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celife365(주신삶에 감사하자)

728x90

[1절] 천국은 마치 품군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주인과 같으니.

본문에서 주께서 포도원으로 비유하신 천국은 신약교회를 가리킨다. 포도원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포도원 주인이 이른 아침에 나간 것은 포도원에 일할 일꾼들을 구하기 위해서이었다. 추수 때에는 일꾼이 부족하여 포도원 주인이 사람들이 많은 길거리나 장터에 나가 일꾼들을 구한다. 이른 아침은 시대적으로는 신약시대의 초기를 가리킬 것이나, 개인적으로는 사람들의 젊은 시절을 가리킬 것이다.

[2절] 저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군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3-7절] 또 제3시에 나가보니 장터에 놀고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저희가 가고 제6시와 제9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하고 제11시에도 나가 보니 [게으르게](전통본문)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가로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섰느뇨? 가로되 우리를 품군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가로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네가 상당하게 받으리라](전통본문) 하니라.

오후 3시나 5시에 포도원으로 부름을 받은 자들은 하루종일 특별히 하는 일 없이 놀기만 한 자들이었다. 오후 3시나 5시는 시대적으로는 신약교회시대의 마지막에 해당할 것이며, 개인적으로는 인생의 노년기에 해당할 것이다. 주께서는 포도원에 들어오지 않은 자들을 게으르게 노는 자들이라고 표현하셨다. 그가 우리를 부르시는 시점은 다양하지만, 공통점은 우리가 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포도원인 그의 교회에 들어와 일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께서는 우리에게 일평생 허송세월하다가 생을 마치겠는가고 물으신다. 그는 우리에게 이제라도 자신의 성화(聖化)와 영적 유익을 위해, 또 다른 이들의 구원과 영적 유익을 위해, 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하다가 생을 마치라고 말씀하신다. 그의 재림이 가까운 이 시대에도 말씀하시고 청년들뿐 아니라, 노인들에게도 말씀하신다.

[8-9절]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군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제11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오후 6시쯤이 되면 날이 저물고 하루 일과가 마친다. 포도원 주인은 청지기에게 “일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품삯을 주라”고 말했다. 제11시 즉 오후 5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았다. 그들은 1시간만 일했지만 하루 품삯인 한 데나리온을 받았다. 그 주인은 참 후한 사람이었다. 앞에서 말한 대로, 한 데나리온은 구원과 영광의 천국과 영생을 가리켰다고 본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 사역으로만 또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얻을 수 있다(롬 3:21-24).

[10-12절]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저희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받은 후 집주인을 원망하여 가로되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만 일하였거늘 저희를 종일 수고와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그들이 받는 품삯은 약속된 한 데나리온뿐이지, 그 이상의 것은 아니었다. 동일한 한 데나리온이 모든 일꾼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공로주의적 사고방식에 역행한다. 주께서는 모든 진실한 성도들에게 구원과 영광의 천국과 영생이라는 동일한 선물을 주실 것이다. 먼저 믿는 자에게나 나중 믿는 자에게나 동일한 구원과 천국과 영생을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름 받은 시대나 나이를 관계치 말고, 오직 하나님과 주 예수께 충성하면 된다.

[13-15절]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주인의 처사는 잘못한 것이 없었고 공의로운 것이었다. 왜냐하면 주인은 품꾼들에게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포도원에 늦게 온 자들에게도 똑같은 품삯을 주는 것은 주인의 뜻에 따른 것이었다. 주인의 재산을 주인의 뜻대로 하는 것은 아무런 잘못이 아니며, 또 포도원에 늦게 들어온 일꾼들에게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주는 것은 선한 일이지 악한 일은 아니었다.

[16절]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이는 많은 사람이 부름을 입으나 적은 사람이 택함을 입음이니라](전통본문).

나중에 일꾼된 자들은 이방인들, 먼저 일꾼된 자들은 유대인들을 가리키며, 또 나중에 일꾼된 자들은 신입교인들을, 먼저 일꾼된 자들은 오래된 교인들을 가리킬 수 있을 것이다. 성도들의 신앙생활에는 연수나 햇수보다 진지함과 성실함이 더 중요하다. 신약교회는 많은 사람들이 구원과 천국과 영생의 초청을 받지만,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하며 그 구원과 천국과 영생을 얻는 자들은 많지 않다.

[17-19절]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 하실 때에 열두 제자를 따로 데리시고 길에서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우매 저희가 죽이기로 결안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어 그를 능욕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박게 하리니 제3일에 살아나리라.

주께서는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세 번째로 말씀하셨다.

[20-21절] 그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미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엇을 원하느뇨? 가로되 이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여기에 모든 사람 속에 있는, 특히 어머니들 속에 있는 욕심, 자기 자녀가 남보다 더 나은 자, 더 높은 자가 되기를 원하는 욕심이 보인다. 그것은 세상적 욕심이요 헛된 명예심이며 허영심이다. 사람이 이런 세상적 욕심을 제거하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그러나 성도는 이런 욕심을 품지 않도록 자신의 마음을 단속해야 한다.

[22-24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가라사대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열 제자는 그 말을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해 분히 여겼다. 그것은 그들 속에도 같은 욕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남보다 높아지려는 욕심이 없는 곳에는 그런 유의 분노가 있지 않을 것이다.

[25-27절]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가라사대 이방인의 집권자들[통치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大人)들[고위 관리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모든 신자는 왕 같은 제사장들이며 한 목표인 주의 영광을 위해 서로 협력하는 자들이어야 한다.

교회 안에 큰 자가 있다면 남을 섬기는 자가 그러하다. 이 얼마나 세상과 다른 원리요 방식인가! 그러므로 누구든지 교회에서 큰 자가 되려고 하거나 으뜸이 되려고 하면, 다른 성도들을 겸손히 섬겨야 한다. 교회에서 훌륭한 자는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는 자가 아니고, 자기를 낮추고 겸손히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자이다.

[28절] 인자(人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代贖物)로 주려 함이니라.

 그는 섬김을 받으려고 세상에 오지 않으셨고 도리어 많은 사람들을 섬기시며 자기 목숨을 그들의 대속물로 주기 위해 오셨다. 주님의 사역의 핵심은 자신을 대속물로 주신 것이다. 이것은 그의 십자가에 죽으심의 의미이다. 그의 사역은 부수적으로 그의 낮아지심과 섬김을 보인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를 믿고 따른다면, 우리도 남을 섬기며 남을 위해 우리의 목숨도 바칠 각오를 해야 하는 것이다.

[29-30절] 저희가 여리고에서 떠나갈 때에 큰 무리가 예수를 좇더라. 소경 둘이 길가에 앉았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함을 듣고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니.

‘다윗의 자손’은 구약성경에 약속된 메시아를 가리킨다. 그 두 사람은 불쌍한 소경이었지만 놀랍게도 예수께서 하나님의 약속된 메시아라는 지식과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31절] 무리가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더욱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지라.

무리들은 그 불쌍한 소경들을 동정하기는커녕 그들을 꾸짖으며 “잠잠하라”고 말했다. 예수님을 좇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었던 그들은 그의 동정심을 갖고 있지 못했다. 소경들이 고침을 받는 데는 예수님 측근에 둘러서 있는 사람들이 도움을 주는 자들이 되지 못하여 오히려 방해거리이었다. 그러나 그 소경들은 더욱 소리질러 말했다. 주께 나아가는 자는 사람의 방해 때문에 낙심치 말아야 한다.

[32절]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저희를 불러.

소경들의 낙심치 않는 부르짖음은 마침내 주님의 관심을 끌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무엇을 받을 것을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기도하면, 그리고 낙심치 않고 계속 또 더욱 부르짖어 기도하면, 그가 그의 시선을 우리에게 돌리시고 우리의 기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실 것이다.

[33-34절] 가라사대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 가로되 주여, 우리 눈 뜨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민망히[긍휼히] 여기사 저희 눈을 만지시니 곧 보게 되어 저희가 예수를 좇으니라.

소경들의 소원은 분명하였다. 그들은 눈을 뜨기를 원하였다. 구체적 기도 제목은 확실한 기도 응답을 얻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셔서 그들의 눈을 만지셨다. 그러자 그들은 곧 보게 되었다. 주의 능력의 치료와 구원은 신속하고 완전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우리는 자신을 크게 여기지 말고 남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이며 그의 교훈을 실천하는 것이다. 섬기는 자가 큰 자이다.

우리는 우리의 어려운 소원을 긍휼과 능력의 주님께 구체적으로 아룀으로써 해결을 받을 수 있다. 기도는 성도의 특권이다. 우리의 소원의 목표와 방법이 바르다면, 우리의 간구는 응답받을 것이다.

 

 

이 글을 공유합시다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Talk kakaostory naver 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