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celife365(주신삶에 감사하자)

[1-3절]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예수께서는 유대인의 왕으로 탄생하셨다. 이것은 구약 예언들의 성취이었다. 구약성경은 메시아께서 다윗의 위를 잇는 왕으로 오실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사야 9:6-7,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예레미야 23:5,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에스겔 34:24, “내 종 다윗은 그들 중에 왕이 되리라.” 호세아 3:5, “저희가 돌아와서 그 하나님 여호와와 그 왕 다윗을 구하고 말일에는 경외하므로 여호와께로 와 그 은총으로 나아가리라.”

[4-8절]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 물으니 가로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헤롯 왕은 동방 박사들이 말한 유대인의 왕이 그리스도를 가리킴을 알았다. 그는 모든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께서 어디서 나겠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미가 5:2로 대답하였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영원 전부터]니라.” 이와 같이,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시고 다스리실 메시아께서는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나실 것이 예언되어 있었다.

모든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메시아의 출생지에 대한 성경 예언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동방박사들과 함께 아기로 출생하신 그리스도께 경배하러 간 것 같지 않다. 그들의 지식은 생명 없는 지식이었다. 참 믿음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고 마음의 순종이다. 하나님을 믿는 자는 그를 사랑하고 사모하며 그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

[9-12절]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섰는지라. 저희가 별을 보고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동방박사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은 자들이었다. 그들은 ‘동방’ 곧 먼 이방나라에서 왔다. 그들은 믿음의 환경에서 자란 자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단지 별에 대한 적은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주신 기이한 별에 이끌리어 먼 길을 여행하였고 아기 메시아를 찾는 열심을 나타내었다. 그들은 아기께 경배하였고 귀한 예물도 드렸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신 마을은 성경에 예언된 유대 땅 베들레헴이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경의 중심 인물이시다. 마태복음 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족보]라.” 누가복음 24:25-27, “가라사대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요한복음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그를 알았고 믿었고 확신했고 그를 따랐고 또 따르며 순종하고 있다.

[13-15절] 저희가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동방박사들이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꿈에 나타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고 말했다. 요셉은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다. 이는 주께서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 함(호 11:1)을 이루려 하심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법적 부친인 요셉으로 하여금 아기 예수님과 그의 모친을 위한 보호자의 역할을 하게 하셨다. 동방박사들이 드린 황금 예물은 요셉 가족의 도피생활을 위해 유용했을 것이다. 실상, 세상의 모든 은금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16-18절]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때를 표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로 말씀하신 바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

헤롯은 박사들에게 속은 줄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들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남자아이들을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 본 때를 표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였다. 그래서 선지자 예레미야로 말씀하신 바 라마에서(베들레헴에서 15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곳까지)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는 말씀이 이루어졌다.

헤롯이 박사들에게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2:8)고 한 말은 거짓말이었다. 그는 유대인의 왕인 메시아가 자기 아들들의 왕위를 위태하게 한다고 생각하여 그를 죽이려 했던 것 같다. 그러나 박사들이 그에게 알려주지 않음으로 그의 은밀한 계획이 실패했을 때, 그는 베들레헴 부근의 2살 이하 남자아이들을 모두 죽이는 큰 악을 노골적으로 저질렀다. 사람은 참으로 악하다. 그의 통치연대가 주전 4년에 끝나는 것을 보면, 헤롯은 이런 악을 행한 후에 죽은 것 같다.

[19-23절] 헤롯이 죽은 후에 주의 사자가 애굽에서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일어나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 하시니 요셉이 일어나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오니라. 그러나 아켈라오가 그 부친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 됨을 듣고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하더니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 나사렛이란 동네에 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헤롯이 죽은 후에 주의 사자가 애굽에서 또 요셉에게 꿈에 나타나서 “일어나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고 말했다. 요셉은 일어나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아켈라오(헤롯 아켈라오, 주전 4년-주후 6년)가 그 부친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 됨을 듣고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했고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 나사렛이란 동네에 와서 살았다. 이것은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었다.

나사렛(나조라이오스)은 구약성경의 나실인(히브리어 네지르, 헬라어 나지르 Nazivr나 나제이라이온, Nazeirai'on ‘바쳐진 자, 구별된 자’)이나 ‘가지’(히브리어 네체르)(사 11:1)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나실인 중에 나실인이시며, 이새의 뿌리에서 난 한 ‘가지’이시다.

나사렛 마을은 시골 벽촌이었다. 예수님은 시골 사람이셨다. 그는 어린 시절과 청소년 시절을 시골에서 보내셨다. 거기서 그는 약 30년을 사셨다. J. C. 라일의 말과 같이, “하나님 앞에서는 사람이 어디에 사느냐보다 그가 어떠한 사람이냐가 더 중요하다.” 사람의 환경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의 됨됨이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낮아지심과 고난 받으심을 본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신 성육신(成肉身)은 그의 가난해지심이었다. 그는 본래 부요하신 자, 곧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그의 신성의 영광과 부요는 참으로 컸다. 그러나 그는 자발적으로 우리를 위해 가난해지셨다(고후 8:9). 그는 가난한 가정에 태어나셨다. 마리아는 그의 탯줄을 따뜻한 방이나 병원에서가 아니고 쌀쌀했을 마굿간에서 끊었다. 얼마 후 요셉은 가난한 자가 드리는 제물인 비둘기를 하나님께 제물로 드렸다. 그는 한 시골에서 하나님의 때가 되기까지 자신을 감추셨다. 그는 평생 집이나 나귀를 개인 소유로 갖지 않으셨다. 그가 때때로 시장하셨던 것을 보면 드실 음식이 늘 준비된 것 같지도 않다. 마침내 그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우리는 그의 낮아지심과 가난해지심으로 말미암아 구원과 부요함 즉 부활과 영생을 얻었다. 죄로 인하여 허무하고 비천하고 무가치했던 우리, 벌레와 같았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기도할 줄 몰랐던 우리가 기도하는 특권을 얻었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자들이 되었고, 천국 기업을 상속받는 자들이 되었다. 우리는 예수님의 겸손을 본받아야 한다. 스스로 자기를 높이고 자기를 선전하는 것은 세상 사람의 모습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의 모습은 아니다. 자신을 높이고 드러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고 감추는 자는 높아질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쓰실 때까지 겸손히 자신을 낮추고 감추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겸손히 하나님만 높이고 성도들을 사랑하고 섬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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