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celife365(주신삶에 감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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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절]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 [곧 육신을 좇지 않고 성령을 좇아 행하는 자들](전통사본)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나를](전통본문) 해방하였음이라.

‘이제’는 구원 얻은 후를 가리키며, ‘육신’은 사람의 죄성을 가진 몸을 가리킨다고 본다. 구원 얻은 성도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거하는 자들이요 육신 즉 몸의 죄성을 따라 행하지 않고 성령을 따라 행하는 자들이다.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복음으로 우리에게 의를 주시고 죄와 사망의 율법으로부터 자유케 하셨고 영원한 생명을 은혜로 주셨으므로 성도들에게는 정죄함이 없는 것이다.

[3-4절]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성령]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디카이오마)[의(KJV), 요구(NASB, NIV)]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사람은 본성의 죄성과 연약성 때문에 ‘어찌 할 수 없는’ 죄인이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와 연약 때문에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으로 이 세상에 보내셨고 그에게 우리의 죄를 담당시키셨던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이며 하나님의 복음의 중심적 내용이다.

[5-8절]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성령](KJV, NASB, NIV)을 좇는 자는 영[성령](KJV, NASB, NIV)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성령]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본절의 육신과 영은 단지 사람의 육체와 영을 가리키지 않고 몸의 죄성과 성령을 가리킨다. 구원 얻은 자들에게는 단지 몸과 영의 대립이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중생한 사람의 영이라도 영육이 결합되어 있는 동안에는 몸의 죄성의 영향을 받아 영의 기능들인 생각과 감정과 의지에 있어서 연약과 부족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구원 얻은 성도의 내면적 싸움은 육신의 죄성과 성령의 대립이다. 사람은 몸의 죄성을 따라 살면 그 결과는 죽음이지만, 성령을 따라 몸의 죄악된 욕심을 죽이며 산다면 그 결과는 의와 생명과 평안인 것이다.

[9절]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성령 안에](KJV, NASB)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성도의 구원은 하나님의 영의 사역이다. 성령께서는 구원 얻은 자 속에 오셔서 거하신다. 이것은 구약성경에 예언된 복이며 신약 성도에게 주신 특권이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영께서 계시지 않는 자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영’과 성령은 동일시된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영이실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시다. 여기에 삼위일체의 신비가 다시 증거된다.

[10-11절]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성령께서는] 의를 인하여 산 것(조에)[생명](원문, KJV)이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그리스도께서는 지금 하늘에 계시지만 신성(神性)으로 그의 영 곧 성령을 통하여 우리 속에 계신다. 우리의 몸은 죄로 인해 죽은 것과 같고 또 어느 날 죽게 될 것이지만, 우리 속에 계신 성령께서는 생명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자이시다. 성령께서 우리 속에 생명을 시작하시고 유지시키시는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의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문은 “성령은 의를 인하여 생명이시니라”고 말한다.

[12-14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성령](KJV, NASB, NIV)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구원 얻은 우리는 은혜의 하나님께 빚을 진 자들이다. 하나님께서는 값없이 주신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로 우리의 죄를 씻으셨고 우리를 의롭다고 여기셨고 새 생명을 주셨다. 지옥 갈 죄인을 천국 가게 하신 구원의 은혜는 우리가 그 무엇으로도 갚을 수 없는 큰 빚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큰 빚은 진 자이다.

[15-17절]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養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아람어)[아버지]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우리를 인도하시는 성령께서는 ‘양자(養子)의 영’ 곧 우리를 양자로 삼으시는 영이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친자(親子)이시고 예수님 믿는 우리들은 하나님의 양자(養子)들이다. 성령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에 근거하여 우리를 양자로 삼으셨고 우리 속에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마음을 일으키셨다. 우리의 영의 이런 진심의 고백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된 증거이다.

마태복음 25:34, “그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그러나 예수께서 많은 고난을 받으셨듯이 우리도 세상에서 많은 고난을 받을 것이며,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영광을 받으셨듯이 우리도 고난 받은 후에 영광을 받을 것이다. 성도들의 현재의 고난은 장차 받을 영광에 이르는 과정이다.

[18-21절]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장차 성도들에게 나타날 영광은 천국의 영광이며 부활과 영생의 영광이다. 고린도전서 15:42-43, “죽은 자들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빌립보서 3:20-21,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성도들이 장차 누릴 천국과 영생의 영광은 그들이 현재 당하는 고난과 비교할 수 없이 크고 아름답고 영원할 것이다.

[22-25절]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養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救贖)을 기다리느니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는 성령의 역사로 거듭난 자들을 가리킨다. 모든 피조물과 거듭난 성도들은 함께 탄식하며 성도들의 몸의 구속(救贖) 즉 영광스런 부활의 몸을 기다리며 사모한다. 우리는 다 죄와 죽음과 불행이 영원히 사라질 그 날을 사모한다. 중생(重生)과 칭의(稱義)로 시작된 구원은 성화(聖化)로 진행되며 마침내 영화(榮化)로 완성될 것이다.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은 다 거듭하고 의롭다 하심을 얻고 거룩해지고 영광에 이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영광의 구원을 참음으로 기다려야 한다. 하나님의 구원은 결코 실패하지 않는 완전한 구원이며 그 영광은 확실하기 때문에, 우리는 고난 중에서도 낙심치 말고 그 영화의 단계를 참고 기다려야 한다.

[26-27절]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성령께서는 성도의 연약함을 도우신다. 우리가 어려운 일을 당할 때 하나님께 무엇을, 어떻게 기도할지 알지 못하지만, 이때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서 탄식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신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며,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생각을 아시며,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그 기도를 잘 들으실 것이다.

[28절]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우리가 알거니와’라는 말은 이 진리가 확실함을 가리킨다.  ‘모든 것’은 성도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가리킨다. 그것 안에는 낙심할 만한 일도 있고 실패한 일도 있고, 심지어 실수하고 범죄한 일도 있을 것이나, 그것들조차도 선을 이루는 데 사용된다. ‘선’은 일차적으로 성화(聖化)를 가리킨다. 성도의 일생은 영적 훈련과 성장의 과정, 즉 성화의 과정이다.

[29절]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미리 아신 자들’이라는 말은 구별하여 사랑하신 자들이라는 뜻이다. 선택은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주권적 행위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선택이 아닐 것이다. 주께서는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자들 곧 선택된 자들만 그에게 나아와 그를 믿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요 6:37, 44, 65).

본문은 예수께서 많은 형제들 중에 맏아들이 되셨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감히 예수님의 동생들이라고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30절]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과거시제).

사람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된다.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들은 장차 영화롭게 될 것이다. 성도들을 영화롭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미리 작정하신 바이며 지금 섭리하시는 바이다. 영광은 하나님의 구원의 목표이다. 이 일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셨고 이제 그를 믿는 자들이 의롭다 하심을 얻었고, 또 이 구원의 완성을 위해 성령께서 그들 안에 오셔서 도우시는 것이다.

[31-32절]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이 일’은 구원의 일, 특히 영화를 가리킨다. 우주의 최고 권력자이시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위하시는 자를 대적할 자가 누구이겠는가? 사람의 최대의 대적자는 사탄인데 심지어 사탄도 욥기 1장에 증거한 대로 하나님의 허락하신 범위 안에서만 활동할 수 있다. 사탄도 하나님께서 구원하신 성도들을 대적할 수 없는 것이다.]

(요 3:16; 롬 5:8).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선물인 아들을 주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하다면, 그 외의 것을 무엇이든지 주시지 않겠는가?

[33-34절]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의롭다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하나님이시도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의롭다 하심을 얻은 성도들을 송사하거나 정죄할 자는 아무도 없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죄 때문에 죽으셨고 다시 살아나심으로 속죄를 확증하셨고 승천하셔서 지금 하나님 오른편에서 그들을 위해 간구하시기 때문이다. 그의 간구하심은 그가 십자가 위에서 이루신 완전한 속죄와 의(義)를 계속 적용하시는 행위이다.

[35-37절]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赤身)[헐벗음]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성도들의 생활은 고난의 생활이지만, 성도들은 어떤 고난의 현실에서도 두려워하거나 낙심하지 않을 수 있다. 왜냐하면 환난이나 곤고나 괴롭힘이나 기근이나 헐벗음이나 위험이나 칼이나 그 어떤 것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비록 우리의 현실이 어렵고 힘들지라도,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승리할 수 있다. 성도들의 구원과 승리는 완전하고 확실하다. 성도들은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긴다. 하나님의 구원은 실패치 않고 끝까지 보존되고 성도들은 성화(聖化)를 이루고 마침내 영광에 이를 것이다.

[38-39절]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여기에 성도들의 넉넉한 승리를 단언한 이유가 있다. 그들은 영광의 구원에 이를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우리를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미 하나님의 선택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와 성령의 인치심에서 확증된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미 성도들에게 부어졌고 그 사랑에서 끊을 자는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구원의 완성인 영화는 확실하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어떤 고난의 현실에서도 낙심치 않고 담대히 행할 수 있다.

우리는 주 예수님 믿고 의롭다 하심을 얻은 성도들은 하나님의 양자(養子)가 되었다. 15-16절,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養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실 구원의 완성 곧 영화(榮化)는 확실하다. 우리 안에 오신 성령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신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모든 일들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며 성화를 이룬다.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자는 아무도 없다. 예수님 믿고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들에게는 영화(榮化)가 확실히 보장된다. 성도들은 넉넉히 이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소망과 확신을 가지고 성령을 따라 거룩한 생활을 힘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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