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QT 마가복음 4장 1~41절 씨 뿌리는 비유(바람과 파도를 잔잔케 하심)
[1-8절]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서 가르치시니 큰 무리가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배에 올라 바다에 떠 앉으시고 온 무리는 바다 곁 육지에 있더라. 이에 예수께서 여러 가지를 비유로 가르치시니 그 가르치시는 중에 저희에게 이르시되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치 못하였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와 육십 배와 백 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
예수께서는 바다 위에 배에서 앉아 가르치셨고 온 무리는 바다 곁 육지에 있었다. 그는 어느 곳에서나 기회 있는 대로 가르치셨다. 그는 설교하는 장소에 구애받지 않으셨다. 그는 여러 가지를 비유로 가르치셨다. 비유는 일상적 사건이나 사실을 들어 하나님의 진리를 증거하는 것이다. 그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하셨다. 예수께서는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말씀하셨다. 육신의 귀는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듣고 깨닫는 영적인 귀는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은혜 주시는 자들만 가질 것이다.
[10-12절] 예수께서 홀로 계실 때에 함께한 사람들이 열두 제자로 더불어 그 비유들[그 비유]을 묻자오니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이는 저희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시고.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진리를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이라고 표현하셨고, 또 ‘너희’와 ‘외인(外人),’ 즉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과 버려두신 자들을 구별하셨다.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확실히 제한적이다. 비유는 예화와 다르다. 예화는 사람의 이해를 돕는 이야기이지만, 비유는 하나님께서 버려두신 자들이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게 하는 뜻이 있다. 비유에는 표면적 내용과 이면적 내용이 있다. 그래서 불신앙과 죄악으로 그 마음이 굳어진 자들은 예수님의 비유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주께로 돌아오지도 못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깨닫는 마음의 눈이 열렸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해야 한다.
[13-15절] 또 가라사대 너희가 이 비유를 알지 못할진대 어떻게 모든 비유를 알겠느뇨?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 말씀이 길가에 뿌리웠다는 것은 이들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단이 즉시 와서 저희에게[그들의 마음에](전통본문) 뿌리운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
예수께서는 그 비유를 설명해주셨다. 씨를 뿌리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뿌리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씨처럼 생명이 있다. 마른 씨를 땅에 심으면 싹이 나듯이, 평범하게 보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사람 속에서 하나님의 생명 역사(役事)가 일어난다. 하나님의 말씀을 뿌리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며(마 13:37) 또 그 후에 그의 사도들과 오늘날까지 목사들과 전도자들이 그 직무를 이어받는다.
길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나 깨닫지 못하고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의 마음에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을 가리켰다. 주께서는 말씀을 뿌리는 일을 하시지만, 사탄은 그 말씀을 빼앗는 일을 한다.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싫어하며 그 말씀을 듣는 자들이 그것을 깨닫지 못하게 방해한다.
[16-17절] 또 이와 같이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이들이니 곧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간[잠깐]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둘째로, 씨가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그 속에 뿌리가 없어서 잠깐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 곧 넘어지는 것을 가리켰다. 세상에는 질병이나 궁핍 등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다. 또 특히 성도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인한 환난과 핍박도 있다. 우리의 믿음의 견고함을 위해 성경을 주셨으므로(눅 1:1-4; 딤후 3:14), 우리는 성경을 읽고 묵상함으로써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확고한 지식과 믿음을 가져야 한다.
[18-19절] 또 어떤 이는 가시떨기에 뿌리우는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되 세상의 염려와 재리[재물]의 유혹(아파테)[속임](KJV, NASB, NIV)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치 못하게 되는 자요.
셋째로, 씨가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되 이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그 말씀을 막아 결실치 못하게 되는 것을 가리켰다. 누가복음 8:14는 거기에 ‘쾌락’을 추가하였다. 재물은 사람에게 행복을 주고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처럼 사람을 속인다. 그러나 실상 재물은 환난 날에 사람들을 구원하지 못한다(잠 11:4; 습 1:18; 겔 7:19).
[20절]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와 육십 배와 백 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
넷째로, 씨가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하여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는 것을 가리켰다. 누가복음 8:15는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진지하게 듣고 깨닫고 확고한 지식과 믿음을 가지고 인내하며 그것을 지켜 선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 사람은 그의 충성의 정도대로 차등의 열매를 맺을 것이다.
[21-23절] 또 저희에게 이르시되 사람이 등불을 가져오는 것은 말 아래나 평상 아래나 두려 함이냐? 등경[등잔대] 위에 두려 함이 아니냐? 드러내려 하지 않고는[드러나지 않을] 숨긴 것이 없고 나타내려 하지 않고는[나타나지 않을] 감추인 것이 없느니라.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말’은 열 되짜리 큰 통을 뜻하고, ‘평상’은 침상을 뜻하고, ‘등경’은 등잔대를 뜻한다. 등불은 큰 통 아래나 침상 아래 두지 않고 등잔대 위에 둔다. 이처럼, 빛 되신 하나님의 말씀은 어두운 세상을 밝히라고 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사람에게 전파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복음은 은밀하게 전해질 것이 아니고 세상 만민에게 공개적으로 전해지고 알려져야 한다. 그것은 오늘날 성경책에 기록되어 세상 만민에게 공개되어 있고 모든 사람이 읽고 듣고 확인할 수 있다.
[24-25절] 또 가라사대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요 또 [듣는 너희는] 더 받으리니 [이는]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빼앗길 것임이니라].
주께서는 “이는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길 것임이니라”고 말씀하셨다. ‘있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깨달음과 믿음이 있는 자라는 뜻일 것이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더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말씀에 대한 깨달음과 믿음이 없는 자는 이미 가진 지식과 은혜도 빼앗길 것이다. 우리는 들은 말씀이 떠내려가지 않도록 삼가며 굳게 지켜야 한다(히 2:1; 고전 15:1-2).
[26-29절] 또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저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그 어떻게 된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코르토스)[잎]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니라.
사람이 씨를 땅에 심으면 어느 날 씨에서 싹과 가지와 잎이 나와 자라서 이삭이 생기고 그 이삭이 충실한 곡식이 되면 낫을 대어 추수를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 곧 복음의 전파를 통해 세상에서 시작되며 이 세상에 심겨져 잎이 나며 성장하는 천국은 지상의 교회를 가리킨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온 세상에 충만히 이루어지고 그의 택한 백성이 다 구원 얻게 되면, 그때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이 있을 것이다.
[30-32절] 또 가라사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꼬.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나물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
하나님의 나라의 성장성은 겨자씨 비유를 통해 다시 한번 더 증거된다. 겨자씨는 씨들 중에서 심히 작은 씨이지만, 심긴 후에 자라면 모든 채소보다 더 커지며 큰 가지를 내므로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된다. 겨자씨 나무는 키가 3미터 이상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천국, 즉 복음 전파와 교회 설립은 처음에는 심히 보잘것없는 모습으로 시작되지만 나중에는 놀랄 만큼 심히 커질 것이다. 그러나 공중의 새가 깃들인다는 말씀은 세계 교회가 심지어 마귀와 악령들이 그 안에 자리를 잡을 만큼 커질 것을 암시하신 것 같다. 그렇다면 그 점도 교회 역사를 통해 이미 성취되었다. 오늘날 기독교회 안에는 마귀와 악령들의 종인 많은 이단자들과 거짓 목사들이 들어와 있다.
[33-34절] 예수께서 이러한 많은 비유로 저희가 알아들을 수 있는 대로 말씀을 가르치시되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다만 혼자 계실 때에 그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하시더라.
예수께서는 많은 비유들로 말씀을 가르치셨다. 비유는 그의 설교 방식의 한 특징이었다. 비유들은 표면적 내용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으나, 그 이면적 의미는 해석이 필요하였다. 예수께서는 혼자 계실 때에 그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해주셨다. 오늘날 성경은 수수께끼 같은 책이 아니고 어려운 부분이 해석된, 이해할 만한 책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주관적으로 그 뜻을 해석하려 하지 말고, 성경 자체가 밝히 보이는 뜻, 특히 성경의 전체적인 뜻을 파악해야 한다. 우리는 성경의 진리의 개요를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사람의 죄악됨,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사역, 회개와 믿음으로 말미암은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 경건과 도덕성의 새 삶에 관한 것이다.
[35-38절] 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저희가 무리를 떠나(아펜테스)[보낸 후에](KJV)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부딪혀 배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예수께서는 고물[배 뒷쪽]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날이 저물 때에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셨다. 제자들은 무리를 보낸 후에 예수님을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갔다. 다른 배들도 함께했다. 그런데 큰 광풍이 일어났고 물결이 부딪혀 배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다. 제자들이 주님과 함께 가는데도 큰 풍랑이 있었다. 이 세상에는 마귀의 시험이 많다. 세상의 주권자는 하나님 한 분이심에도 불구하고 세상에는 하나님의 허락하심 속에서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이 많다.
제자들은 그를 깨우며 말했다.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제자들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아직 알지 못하고 그를 단지 ‘선생님’으로 부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 날 밤 그들은 예수께서 신적 구주이심을 알게 될 것이다.
[39-41절]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저희가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고 하였더라.
예수께서는 깨셔서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에게 말씀하셨다. “잠잠하라, 고요하라.” 주 예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해졌다. 바람과 바다가 인격이 아닌데도, 주 예수의 말씀에 순종하였다. 자연만물도 예수님께 순종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영계(靈界)와 인간계뿐 아니라 자연계도 다스리신다. 이와 같이, 인생의 삶에 일어나는 크고 작은 풍랑을 제어할 자가 사람들 중에서도 아무도 없지만, 주 예수께서는 그것을 제어하실 수 있다. 그는 오늘도 살아계셔서 우리를 도우시는 주님이시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심히 두려워하며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고?” 하고 서로 말하였다. 이 사건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증거하는 것이다. 바람과 바다를 명령하여 복종시키는 그는 단순히 사람이 아니고 신성을 가지신 자, 곧 사람이시며 하나님이신 자이시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모든 문제의 해결자가 되신다. 주의 제자들은 그와 함께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고 있었는데 큰 풍랑을 만났다. 세상에는 사람이 예기치 못하는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이 있다. 그것은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히 믿는 자들에게도 생기며 참된 교회에도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큰 풍랑을 잔잔케 하셨다. 그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시다(히 13:8). 그는 오늘도 살아계신 주님이시다. 그는 오늘도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하시고 도우시는 구주이시다. 그는 우리를 자연재해로부터 구원하실 수 있다. 또 그는 우리의 건강과 경제를 지켜주시고 도와주실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중심으로만 살아야 한다. 우리는 모든 악을 멀리하고 구주 예수 그리스도만 믿고, 또 성경을 주야로 묵상하며 시시때때로 그에게 나아가 감사하며 죄를 고백하고 버리기를 결심하며 우리의 모든 소원을 아뢰어야 하고, 또 성경에 증거된 하나님의 교훈의 모든 말씀을 다 믿고 소망하고 다 힘써 실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