의 계보가 예수님으로부터 시작해서 아담에게 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있는데, 이는 두번째 아담이 되신 예수님과 첫 아담과의 관계성을 나타내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마태복음에 나타난 요셉의 계보는 다윗으로부터 요셉에 이르기까지 다윗 왕가의 정통 계보를 이루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누가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계보는 다윗의 가문이긴 하지만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다윗의 아들 중 하나인 나단의 계보를 통한 계보를 보여 주고 있다.

구약의 예언들을 보면 메시야는 다윗의 혈통에게 태어날 것임을 약속하고 있다(삼하 7:12-19,  89:3, 4, 34-37; 132:11;  2:30; 13:22, 23;  1:3; 딤후 2:8). 예수님이 다윗의 후손인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심으로써 이러한 예언은 성취되었다. 그러나 마리아는 다윗 왕가의 정통계보는 아니었으며, 왕가의 후손인 요셉은 법적으로는 예수님의 아버지였으나 실제에 있어서는 예수님의 육적인 아버지가 되지 못하였다.

마리아의 친 아버지는 다윗의 후손 헬리였는데 누가복음 3:23에 보면 요셉 또한 헬리의 아들로 나타나고 있다. 그 이유는 마리아가 여자이기 때문에 유대인의 계보 관습상 그녀의 이름이 계보에 직접 나타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마리아 대신 마리아의 남편 요셉이 헬리의 아들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헬리는 요셉의 장인이었고 요셉의 아버지는 야곱이었던 것이다( 1:16). 

마태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계보가 법적이고 공식적인 계보였다면, 누가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계보는 실제적이고 보다 사실적인 계보였다는 것을 우리는 깨닫게 된다. 이 두 가지의 계보는 우리가 예수님의 출생의 배경과 기원을 알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다. 

예레미야 22:30에 보면 고니야의 자손은 다윗의 보좌에 앉을 수 없다는 예언이 기록되어 있다. 요셉이 바로 이 고니야의 자손인데 비록 요셉이 다윗 왕가의 정통계보에 들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메시야로 나신 예수님이 요셉의 혈통을 이어받지 않으심으로써 이 예언은 아주 정확하게 성취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정리하자면, 마태복음의 족보 얘기(마 1:1~6)는 요셉 계통을 기술했고 누가복음(눅 3:23~38)은 마리아의 가계를 기록한 것입니다. 다윗의 아들 중 솔로몬과 나단(밧세바가 낳은 솔로몬의 형)을 각각 요셉과 마리아가 조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전자는 왕권을 후자는 법적으로 다윗의 자손 됨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솔로몬의 자손 중 여고냐(여호와긴, 마 1:12)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고니야, 렘 22:30) 왕의 혈통이 끊겨 그 자손은 더 이상 왕위를 계승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요셉의 아들은 왕이 될 수 없으며 그에게서는 메시야도 나올 수 없게 되었습니다.

 

반면에 누가복음 족보 장은 요셉의 이상은 헬리요(눅 3:23)라고 시작하는데 헬리는 요셉의 아버지가 아니고 마리아의 부친입니다. 헬리는 다윗의 아내였던 밧세바(밧수아)의 아들인 나단의 후예입니다.(대상 3:5) 따라서 헬리는 왕권을 계승하지는 않았으나 다윗의 혈통을 법적으로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낳은 마리아가 동정녀의 몸으로 예수를 낳고 그 마리아가 요셉과 혼 인케 됨으로 요셉이 예수의 계부가 되었으니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의 후손도 되고 잃어버린 왕위 계승도 받을 수 있게 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 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까지 열 네 대요,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 네 대더라(마 1:17)고 하신 말씀에서 복음서의 신학적 주제를 찾을 수 있게 됩니다. 즉 다윗 왕의 이름과 바베론 왕국이 각각 두 번씩 반복됨으로 왕과 그의 나라가 강조되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왕의 족보를 통해 중요한 교훈도 얻게 됩니다. 그 나라의 왕권이 메시야에게 있다는 것과 누가복음의 족보가 아담에게까지 소급된 것으로 보아 이방인 구원을 제시한 것이며 여인들 이름이 나타난 것은 은혜 교리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더욱이 그들은 이방인이며(라합과 룻) 또한 도덕적으로 깨끗치 못한 다말, 라합, 밧세바 같은 여인들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족보가 미화되거나 가감되지 않은 것은 하나님 말씀의 진실성과 그가 인간의 가문을 따라 오신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허탄한 족보’(딤전 1:4) 즉,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착념치 말라 했습니다.

누가복음 3장 34절입니다. 대단히 이상한 점을 발견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창세기와 역대상의 기록은 내림차순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가 누구를 낳고, 낳고, 낳고, 아버지, 아들, 아들, 아들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데 이 누가복음은 예수님으로부터 위로 거슬러 올라가는 오름차순으로 기록되어 있지요. 3장 34절『그 이상은 야곱이요 그 이상은 이삭이요 그 이상은 아브라함이요』점점 이제 위로 올라가는 오름차순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이상은 데라요』 맞습니다. 『그 이상은 나홀이요』똑같습니다. 『그 이상은 스룩이요』이것도 역시 같습니다. 『그 이상은 르우요』마찬가지입니다. 『그 이상은 벨렉이요』마찬가지입니다. 『그 이상은 헤버요』 그런데 창세기에나 역대상에서는 헤버를 에벨로 되어 있습니다만 똑같은 말입니다. 『그 이상은 살라요』 누가복음에는 살라로 되어 있지만 창세기에는 셀라로 되어 있습니다. 36절,『그 이상은 가이난이요』여기는 틀립니다.. 『그 이상은 아박삿이요』아박삿은 창세기 아르박삿을 말합니다.

분명히 셀라의 아버지가 아르박삿으로 되어 있는데, 여기 누가복음에는 가이난의 아버지가 아르박삿으로 되어 있고, 셀라의 아버지는 가이난으로 되어 있습니다. 갑자기 가이난이라는 사람이 끼어 들어서 창세기와 역대상의 부자 지간이 할아버지와 손주 지간으로 되어 버렸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조금 성경을 깊이 읽어보신 분들은 "야 이거 틀리다. 성경이 거짓말하는구나" 하고 성경을 덮어버리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아예 성경을 읽어보지 않는 분들은 이런 것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가이난의 비밀이라는 것입니다. 갑자기 가이난이라는 사람이 들어와서 누가복음에서 보면 셀라와 아르박삿이 부자지간이 아니라 할아버지, 손주 지간이 되었고, 가이난이 아르박삿의 아들이요, 셀라는 아르박삿의 손주가 되고, 셀라는 가이난의 아들이 되어버립니다.

그리고 『그 이상은 셈이요』 라고 하며 여기부터는 창세기나 누가복음이나 똑 같습니다. 족보에는 누구를 끼어 넣거나 빼면 안됩니다. 그러면 아버지와 아들이 손주로 변해 버리기 때문에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누가가 틀리게 썼을까? 누가는 누가복음 1장 3절에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폈다"고 말합니다. 더군다나 이 누가복음의 저자 누가는 의사입니다. 정확하게 의사의 시각으로 모든 것을 근원부터 살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누가복음 38절 보면 『그 이상은 에노스요 그 이상은 셋이요 그 이상은 아담이요 그 이상은 하나님이시니라』 라고 하며 이 계보가 하나님까지 올라옵니다. 모든 근원부터 의사 누가는 철저히 살펴서 이것을 기록했는데, "왜 의사 누가는 성경을 기록하며 가이난이라는 사람을 집어넣었느냐? 그리고 창세기10장과 11장에는 가이난이 빠져 있고, 역대상에도 왜 가이난이 빠져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구약이 실수를 했을까요? 실수는 아닐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가 없는데 끼워 넣었을까요? 그렇다면 어떤 의도가 있어서 창세기에서 또는 역대상에서 그 신앙의 족보에서 그 사람을 빼 버린 것이 아닌가?

[가이난은 누가복음 족보에서 아담의 12대손 아박삿과 13대손 셀라 사이에 나오는 인물(눅 3:35-36) 이다.
창세기에는 아르박삿과 셀라 사이에 가이난이 기록되어 있지 않은데 누가복음에는 ‘아박삿(아르박삿)-가이난-셀라’ 순서로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아르박삿 이후 장자권이 가이난에게 넘어가고 또 가이난의 장자권이 셀라에게 넘어갔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가이난은 어떤 이유로 인해 장자권을 상실한 것으로 추측된다.
가이난은 어떠한 이유로 인해 하나님을 떠나 장자권을 상실했고 그로 인해 구약 족장들의 족보에서 빠진 것으로 보인다.]

우리 나라에도 조선시대에 말썽 부리고 가문의 영광을 가린 불효 막심한 아들을 족보에서 빼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혹시 원래는 가이난이 들어 있었고, 누가는 근원부터 살피면서 옛날 원전부터 다 살펴서 적어 놓은 것이기 때문에 이 누가복음에는 기록되어 있지만 창세기에서 모세가 기록하면서 의도적으로 빼 버렸고, 역대기 기자가 가이난을 싫어서 빼 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가능합니다. 그러면 이 가이난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살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1940년대에 쿰란 사해 사본이라는 것이 발견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잘 몰랐지만 그것은 전 세계에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이 사해 지방에 에세네파라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데, 아주 이들은 경건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정말로 히브리 공동체 중에서 경건한 사람들인데 이 사람들이 두루 마리에다가 옛날 고대 히브리 원본 성경 모세가 집필한 원본 성경을 그대로 써 놓았습니다. 그 사본이 발견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발견되었는가 하면 그 사해 지역에서 양을 치는 목동이 양을 잃어버려서 저 굴에 혹시 양이 들어갔는가 해서 돌멩이를 집어 던졌더니 양이 맞는 것이 아니라 '쨍그랑'하고 소리가 났답니다. 그래서 올라가 보니 항아리에 무슨 가죽 두루 마리가 많이 들어 있었답니다. 무식한 목동이 그것이 성경 고대 사본이라는 것을 모르고 그것을 찢어서 신발 끈으로 묶고 다녔는데 성경학자에 의해서 그 신발의가죽끈이 성경의 가죽끈이라는 것을 알고 그 사본이 발견되어서 참으로 성경의 신비가 참으로 많이 풀려지게 되었답니다.

거기에 보면 이 성경의 정경 뿐 아니라 정경에 없는 것에 이렇게 도움을 주는 외경이 있었는데 그 성경에 '요벨서'라는 성경이 있었습니다. 성경보다는 조금 권위가 못해서 외경으로 불리해 놓았는데 그것도 경전은 경전입니다.

그 문서에 가이난이라는 이름이 등장합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아르박삿의 아들 가이난은" 그러고 보면 누가복음이 맞습니다. 『아르박삿의 아들 가이난은 성장하여 도시로 나가 점성술사의 가르침을 받고 일월성신의 징조로 점을 쳐서 죄를 범하였다』 라고 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이 『가이난이 점성술의 가르침을 받고 점을 치고 점쟁이가 되어 버리고 우상 숭배자가 되어 버렸다. 이 가이난은 셀라를 낳았고,』

이런 것을 보면 가이난이라는 인물이 허공의 인물이 아니라 정말로 아르박삿이 가이난을 낳았고, 셀라는 아르박삿의 아들이 아니라 가이난의 아들이라는 것이 확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창세기 문서 족보에 가이난이 빠져 버렸고, 역대상에 가이난이 빠져 버렸느냐?

이 사람은 경건한 셋의 후손들이요, 히브리 민족인데 이 중에서 가이난이라는 못된 아들이 아르박삿의 아들로 태어나더니 점쟁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바벨탑을 쌓으면서 그 바벨탑에서 점쟁이들이 모여서 하늘을 보고 점을 치고 "우리가 하늘 끝까지 닿아보자"라고 하나님 앞에서 교만한 마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바로 가이난이 거기에 동참하고, 점쟁이가 되어 버리고, 우상 숭배자가 되어 버리자, 아르박삿이 "내 아들 가이난은 내 아들의 족보에서 빼 버린다. 그리고 내 손주 셀라가 내 아들이다."라고 이렇게 선언을 해 버렸다고 추측이 됩니다.

참 놀라운 일입니다. 그래서 성경의 기자 성령께서 이것을 모를 리가 없습니다만은 의도적으로 창세기와 역대상에서 우상 숭배했던 이 가이난을 의도적으로 족보에서 빼 버렸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요, 이것이 성경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상 숭배하는 것을 싫어하신다 라는 것을 이 가이난의 비밀 속에서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성경이 잘못 된 것이 아닙니다. 누가복음이 틀렸거나 창세기가 틀린 것이 아닙니다. 아르박삿이 셀라의 손자도 되고, 할아버지도 되고, 아버지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의도적으로 이 계보에서 우상 숭배하는 아들을 빼 버렸습니다. 이것은 순수한 혈통의 족보가 아니라 신앙의 족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우상 숭배하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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