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QT 마가복음 7장 1~37절 수로보니게 여인
[1-5절] 바리새인들과 또 서기관 중 몇이 예루살렘에서 와서 예수께 모였다가 그의 제자 중 몇 사람의 부정한 손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보았더라[보고 흠을 찾았더라](전통본문). (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이 장로들의 유전[전통]을 지키어 손을 부지런히 씻지 않으면 먹지 아니하며 또 시장에서 돌아와서는 물을 뿌리지[물로 씻지] 않으면 먹지 아니하며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지키어 오는 것이 있으니 잔과 주발과 놋그릇[과 침상들]을 씻음이러라.) 이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묻되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유전[전통]을 준행치 아니하고 부정한[씻지 않은]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
예수께서는 씻지 않은 손으로 떡 먹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셨으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그것을 크게 여겼고 거기에서 흠을 찾았다.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왜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지 않는지 예수님께 물었다. 그들의 지적은 그의 제자들에 대한 비난일 뿐 아니라 예수님 자신에 대한 비난이었다고 보인다. 또 그것은 자기들의 경건 생활이 예수님과 그 제자들보다 낫다는 것을 은근히 과시하는 교만한 태도도 나타낸다고 보인다.
[6-9절] 가라사대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이는]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遺傳)[전통] [즉 주발과 잔을 씻음과 기타 너희가 행하는 여러 가지 일들]을 지키느니라[지킴이니라]. 또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유전[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주께서는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라는 이사야서의 말씀을 인용하시며 그들의 외식의 악을 지적하셨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 대신에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았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킴도 없었고 사람의 전통이나 붙들고 외식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겉모습으로만 경건하고 의로워 보였던 것이다.
[10-13절]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가로되 사람이 아비에게나 어미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제 아비나 어미에게 다시 아무것이라도 하여 드리기를 허하지 아니하여 너희의 전한 유전[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 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하시고.
예수께서는 그들이 사람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폐한 예를 드셨다. 율법에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고 명령되었으나(출 20:12; 21:17), 장로들은 사람이 하나님께 무엇을 드렸으면 부모에게 드리지 않아도 된다고 가르쳤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과 교훈에 반대된다. ‘고르반’은 예물이라는 뜻이다. 헌금이 부모님에 대한 자녀들의 물질적 보답의 의무를 면제시키지 않는다. 하나님을 사랑하였다고 해서 부모를 공경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의 기준은 사람의 전통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 즉 성경뿐이다. 사람의 교훈은 그 자체로 권위를 가지는 것이 아니고 단지 그것이 성경적일 때에만 권위가 있다. 우리의 신앙생활의 기준은 오직 성경뿐이다.
[14-19절] 무리를 다시 불러 이르시되 너희는 다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하시고 무리를 떠나 집으로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그 비유를 묻자온대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도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 무엇이든지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함을 알지 못하느냐? 이는 마음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배에 들어가 뒤로 나감이니라. 하심으로 모든 식물을 깨끗하다 하셨느니라.
외식자들은 외적 정결만 힘썼다. 그러나 밖에서 사람에게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한다. 하나님 앞에서 정결과 부정결은 도덕적 문제이지 단지 위생적 문제가 아니다.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오히려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들이다.
주께서 무리를 떠나 집에 들어가셨을 때 제자들이 그 비유에 대해 묻자 그는 무엇이든지 밖에서 들어가는 것은 마음에 들어가지 않고 배에 들어가 뒤로 나감으로 사람을 더럽힐 수 없다고 설명해주셨다. ‘뒤’라는 원어(아페드론)는 ‘변소’를 뜻한다. 사람이 먹는 것들은 유익한 영양분들은 몸에 다 흡수되고 나머지는 다 배출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먹는 것들 자체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음식물 자체는 더러운 것이 아니고 깨끗하다.
[20-23절] 또 가라사대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아셀게이아)[음탕, 방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아프로쉬네)[미련함] (BDAG)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21-22절의 전통본문은 “간음, 음란, 살인, 도둑질, 탐욕”의 순서이다.마음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악한 생각들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 그 악한 생각들은 간음, 음란, 살인, 도둑질, 탐욕, 악독, 속임, 음탕, 흘기는 눈, 훼방, 교만, 미련함 등이다. 사람은 죄로 심히 부패되어 있어서 육신적 욕망에 지배를 받고 있다. 예레미야 17:9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고 말하였고, 예레미야 13:23은, “구스인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할 수 있느뇨?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고 했다. 아담의 자손인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참된 의와 선을 행할 수 없다.
[24절]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와 시돈] 지경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더라.
예수께서는 갈릴리 해변 마을들에서 전도하신 후 일어나셔서 거기를 떠나 두로와 시돈 지경으로 가셨다. 두로와 시돈 지경은 갈릴리 서북쪽 지중해 연안 지역이다. 그는 하나님의 긍휼과 구원이 필요한 곳은 어디나 방문하셨다. 그는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였으나 숨길 수 없으셨다. 그가 병자들을 고치고 기적들을 행하셨다는 소문은 그곳까지도 퍼져 있었다. 그러나 그런 소문은 그의 사명을 왜곡시킬 위험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아무도 모르게 하려 하셨다. 그는 병자를 고치거나 기적을 행하러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고, 죄인들의 죄를 대속하고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것이기 때문이다.
[25절] 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 엎드리니.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 엎드렸다. 모든 것을 아시는 주께서는 그 여자를 아셨고 그가 올 것도 알고 계셨을 것이다. 은혜와 긍휼이 풍성하신 주께서 그 여자와 그의 병든 딸을 위해 그곳에 가셨는지도 모른다.
[26절]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주시기를 간구하거늘.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수리아-페니키아] 족속이었다.마태복음 15:22는 그가 ‘가나안 여자’라고 말한다. 두로와 시돈 지방은 이스라엘 백성의 거주 지역이 아니고 이방인들의 지역이었다. 그는 이방 여자이었다. 그는 예수께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주시기를 간구했다. 기도는 구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15:22에 보면, 그 여자는 예수께 나와서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라고 말했다. 그에게는 예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된 메시아라는 지식과 믿음이 있었다. 마태복음에 보면, 예수께서는 처음에는 대답지 않으셨다. 그러자 그는 예수께 절하며 “주여, 나를 도우소서”라고 다시 말했다.
[27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예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인들을 자녀들과 개들에 비교하셨다. 그의 처음 반응은 매우 무정하게 보였다. 그의 말씀은 그 여자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말씀이었다. 누가 우리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 때 우리의 태도는 어떠하겠는지? 주님의 말씀은 그 여자를 시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여자는 그 시험을 잘 통과하였다.
[28절]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그 여자는 마음의 상처를 받는 대신에 매우 겸손하게 대답하였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언약과 특권과 복을 누리나 이방인들에게는 그런 것들이 없으며 또 이방인들에게는 경건도, 도덕성도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했다. 마태복음에 보면, 그는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는다고 말하였다(마 15:27). 이것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가져야 할 바른 마음가짐이다. 사람은 자신이 피조물이요 부족한 죄인임을 알아야 한다. 그 여자는 겸손하게 그러나 간절하게 딸의 병고침을 간구하였다.
[29-30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
마태복음에는, 주께서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고 말씀하셨다(마 15:28). 그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보니 놀랍게도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고 아이는 치료되어 있었다.
[31-32절] 예수께서 다시 두로 지경에서 나와 시돈을 지나고 데가볼리 지경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시매 사람들이 귀먹고 어눌한[말을 더듬는] 자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원문은, “예수께서 다시 두로와 시돈 지경에서(전통사본) 나와 갈릴리 호수에 이르러 데가볼리 지경 안으로 오시매”이다. 두로와 시돈은 갈릴리 호수 서북쪽 바닷가의 도시들이다. 주께서는 그곳을 떠나 다시 갈릴리 호수 쪽으로 내려오셨다. 데가볼리 지경은 갈릴리 호수 남쪽의 일부와 남동쪽의 요단강 건너편 일부를 가리킨다.
[33-34절]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귀에 넣고 침 뱉아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예수께서 그를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신 것은 사람들이 그가 이 세상에 온 목적을 오해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그가 뒤에 사람들을 경계하시며 아무에게라도 말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을 볼 때 알 수 있다. 그가 세상에 오신 목적은 병자를 고쳐주시기 위함이 아니고 죄인들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함이었다.
예수께서는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에바다”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열리라”는 뜻이다. 그는 하늘을 향하여 탄식하셨다. 하늘은 하나님께서 계신 곳이다. 예수께서는 기도하실 때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시곤 하셨다(막 6:41; 요 11:41; 17:1). 그는 하나님을 향하여 탄식의 기도를 드리신 것이라고 본다. 그것은 죄의 결과로 인한 사람의 불행을 보시고 탄식하신 것이다.
[35-37절] 그의 귀가 열리고 혀의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더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경계하사 아무에게라도 이르지 말라 하시되 경계하실수록 저희가 더욱 널리 전파하니 사람들이 심히 놀라 가로되 그가 다 잘하였도다. 귀머거리도 듣게 하고 벙어리도 말하게 한다 하니라.
예수께서는 그 병자를 데려온 자들에게 경계하시며 아무에게라도 말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나 그가 경계하실수록 그들은 더욱 널리 전파하였다. 사람들은 심히 놀라, “그가 다 잘하였도다, 귀머거리도 듣게 하고 벙어리도 말하게 한다”고 말하였다. 예수님의 하신 일들은 다 잘하신 것뿐이다. 그는 참으로 좋으신 구주이시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시다. 그는 중풍병자, 나병환자, 앉은뱅이, 소경, 귀신들린 자 등 각종 병자들을 고쳐주셨다. 심지어 죽은 자도 살려주셨다. 마태복음은 예수께서 행하신 기적들을 20개, 마가복음은 18개, 누가복음은 20개, 요한복음은 8개 각각 증거한다. 그의 기적들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풍성히 증명한다. 우리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확신해야 한다.
구주 예수께서는 오늘날도 죄인들을 구원하신다. 사도 시대 이후에 외적 기적은 중단되었을지라도, 내면적 기적, 곧 죄인들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는 일, 심령의 눈과 귀가 열려 성경말씀을 이해하고 입이 열려 하나님께 찬송하고 기도하며 전도하는 일은 항상 일어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체험하며 살고 있다. 그것은 외적 기적보다 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이다. 부활하신 주께서는 오늘도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좋은 일을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인들을 예수 그리스도께 데리고 나와 구원받게 하기를 힘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