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celife365(주신삶에 감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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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절] 안식 후 첫날[주간의 첫날](원문)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간 것을 보고 시몬 베드로와 예수의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이 주를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빈 무덤에 대해 다른 복음서들과 달리 순서적으로 자세히 기록했다고 보인다. 주간의 첫날 즉 주일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바위에 판 새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간 것을 보고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의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사람이 주를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고 말하였다.

다른 복음서들에 보면, 다른 여러 여자들도 같이 갔던 것 같다(마 28:1; 막 16:1; 눅 24:1, 10).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2절)는 말은 다른 여자들이 있었음을 암시하는 것 같다. 그들은 예수님의 시신에 바르기 위해 향품을 준비해 왔다(막 16:1; 눅 23:56; 24:1).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그들의 믿음과 사랑은 컸고 간절하였다.

[3-7절]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새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아나서[달려가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 구푸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 시몬 베드로도 따라 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개켜 있더라.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갔다. 누가복음 24:11에 의하면, 사도들은 여자들의 말을 허탄한 소리로 생각했다. 그러나 다른 사도들과 달리 베드로는 무덤으로 즉시 달려갔다. 누가복음 24:12도 그 사실을 증거한다. 본문은 거기에 더하여 ‘그 다른 제자,’ 아마 요한도 함께 무덤으로 달려갔다고 말한다. 그 둘이 같이 달음질하였는데 요한이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가 먼저 무덤에 이르러 구푸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않았다.

[8-10절] 그때에야 무덤에 먼저 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저희는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이에 두 제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이와 같이, 제자들은 예수님의 무덤이 비었음을 확인하였다. 여자들도 확인하였고 베드로와 요한도 확인하였다. 빈 무덤은 그의 몸의 부활에 대한 확실한 증거이었다. 예수께서 기절하셨다가 다시 살아나실 가능성은 없었다. 사형을 집행하던 군인들은 그의 죽음을 확인했고 또 창으로 옆구리를 찔러 피와 물이 흘렀고 그의 제자들은 그를 장사했기 때문이다. 

[11-16절]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푸려 무덤 속을 들여다보니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 천사들이 가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가로되 사람이 내 주를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의 서신 것을 보나 예수신 줄 알지 못하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로 알고 가로되 주여, 당신이 옮겨갔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말로 랍오니여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

베드로와 요한은 집으로 돌아갔고 막달라 마리아는 남아 있었다.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도 마음이 아픈데 그의 시신까지 분실되니 마음이 몹시 슬펐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눈물은 또한 불신앙의 눈물이었다. 그는 주께서 자신의 부활에 대해 말씀하신 바를 믿지 않고 있었다. 그는 부활하신 주께서 그를 부르실 때도 그를 동산지기인 줄로 알았고 사람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가져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연약한 믿음과 마음으로라도 그를 사모하며 따랐던 마리아를 찾아주셨다.

[17-18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신대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부활하신 주께서는 마리아에게 “나를 만지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사람이 만질 수 있는 몸을 가지고 계셨다. 또 그는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고 말씀하셨다. 신성(神性)의 영으로는 그가 십자가에 위에서 구원받은 강도를 그 날 낙원에서 대할 수 있으셨으나, 인성(人性)으로는 아직 땅 위에 계셨다. 그는 땅 위에 계실 때에도 “하늘에 있는 인자(人子)”이셨다(요 3:13 전통본문).

그는 후에 도마에게 그의 손과 옆구리를 만져보라고 말씀하셨다. 부활하신 주께서는 세마포나 머리 수건을 개킬 수 있으셨고 사람이 만질 수 있는 몸을 가지고 계셨다. 그는 자신의 인성(人性)을 여전히 증거하셨다. 또 그는 그를 믿고 따르는 제자들을 ‘내 형제들’이라고 부르셨고 하나님을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이라고 부르셨다. 그는 신성(神性)으로는 아버지와 동등되신 자이지만, 인성(人性)으로는 우리와 같은 자이시다. 그는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시다.

[19절]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본문은 주께서 부활하신 바로 그 날, 즉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는데 예수께서 오셔서 가운데 서셨다고 증거한다. 본문은 부활하신 주께서 문을 열지 않고 들어오셨음을 증거한다. 그의 부활체는 신비한 몸이었다. 물론 그의 몸은 손과 옆구리에 상처가 있었다(20절). 그러나 그의 부활은 단순히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그 몸의 회생(回生)이 아니었다. 그 몸은 변화된 몸이었다. 그의 몸은 닫힌 문을 열지 않은 채 통과하여 방 가운데로 들어오실 수 있는 몸이다. 그의 부활의 몸은 우리가 장차 천국에서 가지고 누릴 것과 같은 변화된 몸이었다고 보인다.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평안이 있기를 기원하셨다. 유대인들의 위협 속에서 불안과 근심을 가졌던 제자들에게 무엇보다 평안이 필요하였다. 그는 그들에게 그 평안을 주셨다.

[20절]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21절]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2절]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예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여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셨다. 주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사명은 성령의 능력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행 1:8). 성령을 받는 것은 사명 수행을 위해 필수적이다. 

[23절]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24-25절] 열두 제자 중에 하나인 디두모라 하는 도마는 예수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가로되 내가 그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26절]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부활하신 주께서는 믿음 없는 도마를 위해 다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여드레를 지나서”라는 말은 그 다음 주일을 가리킨다고 본다. 제자들이 다시 함께 집안에 있었다. 도마도 함께 있었다. 그 날도 제자들은 집의 문들을 닫고 있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께서 다시 오셔서 그들 가운데 서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셨다. 평안은 사람에게 매우 큰 복이다. 히브리말에 ‘평안’이라는 말(솰롬)은 우리말에 ‘안녕’처럼 매우 포괄적인 뜻을 담고 있다. 그것은 마음의 평안, 몸의 건강, 경제적 안정, 환경적 평안을 다 포함하는 뜻이라고 본다. 예수께서는 주일에 부활하셨고 또 그 다음 주일에 다시 나타나셨다. 하나님께서는 신약 시대에 주일을 복되게 하셨다고 보인다. 주일에 성령께서도 강림하셨다(행 2:1). ‘주의 날’ 곧 주일에 사도 요한도 주 예수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되어질 일들에 대한 계시를 받았다(계 1:10). 주일은 확실히 구별되었다고 보인다.

[27절]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주께서는 믿음 없는 도마에게 말을 건네셨고 믿음의 기회를 주셨다.  도마 같은 합리주의자들은 죽은 자들의 부활에 대해 의심하겠지만, 하나님께는 능치 못함이 없으시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기 때문이요 또 증인들의 증거의 진실성을 믿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죽은 자들의 부활을 부정하는 사두개인들에게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고 말씀하셨다(마 22:29).

[28-29절] 도마가 [그에게](원문)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의심 많았던 도마는 그에게 대답하였다.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그는 이제 예수님의 부활을 믿었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하나님으로 고백하였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는도다”라고 증거하였다(벧전 1:8). 우리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지 못하였으나 그를 믿고 있다. 우리는 단지 그를 본 증인들의 증거의 말씀들을 담고 있는 신약성경에 근거하여 그를 믿는다. 이것은 하나님의 큰 은혜이다.

[30-31절]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사복음서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기적들과 부활을 증거한다. 복음서들이 증거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기적들과 부활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확증한다. 또 사람들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생을 얻는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복음서들을 주신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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