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QT 사도행전 17장 1~34절 데살로니가, 베뢰아, 아덴에서 전도함
[1-3절] 저희가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바울이 자기의 규례[습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할 것을 증명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데살로니가는 마게도냐 지방의 수도이었다. 유대인들은 나라가 망한 후 온 세계에 흩어져 살면서 각 곳에 회당을 세웠다. 회당은 신약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발판이 되었다. 유대 나라의 멸망이 세계복음화의 발판이 된 것이다. 사람들은 실패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까지도 사용하셔서 그의 선한 뜻을 이루신다. 바울은 성경에서 그리스도께서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야 할 것을 증명하였다. 그것은 짐승 제물의 죽음, 피흘림, 불태움과, 이사야서와 시편의 구절들에 근거한 설명이었을 것이다(사 53:5-6; 시 16:10).
[4-9절] 그 중에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믿고] 바울과 실라를 좇으나 그러나 [믿지 않는](전통사본)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괴악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케 하여 야손의 집에 달려들어 저희를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으나 발견치 못하매 야손과 및 형제를 끌고 읍장들[성읍 관리들] 앞에 가서 소리질러 가로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야손이 들였도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하니 무리와 읍장들이 이 말을 듣고 소동하여 야손과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보(保)[보석금]를 받고 놓으니라.
데살로니가에서의 전도는 큰 결실을 거두었다.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들이 바울의 전하는 복음을 믿었고 바울과 실라를 따랐다. 믿음은 순종을 동반한다. 그러나 믿지 않는 유대인들은 바울 일행을 대적하며 소란을 피웠다. 하나님의 진리가 전파될 때 일어나는 분쟁은 불가피하다. 예수께서는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고 말씀하셨었다(마 10:34).
[10-12절]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저희가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유게네스)[마음이 고상하여서] 간절한 마음으로(메타 파세스 프로뒤미아스)[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詳考)[연구]하므로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베뢰아는 데살로니가에서 약 80킬로미터 떨어진 곳이었다. 바울과 실라는 그 밤에 도피하는 긴 여행을 해야 했다. 그들은 베뢰아에서도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전했다. 베뢰아 사람들은 편견이나 선입견, 닫힌 마음, 부정적이고 비뚤어진 마음을 가지지 않았고 소박한 마음, 열린 마음, 모든 준비된 마음,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말씀을 받았다. 그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말씀을 받았을 뿐 아니라, 그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연구했다.
[13-14절]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이 바울이 하나님 말씀을 베뢰아에서도 전하는 줄을 알고 거기도 가서 무리를 움직여 소동케 하거늘 형제들이 곧 바울을 내어 보내어 바다까지 가게 하되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거기 유하더라.
하나님의 일이 힘있게 이루어질 때에 사탄의 방해도 계속되었다. 하나님의 종들의 열심도 컸지만, 악한 자들의 열심도 대단했다. 교회 사역은 영적 전쟁과도 같다. 베뢰아에서 많은 결신자들을 얻었다고 기뻐한 것은 잠깐이었고 사도 바울은 또다시 피신해야 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고 말씀하셨었다(마 10:23). 전도자들은 고난을 각오해야 한다.
[15절] 바울을 인도하는 사람들이 데리고 아덴까지 이르러 바울에게서 실라와 디모데를 자기에게로 속히 오게 하라는 명을 받고 떠나니라.
베뢰아에서 아덴까지는 바닷길로 400 내지 500킬로미터 가야 했다. 바닷길은 항상 풍랑의 위험을 무릅써야 했다(고후 11:23-27).
[16-22절] 바울이 아덴에서 저희를 기다리다가 온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분하여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저자[시장, 광장]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 어떤 에비구레오[에피큐러스]와 스도이고[스토아]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혹은 이르되 이 말장이[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뇨 하고 혹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또 몸의 부활 전함을 인함이러라. 붙들어 가지고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기를 우리가 너의 말하는 이 새 교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겠느냐? 네가 무슨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라 하니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 되는 것을 말하고 듣는 이외에 달리는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NASB, NIV).
바울은 아덴 사람들의 우상숭배를 보고 마음에 분노하였다. 그들은 종교와 철학에 관심이 많았고 그들의 우상숭배는 그런 관심에서 나왔다고 보인다. 종교와 철학의 문제들은 비현실적이게 보이지만, 실상 매우 중요한 문제들이다. 세상과 사람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사람의 삶의 의미와 목적은 무엇인가? 선과 악은 무엇이며 죽음은 무엇인가? 이러한 문제들은 옛날부터 종교와 철학의 주제이었다.
[23절]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의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아덴 사람들은 많은 신들을 섬기고 있었지만, 참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없었다. 그들이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을 만든 것은 하나님에 대한 자신들의 지식의 한계를 인정한 것이다.
[24-25절]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범사에 생명과 호흡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참 하나님께서는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이시며 그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자이시다. 창조주이신 그는 피조세계에 제한되지 않는 자, 곧 초월자이시다.
[26-29절]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그 안에서](KJV, NASB, NIV) 살며 기동하며[움직이며] 있느니라[존재하느니라]. 너희 시인 중에도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이와 같이 신의 소생이 되었은즉 신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인류의 역사와 거주 환경 속에서 그의 손길을 어느 정도 깨닫게 하셨다. 그는 사람들과 멀리 떠나 계시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실상 하나님 안에 살고 움직이며 존재하고 있다. 모든 사람은 다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의 세계 안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참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비현실적이거나 사치스런 무엇이 아니고 지극히 현실적이고 인생의 삶에 꼭 필요한 것이다.
[30-31절]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피스티스)[믿음]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제 모든 사람에게 회개하라고 명하신다. 회개는 하나님 없이 살았던 불경건하고 죄악된 삶을 청산하는 것이다. 사람이 회개치 않으면 자신의 죄 때문에 영원한 멸망을 받을 것이지만, 회개하는 자는 영생을 얻는다. 또 심판은 사람이 회개해야 할 이유이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심판 날에 사람들에게 그들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물으시고 공의의 보응을 내리실 것이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심판자로 세우셨고 그를 부활시킴으로써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가 되게 하셨다. 그의 부활은 그에 대한 확실한 증거이다.
[32-34절] 저희가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혹은 기롱[조롱]도 하고 혹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이에 바울이 저희 가운데서 떠나매 몇 사람이 그를 친하여 믿으니 그 중 아레오바고 관원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
아덴에서의 전도의 결과는 크지 않았으나, 우리는 그 수를 귀히 여겨야 한다. 우리의 전도로 몇 명, 아니, 단 한 사람이 구원받는다 할지라도 그 한 영혼은 주의 말씀대로 천하보다 귀하다(마 16:26).
우리는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해야 한다. 온 세상에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이 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가 하나님께서 세우신 심판자이심을 확증한다.
죄인들은 성경에 근거하여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구원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진리는 성경에 밝히 증거되어 있고 우리는 성경에 근거해 주 예수 그리스도를 확신할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거나 조롱하는 자가 되지 말고 베뢰아 사람들처럼 하나님 말씀을 진지하게 받고 과연 그것이 그러한지 성경을 자세히 읽고 연구함으로써 믿음에 굳게 서야 한다. 11-12절,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고상해서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