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QT 로마서 5장 1~21절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칭의(稱義)의 결과)
[1절]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누리느니라].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디카이오덴테스, 과거분사)이라는 원어는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이 점진적이거나 반복적이지 않고 단회적임을 보인다. ‘누리자’라는 말(에코멘)은 전통사본들의 다수에는 ‘누리느니라’(에코멘 )고 되어 있다.
칭의의 결과 중 하나는 하나님과의 화목이다.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의 모든 죄가 용서되었고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것이다. 이제 우리는 담대히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으며,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는 큰 특권이며 복이다. 그것은 에녹과 노아와 욥처럼 하나님과 친밀히 교제하며 그와 동행하는 것이다(창 5:21-24; 6:9; 욥 29:4).
[2절]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믿음으로]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우리가 서 있는 이 은혜’는 칭의를 받은 은혜를 가리킨다고 본다. 예수님 믿고 구원 얻은 모든 사람은 이제 칭의를 받은 은혜 안에 서 있다. 칭의 받은 은혜가 곧 구원이요 생명이기 때문이다. 예수님 믿고 구원 얻는 것은 그를 통하여 죄씻음과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이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음이 없다면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3-4절]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鍊鍛)(도키메)[연단된 인격]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의롭다 하심을 얻은 성도는 평안할 때만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고, 환난 중에도 즐거워한다. 그것은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된 인격을, 연단된 인격은 소망을 이루기 때문이다. 환난이 성도의 신앙 인격을 단련하여 몸의 부활과 천국과 영생에 대한 그의 소망을 확실하게 만들기 때문에, 성도는 환난 중에도 오히려 기뻐할 수 있다.
[5절]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성도의 소망은 헛되지 않다. 성도의 소망이 확실한 까닭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되었기 때문이다. 성령께서 우리 속에 오심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진 것과 같다. 우리 안에 오셔서 영원히 거하시는 성령께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표이시며 확증이시다.
[6-8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이는]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善人)(투 아가두)[그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확증하셨음이니라].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은 얼마나 큰 사랑인가! ‘그 선인’은 앞에 말한 ‘의인’을 가리킨다고 본다. 죄인들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의 확증이었다.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일서 4:9-10,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9-11절]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의롭다 하심을 얻은 성도는 장차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으로부터 확실히 구원을 얻을 것이다. 이 구원의 확신은 성도의 기쁨의 근거가 된다. 사도 바울은 또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고 말한다. 칭의의 결과는 참으로 놀랍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救贖)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성도는 하나님과의 화목을 누릴 뿐 아니라, 또한 미래의 구원의 확실한 보증과 확신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한다. 성도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며 동행하며 살고 천국을 확신하고 소망하며 항상 기뻐하며 산다.
[12절]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에프 호)[이는](Thayer, NASB)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이르렀음이니라].
창세기 3장의 증거대로, 한 사람 아담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왔다. 아담의 첫 범죄는 아담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고 온 인류의 범죄이었다. 인류의 대표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인류는 죄인이 되었고 그 죄의 결과로 모두가 죽게 되었다.
[13-14절]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노릇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사람의 죽음의 원인은 죄이다. 율법이 없었던 모세 이전에도 사람들은 다 죽었는데, 그것은 모든 사람이 다 죄인이었기 때문이다.
[15-16절]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왜냐하면]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죽었을지라도]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으리라[넘쳤음이니라].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을 인하여 정죄(定罪)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dikaivwma)에 이름이니라.
한 사람 아담의 범죄로 많은 사람이 죽었으나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많은 사람이 살았고, 한 사람 아담의 범죄로 모든 인류가 죄와 정죄(定罪) 아래 있었으나 하나님의 은혜는 사람들의 많은 범죄에도 불구하고 그들로 하여금 의롭다 하심에 이르게 하였다.
[17절]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노릇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노릇하리로다.
한 사람 아담의 범죄로 죽음이 인류를 지배했으나,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의의 선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다. 이것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결과이다. 요한복음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주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생을 소유하고 있다.
[18절]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디 헤노스 디카이오마토스)[한 의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15절부터 18절까지 반복되는 말씀은 한 사람 아담의 죄가 어떻게 온 인류에게 전가(轉嫁)되었는지를 증거한다. 아담의 죄는 온 인류의 죄이었다. 이것이 원죄(原罪)이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죄인으로 태어난다. 이 원죄는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사실, 모든 사람이 죽는다는 사실, 또 모든 사람이 정죄되었다는 사실에서 확증된다.
그러나 정반대의 내용으로, 본문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의 의(義)가 어떻게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값없이, 은혜로 풍성히 넘치도록 전가(轉嫁)되었는지를 증거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는 ‘많은 사람을 대신한 속죄’이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그를 믿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과 영원한 생명을 풍성히 누리게 된 것이다.
[19절]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죄는 불순종이다. 죄악된 세계의 특징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에 대한 불순종이다. 순종은 의요 불순종은 죄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순종과 의를 요구하신다. 노아는 순종하는 의인이며 아브라함도, 모세도, 여호수아도 그러했다. 사람이신 예수께서는 하나님께 대한 순종의 최고의 모범이시다. 그는 창조주로서 피조물인 인간 부모에게 순종하셨고 율법을 주신 자로서 친히 율법을 준행하셨을 뿐만 아니라, 마침내 십자가에 죽기까지 아버지께 순종하셨다.
빌립보서 2:5-8,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20-21절]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노릇한 것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노릇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가 율법을 몰랐을 때는 죄가 적었으나 율법을 알게 되므로 우리는 우리의 많은 죄들과 우리 본성의 전적 부패성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죄가 많은 곳에 하나님의 은혜는 더욱 풍성했고 넘쳤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큰 죄사함을 받은 자는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된다(눅 7:47). 이제 우리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많은 죄사함을 얻었고 하나님의 완전한 의를 얻었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되었음을 깨달았다.
한 사람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인류는 다 죄인 되었고 정죄(定罪) 되었고 죽게 되었다. 아담은 한 개인일 뿐만 아니라, 온 인류의 시조(始祖)이며 언약의 대표자이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처음에 주셨던 명령 곧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는 명령은 인류를 대표하여 받은 명령 곧 행위언약이었다. 그 언약에서의 실패는 그 개인의 실패일 뿐 아니라, 인류 전체의 실패이었다. 그것이 원죄(原罪)라는 것이다.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아 신자들은 다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이것은 우리의 의롭고 선한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에 근거한 것이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으로 우리의 의를 이루셨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결과는 영원한 생명이다. 죄는 죽음이요 의는 생명이다. 죄의 결과는 죽음이었으나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에 근거하여 그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들이 영생에 이르는 것이다. 죄의 값은 죽음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영생이다(롬 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