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절]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뇨? 범사에 많으니 첫째는 저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의 특권들 중 첫째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는 사실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진리들을 계시하셨고 그것들을 기록하고 보관하며 전달하게 하셨다. 그것은 유대인들의 특권이었다. 시편 147:19-20, “저가 그 말씀을 야곱에게 보이시며 그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보이시는도다. 아무 나라에게도 이같이 행치 아니하셨나니 저희는 그 규례를 알지 못하였도다.”
[3-4절]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신실하심]을 폐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기록된 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
어떤 유대인들이 믿지 않았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 보관의 특권에 차질이 생긴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의 신실하심은 그들의 불신앙과 불순종 때문에 폐해지지 않았다.
[5-6절] 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 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만일 그러하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시리요?
사람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낸다고 하여서 그 불의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불의에 대하여 진노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결코 불의하실 수 없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아무리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일지라도, 범죄하는 한 그들은 마땅히 정죄(定罪)받아야 한다.
[7-8절] 그러나[왜냐하면 어떤 이들이 말하기를]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으면 어찌 나도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 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않겠느냐 함이라.] (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저희가 정죄(定罪)받는 것이 옳으니라.
본문은 5, 6절을 보충 설명한다. 사람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게 드러났을지라도 그의 거짓말이 어떤 선한 역할을 한 것이 아니며 선으로 간주될 수도 없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선을 이루기 위해 악을 행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무슨 일이든지 목표가 선하고 옳아야 할 뿐만 아니라, 방법도 선하고 옳아야 한다.
[9절]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사도 바울은 이미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다 죄인임을 증거하였다. 그는 1장에서는 주로 이방인의 죄를, 2장에서는 주로 유대인의 죄를 증거했다고 보인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특권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이방인들과 다를 바가 없는 죄인들이다. 유대인들이나 이방인들이나 모두 다 구별 없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들이다.
[10-12절]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세상에 의인은 한 사람도 없다. ‘하나님과 사람’(神人)이신 예수님만 예외이실 뿐이다. 사람들 중에서 그는 유일하게 죄가 없으시다(히 4:15; 벧전 2:22; 요일 3:5). 그 외에 하나님의 계명에 완전히 일치하게 산 자, 참으로 의로운 자는 하나도 없다. 의인 노아나 욥이나 다니엘도(창 6:9; 욥 1:1; 겔 14:14) 완전한 의인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쌓은 선한 업적이라는 것도 실상 무의미하고 무가치하다. 영원히 가치 있고 선한 일을 행하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
[13-15절]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나오는 것들은 더럽고 악취나는 것들뿐이다. 또 사람들의 혀는 속이는 혀이다. 사람들은 거짓말에 숙련되어 있다. 또 그 입술에는 남을 죽이는 독이 있고 그들의 말들은 남을 저주하는 악독으로 가득하다.
[16-18절] 파멸과 고생[불행]이 그 길에 있어 평강[평안]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죄인인 사람들의 길에는 파멸과 불행이 있고 그들은 평안의 길을 알지 못한다. 또 그들의 눈앞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다. (잠 16:6).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는 자들에게는 악을 버리고 떠남도 없고 참된 의(義)와 선(善)도 없다. 그런 자들에게 파멸과 불행이 있을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 없는 세상의 현실이며 우리가 구원 얻기 전 상태였다.
[19-20절]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사람은 율법을 통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한다. 율법의 역할은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죄악됨을 깨닫게 하여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는 데 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율법 앞에서 죄인으로 판정되므로 하나님 앞에서 항변할 말이 없다. 율법을 다 지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사람은 세상에 한 사람도 없다.
[21절] 이제는 율법 외에(코리스 노무)[율법과 별개로] 하나님의 한 의(義)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기독교 복음은 율법과 별개로 나타난 하나님의 한 의에 대한 소식이다. ‘이제는’이라는 말은 구약시대와 대조하여 신약시대를 가리키는 말이다. 구약시대에 증거된,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義)는 행위의 의, 즉 모든 율법을 항상 행함으로 얻을 수 있는 의이었다. 그러나 사람은 율법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었다. 이제 하나님께서 율법과 별개로 주시는 한 의가 복음 안에 나타났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으로 말미암은 의이다.
이 의(義)는 율법과 선지자들, 즉 구약성경에 이미 증거된 바이었다. 이사야 53:11,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다니엘 9:24,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70이레[주간]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永贖)되며[영원히 속(贖)하여지며] 영원한 의(義)가 드러나며 이상(異像)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
[22절]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믿는 모든 자에게 그리고 모든 자 위에](전통본문)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이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의이다. 율법을 행함으로 얻는 의(義)가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의(義)이다. 신약시대의 의(義)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누구나 차별 없이 받을 수 있는 의(義)이다.
[23-24절] [이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救贖)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되었음이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고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으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救贖)으로 말미암아 죄인이 단지 그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었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얻는 의(義)는 행위로 얻는 의(義)와 대조된다. 이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요 값없이 거저 얻는 의이다. 이런 의가 가능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위해 구속(救贖)을 이루셨기 때문이었다. ‘구속’(救贖)이란 값을 주고 산다는 뜻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죗값, 즉 죄의 책임 곧 죄책(罪責)과 형벌을 짊어지시고 우리를 건져내셨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누구나 그의 십자가의 보배로운 피로 죄씻음과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이다. 이것이 구원(이신칭의 以信稱義)이다.
[25-26절]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그의 피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힐라스테리온)[유화제물(宥和祭物)]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을 믿는 것은 그의 속죄사역을 믿는 것이고 그의 피를 믿는 것이다. 피가 생명이므로 피흘림이 죄를 속(贖)한다(레 17:11). 유화제물(宥和祭物)은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히는 제물을 말한다. 그것은 우리의 죄로 인한 하나님의 크신 진노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리신 죽음으로 누그러지셨다는 의미이다.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속죄의 한 의미이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 사역으로 인한 의롭다 하심 곧 칭의(稱義)의 원리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증거할 뿐만 아니라, 또한 예수님 믿는 자들이 받는 의(義)의 정당함을 증거한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모든 죄를 예수 그리스도께 전가(轉嫁)시키셨으므로 그들을 의롭다고 정당하게 선포하실 수 있다는 말씀이다. 그러나 성도는 비록 법적으로는 완전한 의인이지만 실제적으로는 아직 불완전하고 부족이 있다.
[27절]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행위의 법으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성도의 의가 자신의 행위에 근거하지 않고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리신 속죄사역에 근거하기 때문에, 성도는 자랑할 것이 없다. 왜냐하면 이 의는 사람들의 행위의 법으로 얻는 것이 아니고, 단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의를 믿음으로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
[28절]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행위와 관계가 없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로기조마이)[간주하노라(NASB, NIV), 판단하노라, 결론을 내리노라(KJV)].
[29-31절] 하나님은 홀로 유대인의 하나님뿐이시뇨? 또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뇨?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는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에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는 유대인들의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또한 이방인들의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구원 진리는 할례 받은 유대인들에게나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들에게나 똑같이 적용된다. 이 구원 진리는 어느 시대나 어느 민족에게나 동일하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효력 있는 진리이다. 오늘날도 죄인들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의 구원을 얻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신약의 복음이 구약의 율법을 폐지시키는 것은 아니다. 구약과 신약은 서로 충돌치 않는다. 율법과 복음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구약과 신약은 그림자와 실체요 예언과 성취이다. 율법은 사람으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하여 복음으로 이끄는 인도자 역할을 한다. 사실, 복음에 제시된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죄의 죽음은 율법의 저주를 받으신 죽음이었고(갈 3:13) 율법의 의를 이루신 것이었다(롬 10:4). 그러므로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을 폐지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를 위한 구속(救贖)의 죽음을 죽으셨고 또 유화(宥和)제물이 되셨다. 24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救贖).” 25절, “화목제물[유화제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의 죄로 인해 받아야 할 형벌을 대신 받으신 것이다. 그는 우리의 죗값을 지불하셨고 우리의 죄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뜨리셨다.
사람은 율법을 행함으로써가 아니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에 근거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들에게 주어진다. 이것이 죄인이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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