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절] 이러하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궤휼 가운데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천거하노라.
사도 바울은 본장에서 사도직의 한 면모인 ‘낙심치 않는 직분’에 대해 말한다. 그는 앞장에서 자신의 사도직이 새 언약의 직분이요 성령의 직분이며 의의 직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하나님의 긍휼하심 가운데 그런 직분을 받았고 고난 중에도 낙심치 않고 일했다.
[3절]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복음은 모든 사람이 받아들이는 복음은 아니다. 어떤 이들은 받아들이지만, 다른 이들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왜 그런 현상이 있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복음이 전파될 때, 두 부류의 사람들, 곧 영생에 이를 자들과 영원한 형벌에 이를 자들이 명확히 구분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도의 결과에 너무 마음을 쓰지 말고, 오직 바른 복음, 성경적 복음을 가감하지 말고 담대히 전해야 한다.
[4-5절]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된 것을 전파함이라.
복음을 깨닫지 못하고 멸망하는 자들은 사탄과 악령들의 방해를 받은 자들이다. ‘이 세상 신’은 사탄을 가리킨다. 주 예수께서는 그를 ‘이 세상 임금’이라고 부르셨고(요 12:31) 바울은 다른 곳에서는 그를 ‘공중의 권세 잡은 자’라고 불렀다(엡 2:2). 사탄은 사람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여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신 것을 깨닫지 못하고 믿지 못하게 방해한다. 오늘날도 사탄의 방해가 클 것이다. 또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위하여(디아 예순)[예수님 때문에] 교인들의 종이 되었다. 바울은 자신을 교인들을 섬기는 종으로 자처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자이지만, 교회와 교인들을 지배하는 자가 아니고 그들을 섬기는 종이 되려 하였다.
[6절]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복음을 깨닫고 받아들인 자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그렇게 된 것이다. 태초에 하나님께서는 흑암 중에서 빛을 창조하셨다. 창조자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빛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께서는 그의 외아들 예수님을 구주로 세상에 보내셨고 죄인들의 마음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의 영광을 아는 빛을 비추어 주셨다. 예수께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시라는 놀라운 지식과 믿음이 죄인들에게 구원이 된다.
[7절]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복음을 깨닫고 받고 믿은 신약 성도들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진 자들과 같다. ‘질그릇’은 흙으로 만들어진 연약한 몸을 말한다. 사람은 연약하고 보잘것없는 질그릇이며 성도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질그릇 속에 보배를 가졌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아는 지식을 가리키며 그 지식과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 의와 영원한 생명이 있고 그들 속에 성령께서 거하신다. 이 지식과 믿음, 의와 생명, 성령의 내주하심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배이다. 우리의 몸은 연약하지만, 능력의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늘 함께하신다.
[8-10절]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부서지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주](전통사본) 예수 죽인 것[예수님의 죽으심]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예수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사도 바울은 전도 사역에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가 없지 않았지만, 낙심치 않고 잘 감당했음을 증거한다. 그는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해도 부서지지 않았고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치 않았다. 그는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않았고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았다. 그는 항상 주 예수님의 죽으심을 몸에 짊어지듯이 고난의 길을 갔지만, 그것은 예수님의 생명이 그를 통해 나타나게 하려 함이었다.
[11-13절]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 기록한 바 내가 믿는 고로 말하였다 한 것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는 고로 또한 말하노라.
사도 바울 그는 고백하기를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고 하였다. 바울 일행의 전도 사역은 죽는 것 같은 고난 속에서도 영혼들을 구원하고 구원받은 영혼들을 믿음에 굳게 세우는 사역이었다. 고난은 있었으나 생명의 역사, 구원의 역사, 교회 건립과 성장의 역사가 있었다. 오늘날에도 참 목사들은 고난이 있어도, 그들을 통해 생명 구원과 성장의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14-15절]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니 모든 것을 너희를 위하여 하는 것은 은혜가 많은 사람의 감사함으로 말미암아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사도 바울 일행의 모든 사역은 교회와 교인들을 위한 것이었다. 그들은 죽는 것 같으나 죽지 않고 살아날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그와 함께 사도 바울 일행도 그 고난에서 다시 살리셔서 그들과 함께 하나님 앞에 서게 하실 것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이미 연합되었고 장차 그것이 천국에서 영광스럽게 나타날 것이다. 골로새서 3:2-4,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그러므로 바울을 통해 전도를 받고 믿고 구원받은 고린도 교인들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다.
[16절]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사람의 겉사람 곧 몸은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늙고 병들고 쇠하고 마침내 죽는다. 그것은 많은 고난 속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자신의 삶을 ‘날마다 죽는’ 삶이라고 묘사하였다(고전 15:31). 속사람은 영 혹은 영혼을 가리킨다. 그의 겉사람 곧 몸은 낡아지지만 그의 속사람 곧 영은 날로 새로워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낙심치 않는다. 또 그가 고난을 당할지라도 그것을 통해 죄인들이 구원을 얻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17-18절]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바울은 성도의 현재의 고난과 미래의 영광을 비교한다. 그는 현재의 고난이 잠시 받는 것이며 비교적 가볍다고 말한다. 그것이 수년 혹은 더 오랜 기간의 고난이라 할지라도, 또 그것이 극심하고 극악한 종류의 고난이라 할지라도, 성도들이 누릴 미래의 영광은 영원하며 지극히 크다. 현세의 영광은 일시적이며 수십 년을 넘기지 못하지만, 장래의 영광은 영원하다. 바울은 로마서 8:18에서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우리가 보이는 것 곧 물질 세계를 위주하여 살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 곧 하나님의 세계, 영적 세계를 위주하여 산다고 말한다. 이것이 모든 성도의 바른 삶이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다. 시편 39:5, “주께서 나의 날을 손 넓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그러나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바라며 살아야 한다. 우리가 받은 새 생명은 영원한 생명이다. 우리가 들어갈 천국은 ‘영원한 나라’다(벧후 1:11). 그러므로 우리는 환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어떠한 환경 여건 속에서도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잠깐 후면 없어질, 눈에 보이는 물질 세계만 바라며 살지 말고,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 즉 하나님의 세계, 영원한 천국과 영생의 세계를 바라며 살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과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야 한다. 우리의 몸은 쇠해가고 고난 중에는 더욱 그러하지만, 우리의 영은 날마다 새로워진다. 지식과 깨달음이 자라고 인격과 삶이 성숙해진다. 세상에서 당하는 고난은 장차 우리가 얻을 천국의 영광에 비하면 잠시 받는 작은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눈에 보이는 육신적, 물질적 세계만 바라보지 말고, 눈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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