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celife365(주신삶에 감사하자)

[1-2절] 너희의 쓴 말에 대하여는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음행의 연고로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가까이 하다’는 원어(합토마이)는 ‘만지다(KJV, NASB), 결혼하다(NIV)’는 뜻을 가진다. 결혼이 하나님께서 주신 좋은 제도이지만(창 2:18; 잠 18:22), 결혼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한 것은 임박한 환난 때문이었다(26절). 

결혼 제도는 아내가 남편을 돕게 하기 위해 또 자녀 출산을 위해 주셨지만, 음행의 방지를 위해서도 주셨다. 세상은 ‘악하고 음란한’ 세상이며 성도는 세상에서 음행의 시험을 받는다. 그러나 정상적 결혼 생활은 악하고 음란한 세상에서 음행의 시험에 대한 최선의 방지책이 된다.

[3-4절] 남편은 그 아내에게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아내가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이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결혼한 사람은 자기 의무를 다해야 한다. 그들은 부부로서의 의무도 행해야 한다. 부부는 한 몸이므로, 자기 몸을 상대방이 주장하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다. 부부의 감정은 서로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상대방의 원하는 바를 무시하지 말고 존중하고 사랑하고 품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할 때에, 부부 관계에 불만이 생기고 사랑이 식어지고 갈등이 커질 수 있다.

[5절]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금식하고](전통본문)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의 절제 못함을 인하여 사단으로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서로 분방하지 말라’는 원어는 ‘서로[서로의 권리]를 빼앗지 말라’는 말로서 상대방이 원할 때 거절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러나 금식하고 기도할 시간을 위해서는 서로 떨어져 있을 수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부부관계보다 더 중요하다. 그러나 분방하는 것도 서로 합의해서 단지 ‘얼마 동안’ 해야 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 일에 있어서 지혜롭게 처신해야 한다. 신앙생활과 부부생활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 믿음 좋은 사람은 부부관계도 좋아야 한다. 부부간에 다투는 일이 있더라도 각방을 쓰지 말고 속히 화합하는 것이 필요하다.

[6-7절] 그러나 내가 이 말을 함은 권도[허용]요 명령은 아니라.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하나는 이러하고 하나는 저러하니라.

[8-9절] 내가 혼인하지 아니한 자들과 및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혼인하라. 정욕이 불같이 타는 것보다 혼인하는 것이 나으니라.

바울은 결혼하지 않은 자들이나 과부들에게 “나와 같이 그냥[독신으로] 지내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즉시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혼인하라”고 말한다. 절제할 수 없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낫다. 사람이 절제하지 못하면 범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육신의 정욕은 결혼을 통해 정당하게 해소되는 것이 좋다(딤전 5:14).

[10-11절] 혼인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리지 말고 (만일 갈릴지라도 그냥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

결혼한 자는 이혼하지 말아야 한다. 정당한 이혼이 아닌 경우 여자가 부득이 남편을 떠나 별거하게 되면, 재혼하지 않고 그대로 지내든지 그 남편과 다시 합해야 한다. 그러나 정당한 이혼을 한 경우에는 재혼이 가능하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4:5). 남편도 아내를 버려서는 안 된다. 음행 외에 아내를 버릴 수 있는 정당한 이유는 없다.

[12-13절] 그 남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노니 (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 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저를 버리지 말며 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

‘주의 명령이 아니라’는 말은 예수께서 지상 생애 동안 이런 경우에 대해 직접 말씀하신 적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사도를 통하여 이 경우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증거된다. 부부 중에 한 쪽만 믿는 경우, 믿지 않는 쪽이 함께 살기를 좋아하면 믿는 이는 그를 버리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결혼한 남녀 중 한 쪽이 먼저 믿게 되었을 경우를 말한다. 물론, 성도는 믿는 자와만 결혼해야 한다(고전 7:39; 신 7:1-4).

[14절]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고[되었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나니[되었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

부부 중에 한 쪽만 믿어도 그의 가정은 이미 세상 사람들의 가정과 구별되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그 가정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다른 쪽의 구원의 가능성이 열렸다. 또 믿는 가정에 태어난 자녀들은 부모 중 한 쪽만 믿어도 거룩하다. 이것은 언약적 의미라고 본다.

[15-17절]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속받을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아내된 자여, 네가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며 남편된 자여,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

믿지 않는 이가 헤어지기를 원하면 헤어질 수 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은 부부관계보다 우선적이기 때문이다. 믿는 성도가 믿지 않는 쪽을 구원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어느 날 내가 상대방을 구원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때문에 참고 지내겠다는 것은 결코 최선의 생각이 아니다. 그러나 가능한 한 화평을 지키는 것이 좋다. 별거는 부득이한 일이며 이혼은 최악의 조치일 뿐이다.

[18-19절] 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무할례자가 되지 말며 무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할례를 받지 말라. 할례받는 것도 아무것도 아니요 할례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

성도에게 할례를 받고 안 받고는 중요하지 않다. 심지어 세례 의식도 그 형식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참 종교는 형식에 있지 않고 믿음과 순종에 있다. 갈라디아서 5: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20-24절] 각 사람이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자유할 수 있거든 차라리 사용하라.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자요 또 이와 같이 자유자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형제들아,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성도가 가진 세상적 신분이나 어떤 육신적 조건이 중요하지 않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주 안에서 다 동등한 특권을 누린다. 골로새서 3:11, “거기는 헬라인과 유대인이나 할례당과 무할례당이나 야인[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분별이 있을 수 없나니.” 베드로전서 2:9,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성도는 예수님의 속죄의 피로 사신 바 되어 그의 종이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

[25-26절] 처녀에 대하여는 내가 주께 받은 계명이 없으되 주의 자비하심을 받아서 충성된 자가 되어 의견[판단]을 고하노니 내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 곧 임박한 환난을 인하여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사도의 판단은 신적 권위를 가진다(살후 2:15). 그는 충성된 마음으로 권하기를, 임박한 환난 때문에 처녀가 그냥 지내는 것이 좋다고 했다. 환난 중에는 의식주 문제로 많은 고통이 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27-28절] 네가 아내에게 매였느냐? 놓이기를 구하지 말며 아내에게서 놓였느냐? 아내를 구하지 말라. 그러나 장가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요 처녀가 시집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로되 이런 이들은 육신에 고난이 있으리니 나는 너희를 아끼노라.

결혼한 자는 결혼의 의무를 짐스럽게 생각하여 거기로부터 해방되기를 구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사람이 아내와 사별(死別)했거나 정당하게 이혼했을 경우 아내를 구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러나 결혼하는 것은 죄 짓는 일이 아니며 단지 육신에 고통이 따를 뿐이다.

[29-31절]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같이 하며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같이 하라. 이 세상의 형적은 지나감이니라.

성도는 세상에서 맡겨진 자기의 의무에 충실해야 하지만 세상의 것들을 의지하거나 자랑해서는 안 된다. 그것들은 다 지나가기 때문이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이 세상이 헛된 줄 알고 세상 위주로 살지 않고 오직 하나님과 내세에 소망을 두고 하나님을 기뻐하며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읽기를 좋아하고 하나님의 뜻 행하기를 힘써야 한다.

[32-35절] 너희가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 장가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꼬 하되 장가간 자는 세상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꼬 하여 마음이 나누이며 시집가지 않은 자와 처녀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되 시집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꼬 하느니라. 내가 이것을 말함은 너희의 유익을 위함이요 너희에게 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니 오직 너희로 하여금 이치에 합하게 하여 분요함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

결혼한 자는 상대방을 기쁘게 하기 위해 애쓰게 된다. 이것은 결혼한 자로서 정상적인 행위이며 불가피한 일이다. 그러나 결혼하지 않은 자는 결혼한 자보다 더 주의 일을 위해 살 수 있다. 독신은 유익이 있다. 그러나 바울이 독신의 장점을 가르침은 성도에게 시험의 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요 마음의 흐트러짐 없이 전심으로 주를 섬길 수 있게 하려 함이었다. 성도는 주의 일을 위해 독신생활을 할 수 있다.

[36-38절] 누가 자기의 처녀 딸에 대한 일이 이치에 합당치 못한 줄로 생각할 때에 혼기도 지나고 그같이 할 필요가 있거든 마음대로 하라. 이것은 죄 짓는 것이 아니니 혼인하게 하라. 그러나 그 마음을 굳게 하고 또 부득이한 일도 없고 자기 뜻대로 할 권리가 있어서 그 처녀 딸을 머물러 두기로 마음에 작정하여도 잘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처녀 딸을 시집 보내는 자도 잘하거니와 시집 보내지 아니하는 자가 더 잘하는 것이니라.

부모가 처녀 딸을 결혼시키는 것은 정당한 일이요 죄짓는 것이 아니지만, 결혼시키지 않고 그로 하여금 주의 일에 전적으로 힘쓸 수 있게 하는 것은 더 잘하는 것이다. 물론, 그가 스스로 원해야 한다.

[39절] 아내가 그 남편이 살 동안에 [법으로]9) 매여 있다가 남편이 죽으면 자유하여 자기 뜻대로 시집갈 것이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

남편이 죽으면 아내는 재혼할 수 있다. ‘주 안에서만 하라’는 말씀은 성도의 결혼의 기본 원리를 증거한다. 성도는 반드시 구주 예수님을 믿는 자와만 결혼해야 한다(신 7:1-4; 느 13:23-27; 고후 6:14-16).

[40절] 그러나 내 뜻[의견, 판단]에는 그냥 지내는 것이 더욱 복이 있으리로다. 나도 또한 하나님의 영을 받은 줄로 생각하노라.

사도의 교훈은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으로 깨달은 교훈이다.

본장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독신(獨身)은 유익하다. 독신은 마음의 흐트러짐이 없이 하나님의 선한 일에 전심전력할 수 있는 유익이 있다. 그러나 단지 하나님께서 주시는 절제의 은혜가 필요하다.

둘째로, 결혼은 악하고 음란한 세상에서 음행 방지를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최선의 방책이다. 절제의 은사가 부족한 우리는 결혼 관계를 잘 사용함으로써 마귀가 주는 음행의 시험을 막을 수 있다.

셋째로, 결혼한 자는 그 의무를 다해야 한다. 부부는 각자의 의무를 다해야 하며 특히 자기 몸을 자기가 주장하지 말고 상대방을 항상 배려해야 한다. 금식하고 기도하는 일 외에는 서로 분방하지 말아야 한다.

넷째로, 결혼의 기본 원칙 하나는 “주 안에서 결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에게는 마음의 큰 고통이 따르고 육신의 고통도 따를 것이다. 이것은 별거나 이혼이나 재혼에도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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