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celife365(주신삶에 감사하자)

[1-2절]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바울과 바나바와 저희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에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교회에는 교훈이 중요하다. 교회는 바른 교리 위에 세워져 있기 때문에 잘못된 교리가 들어오면 교회를 어지럽히고 무너뜨린다. 그런데 수리아 안디옥 교회에 잘못된 교훈을 하는 자들이 들어왔다. 그들은 신자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가르쳤다. 할례를 받는 것은 구약의 율법을 지키겠다는 약속의 뜻이 있다. 그들은 사람이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친 것이다. 이런 사상을 율법주의라고 부른다.

안디옥 교회의 형제들은 율법주의 오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울과 바나바와 그 교회 중에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했다. 그것은 사도들과 장로들의 권위와 지식이 더 나아서라기보다 교회의 교리적 순결과 일치를 지키려 함이었다. 중요한 교훈에서의 이탈과 불일치는 교회의 순결과 일치를 손상시킬 수밖에 없다. 교회는 바른 교리에 있어서 하나이어야 한다.

[3-11절] 저희가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녀가며 이방인들의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사도들]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바리새파 중에 믿는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 주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저희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거하시고 믿음으로 저희 마음을 깨끗이 하사 저희나 우리나 분간치[차별치, 구별치] 아니하셨느니라.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우리가 저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바리새파에 속하였던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이방인들에게도 할례를 주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고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이루신 속죄사역이 율법을 완성하였다는 것은 모든 신자가 처음부터 이해한 문제가 아니었다. 예루살렘 교회에 있는 사도들과 장로들이 이 문제에 대해 의논하기 위해 모였다. 그것은 교리적 문제로 모인 최초의 교회 회의이었다. 그 회의에서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주셨고 또 믿는 자들에게 성령을 주심으로 그들과 우리를 차별하지 않으셨고 이방인들도 믿음으로 마음의 깨끗함을 얻게 하셨고,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과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을 믿으며 따라서 우리 조상과 우리도 감당할 수 없었던 율법의 멍에를 이방인들에게 지우려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12-18절] 온 무리가 가만히 있어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이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奇事) 고하는 것을 듣더니 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가로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저희를 권고하신[돌아보신] 것을 시므온이 고하였으니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합하도다. 기록된 바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퇴락한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하나님께는 그의 모든 일들이 만세 전부터 알려져 있느니라].

예수님의 동생이며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이었던 야고보는 일어나서 베드로의 증거가 선지자들의 말씀과 일치한다고 말하면서 아모스 선지자의 글을 인용하였다(암 9:11-12). 그것은 메시아 시대에 하나님께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 즉 멸망한 유대 나라를 회복시키실 것과 이방인들이 구원을 얻을 것에 대한 예언이었다.

[19-21절]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말고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가하니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니라 하더라.

야고보는 이방인들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다만 몇 가지 점들만 조심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내었다. 야고보의 제안은 영속적 성격을 가진 내용은 아니라고 본다. 우상숭배와 음행은 어느 시대에나 큰 죄이지만,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는 것은 유대인 신자들과 이방인 신자들의 교회생활을 위해 일시적으로 필요한 것이었다. 만일 이방인 신자들이 율법에 금지된 그런 것들을 용납하였다면, 옛날부터 율법을 지켜왔던 유대인 신자들은 마음에 큰 거리낌을 가졌을 것이며 교회생활에서 마음에 상당한 불편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방인 신자들은 이런 점들을 조심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모세의 율법이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이방인 신자들도 이런 문제점을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22-29절] 이에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그 중에서 사람[사람들]을 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기를 가결하니 곧 형제 중에 인도자[지도적 인물들인]인 바사바라 하는 유다와 실라더라. 그 편에 편지를 부쳐 이르되 사도[사도들]와 장로된 형제들[장로들과 형제들]은 안디옥과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이방인 형제들에게 문안하노라. 들은즉 우리 가운데서 어떤 사람들이 우리의 시킨 것도 없이 나가서 [너희가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면서](전통본문) 말로 너희를 괴롭게 하고 마음을 혹하게 한다 하기로 사람을 택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인 우리의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너희에게 보내기를 일치 가결하였노라. 그리하여 유다와 실라를 보내니 저희도 이 일을 말로 전하리라.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가한 줄 알았노니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

예루살렘 회의는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 중에 유다와 실라를 선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같이 안디옥으로 보내기를 가결하였다. 바울과 원사도들 간에는 아무런 불일치가 없었다. 야고보의 제안으로 그 회의는 일치된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여러 시간의 교리적 변론은 하나님의 은혜로 마침내 일치된 좋은 결론을 가져왔다. 사도들과 장로들과 교인들은 하나님의 뜻을 확신하였다. 그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가한 줄 알았노니”라고 표현할 수 있었다. 이로써, 이방인들에게 주신 구원의 은혜와 구약 율법과의 관계에 관해, 바른 깨달음과 생각이 정리되었다.

[30-35절] 저희가 작별하고 안디옥에 내려가 무리를 모은 후에 편지를 전하니 읽고 그 위로한 말을 기뻐하더라. 유다와 실라도 선지자라. 여러 말로 형제를 권면하여 굳게 하고 얼마 있다가 평안히 가라는 전송을 형제들에게 받고 자기를 보내던 사람들[사도들](전통본문)에게로 돌아가되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유하며 다수(多數)한[여러]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주의 말씀을 가르치며 전파하니라.

안디옥 교회 교인들은 그 편지를 읽고 그 권면과 격려의 말을 인해 기뻐하였다.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 유하며 여러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주의 말씀을 가르치며 전파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교회들에 일꾼들을 주셔서 서로 권면하고 덕을 세우기를 원하신다.

[36-41절] 수일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니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한가지로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타고 구브로로 가고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하나님의](전통본문)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녀가며 교회들을 굳게 하니라.

본문은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의 시작을 증거하며 심방의 필요성도 보여준다. 성도들은 서로 방문하고 위로 권면해야 한다. 데살로니가전서 5:11,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같이 하라.” 히브리서 3:13,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바울과 바나바는 전도와 심방 동반자 문제로 다투었다. 바나바의 생각은 온건했으나, 바울의 생각은 강경했다. 그들은 심히 다투었으며 그 결과 그들은 피차 갈라서서 각자 자기의 길을 가게 되었다. 그 둘의 신앙 사상이 다른 것은 아니었으나, 일하는 방식에 대해 생각이 달랐다. 그들이 서로 심히 다투고 나뉜 것은 사역자들의 연약을 보이는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동역(同役)의 중요한 원리를 보여준다. 주의 일을 함께할 동역자들은 생각과 뜻이 같아야 한다. 아모스 3:3, “두 사람이 의합지 못하고야 어찌 동행하겠느냐?” 또 말씀의 사역자들은 주를 사랑하고 주를 위하여 자신을 온전히 바칠 각오가 되어야 하며 심령이 굳세게 단련된 자이어야 한다.

 교회는 교리적 순결과 일치를 가져야 한다. 최초의 예루살렘 회의는 일치된 마음으로 결론을 내렸다. 26절, “일치가결하였노라.” 그것은 오랫동안의 교리적 변론을 통하여 왔다. 그것은 힘든 과정이지만 필요하며 성경말씀의 묵상과 기도, 겸손과 사랑과 인내로 이루어져야 할 과제이다. 교리적 순결과 일치는 교회의 정상적 모습이다. 고린도전서 1:10,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에베소서 4: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교회는 일치된 바른 교리와 교훈을 가져야 한다.

이 글을 공유합시다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Talk kakaostory naver 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