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celife365(주신삶에 감사하자)

728x90

1. 무슬림의 첫 번째 전략: 같은 하나님

“하나님을 부르는 이름이 다를 뿐, 하나님과 알라는 같은 하나님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십니다. 단지 그를 부르는 이름이 서로 다를 뿐이지요. 영어로는 God 이라고 하고, 한국어로는 하나님이라고 하고 일본어로는 가미사마(かみさま)라고 하고, 터키어로는 탄르(Tanrı)라고 하고, 아랍어로는 알라(Allāh)라고 말할 뿐, 다같은 하나님이십니다.

→ 그리스도인의 대답: 당신 말의 뜻은 마치 사과를 한국어로는 사과, 영어로는 애플, 일본어로는 링고, 터키어로는 엘마라고 말하는 것처럼, 부르는 이름은 달라도 사과의 맛과 내용은 똑같아서 같은 사과라는 것이지요?

2. 무슬림의 두 번째 전략: 예수는 독생자인가?

“예,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집트 콥틱 그리스도인들이 쓰고 있는 아랍어 성경 창세기 1장 1절을 보면 “태초에 알라가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중동에서 하나님과 알라는 같은 하나님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 그리스도인의 대답: 그렇군요. 창세기 1장 1절만이 아니라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도 “알라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를 주셨으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조금 전 하나님과 알라는 같다고 하셨으니, 이슬람의 알라도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를 보내 주셨겠지요?

→ 무슬림의 대답: 아니요, 이슬람에서는 예수를 독생자로 보지 않습니다. 알라는 예수를 선지자로 보내셨습니다. 이슬람은 예수를 선지자로서 존경하고 있습니다.

→ 그리스도인의 대답: 그렇다면 맛이 다르고 내용이 다르다는 것인데, 맛과 내용이 다르면 서로 다른 과일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알라가 서로 다르다는 것이 됩니다. 그렇지요?

3. 무슬림의 세 번째 전략: 한 뿌리 세 줄기

“기독교도 믿음의 조상이 아브라함이고, 이슬람도 믿음의 조상이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스마엘의 후손이 이슬람이고, 이삭의 후손이 유대교와 기독교인이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서로 사촌관계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같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사실 여러분들이 잘 몰라서 그렇지, 기독교의 하나님과 이슬람의 알라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으로서 같은 하나님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은 한 뿌리에서 나온 세 줄기라고 생각합니다.”

→ 그리스도인의 대답: 한 뿌리에서 나온 세 줄기라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나오는 아브라함과 쿠란에 나오는 아브라함은 서로 다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성경 창세기 11장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아버지는 데라이고 아들은 이삭인데, 쿠란 6장 74절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아버지는 아자르이고 아들은 이스마엘입니다.

아버지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다르면 아들의 이름이 같아도, 다른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서로 다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도 서로 다르다는 것이 되겠습니다.

※ 이슬람 창시자 무함마드는 과연 이스마엘의 후손인가? 이 문제를 생각하자면 거슬러 올라가서 아브라함부터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성경의 아브라함(Abraham)과 꾸란의 이브라힘(Ibrahim)이 과연 같은 인물인가?

우선 성경의 아브라함은 아버지 이름이 데라(창11:31~32)라고 되어 있는데 꾸란의 이브라힘의 아버지 이름은 아자르(Azar)라고 한다.(꾸란6:74) 우선 아버지가 다르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성경의 아브라함의 원래 이름은 아브람이었는데 99세 때부터 하나님께서 바꿔주신 이름이다.(창17:5) 그런데 꾸란의 이브라힘은 젊었을 때부터 이브라힘이라고 불리던 사람이었다.(꾸란 21:60) 특별히 성경에 아브라함은 사우디 아라비아의 메카에 간 일이 없는데 꾸란의 이브라힘은 메카에서 이스마엘과 함께 카바(Kaaba)신전을 건축한 사람이라고 한다.(꾸란2:125~127) 
성경과 꾸란의 이러한 극심한 내용상의 차이는 성경의 아브라함과 꾸란의 이브라힘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아니라 이스마엘이라도 메카에 가서 살았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성경은 이스마엘이 메카로 간 것이 아니라 바란 광야에서 살았다고 기록하고 있다.(창21:21) 우리 성경은 ‘그가 바란 광야에 살 때에 그의 어머니가 그에게 애굽 여인을 아내로 얻어 주었다’고 되어 있어서 애굽 여인과 결혼할 때는 그가 바란 광야에 살았지만 평생을 거기서 살았다는 말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을 주지만 히브리 원문에는 ‘때에’라는 말이 없다. ‘그는 바란 광야에 살았다. 그리고 그의 모친이 애굽 여인을 그에게 아내로 주었다’는 것이 올바른 번역이며 킹제임스 번역이나 굳뉴스 바이블도 그렇게 번역하고 있다. 성경에 의하면 이스마엘의 거처는 바란 광야 즉 이스라엘 남쪽이며 모세가 열두 정탐꾼을 보냈던 가데스바네아 북부의 바란 광야였다고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마엘이 메카에 가서 살았다는 이슬람의 주장이 성경적으로 보면 전혀 근거가 없는 주장이라는 것이 확인된다.

그렇다면 이스마엘의 후손들 중 어떤 사람이라도 메카에 가서 살았고 그들의 후손 중에 무함마드가 태어나서 이슬람이라는 종교를 시작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성경은 친절하게도 이스마엘의 후손들의 거처까지 알려주고 있다. '이스마엘의 자손들은 하윌라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애굽 앞 술까지 이르러 그 모든 형제의 맞은 편에 거주하였더라’(창25:18) 그런데 하윌라에서 술까지 통하는 지역이 어디인지 우리가 잘 모른다. 그러나 친절하게도 영어 성경에 보면 거기가 어딘지를 설명해 주고 있다. Near the border of Egypt(이집트 국경 부근)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쉽게 생각해봐도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왜냐하면 이스마엘의 모친인 하갈은 애굽 여인이었다. 그리고 이스마엘의 아내도 애굽 여인이었다.(창21:21) 그렇다면 이스마엘과 그의 후손들이 애굽 근처에서 살았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왜냐하면 어머니의 언어이자 할머니의 언어를 그 자식들과 손자들이 자연스럽게 배웠을 것이기 때문에 말이 통하는 사람들과 가까이 살았을 것이라는 것이 자연스런 추측이며 성경도 애굽 국경 부근에서 살았다고 증거해 주고 있는 것이다.

4. 무슬림의 네 번째 전략: 예수가 하나님 아들인가?

“당신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이라고 믿고 있는데, 예수가 언제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까?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말한 성경 말씀이 있으면 보여주세요?그러면 믿겠습니다.”

→ 그리스도인의 대답: 예, 있습니다. 구약 시대인 기원전 1,400년,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는 하나님이다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I am that I am, 출애굽기 3:14)”.

마찬가지로 기원 후 33년 예수님께서도 자신이 하나님이신 것을 바리세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있느니라(Before Abraham was even born I am, 요한복음 8:58)”.

기원 후 33년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기원전 1,400년에 존재했던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있었다고 과거로 말하지 않고,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있느니라고 현재형으로(I am) 말씀하셨습니다. 이 뜻은 “나는 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있는 항상 현존하는 하나님이시다(요한계시록 1:8)”는 것입니다.

5. 무슬림의 다섯 번째 전략: 당신은 세뇌당했다

“당신이 어려서부터 세뇌를 당해서 예수에 대해 잘못 알고 계십니다. 말도 안 되는 것들을 배웠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죄인이라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고,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며 신으로 떠받듭니다. 사실 어떻게 사람이 신이 될 수 있습니까? 신은 신이고 사람은 사람입니다. 이슬람에서 예수는 사람으로, 알라의 말씀을 받고 전해준 선지자일 뿐입니다.

→ 그리스도인의 대답: 불교에서는 예수를 부처라 하고, 이슬람에서는 예수를 선지자라고 말하는데, 자신이 누구인지는 자신이 제일 정확하게 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부처라고 말한 적도 없고, 선지자라고 말한 적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은 모든 사람을 죄에서 구원할 구원자이면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셨습니다(마태복음 16:10-16).

이렇게 대화를 해 보니, 기독교의 하나님과 이슬람의 알라는 같은 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성경이 말하는 아브라함과 쿠란의 이브라힘도 서로 다릅니다. 성경의 알라는 예수를 독생자로 보냈다는데, 쿠란의 알라는 예수를 선지자로 보냈다고 하시니까요.

이처럼 하나님과 알라는 분명하게 서로 다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슬람은 경계하되, 무슬림은 사랑해야 합니다. 무슬림은 복음을 들었을 때 고민하고 예수님께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공유합시다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Talk kakaostory naver 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