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QT, 요한복음 11장 1~57절 죽은 나사로를 살리심(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1-2절] 어떤 병든 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형제 마르다의 촌[마을]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씻기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비[남동생]러라.
마르다는 마리아의 언니이었던 것 같다. 베다니를 ‘마리아와 그 형제 마르다의 마을’이라고 표현한 것은 마리아가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긴 일로 더 잘 알려졌기 때문일 것이다.
[3-5절]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가로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예수께서는 후에 나사로를 ‘친구’(필로스 fivlo")[사랑하는 자]라고 부르셨다(11절). 예수께서는 우리가 무엇이든지 그에게 구하면 주겠다고 약속하셨다(요 14:13-14). 야고보는 신자가 병들었을 때 하나님께 기도할 것을 교훈하였다(약 5:13-16). 나사로는 그 병으로 죽었지만 그 죽음이 끝이 아니고 다시 살아날 것이다.
[6-8절]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그 후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유대로 다시 가자 하시니 제자들이 말하되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
하나님께서는 조급하지 않으신다. 그는 시간이 많으시다. 그러므로 우리도 조급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영생할 자들이다. 하나님께서는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때가 언제인지를 아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조급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의 인도하심을 구하고 참고 기다려야 한다. 제자들은 유대로 가자는 주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다. 주님의 인도하심은 인간편에서 잘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고 그때 우리는 당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에라도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의 인도하심이 최선의 길임을 믿고 인내하며 그를 따라야 할 것이다.
[9-10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낮이 열두 시가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
[11-14절]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가라사대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제자들이 가로되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하더라. 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저희는 잠들어 쉬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생각하는지라.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죽음을 잠자는 것에 비유하신 것은 죽은 사람의 영적 상태를 의미하신 것이 아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에서 보듯이, 죽은 영혼도 의식을 가진다(눅 16장). 죽은 자는 단지 몸의 상태가 잠자는 것과 비슷하다. 그것은 부활의 소망을 의미한다. 잠자는 자를 깨울 수 있듯이, 주께서는 마지막 날 죽은 자를 깨우실 것이다. 성도의 죽음은 슬픈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죽어 없어지는 멸절의 사건도 아니다. 성도의 죽음은 마지막 부활의 소망을 가진 채로 잠드는 것이다.
[15-16절]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신대 디두모라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
예수께서는 나사로를 통하여 제자들이 자신의 신성(神性)을 믿게 하기를 원하셨다. 그들은 이미 예수님을 믿었으나 더 믿고 확신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 중 한 사람인 도마는 다른 제자들에게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고 말했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것은 주님을 믿는 태도가 아니었다. 그에게는 담대함이 없었고 오직 죽음의 두려움만 있어 보였다.
[17-19절]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깝기가 한 오리쯤 되매 많은 유대인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 오라비의 일로 위문하러 왔더니.
‘5리’라는 원문은 약 3킬로미터이다. 죽은 지 나흘이나 되었으니 그 몸은 부패되기 시작했을 것이다(39절). 모든 사람은 병에 걸리며 마침내 죽는다.
[20-24절] 마르다는 예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원문)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 마르다가 가로되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
마르다는 예수께서 ‘주님’이시며 그에게 병고침의 능력이 있음을 믿었다. 그는 예수께서 이제라도 하나님께 구하면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줄을 알았다. 마르다는 지금도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었다. 그는 기도를 들으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었다. 또 그는 그의 동생이 마지막 날 부활 때에 다시 살 줄을 안다고 말했다. 그는 죽은 자의 부활도 믿었다. 마르다는 예수님의 신적 능력, 하나님의 기도 응답, 그리고 죽은 자들의 부활을 믿었다. 그의 믿음은 매우 좋았다.
[25-26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결코](원문)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예수님은 부활과 생명이 되신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생명의 능력이 있으시다. 그는 죽은 자들을 살리셨고 그 자신이 죽은 지 삼일 만에 다시 사실 것이다. 그는 부활과 영생이시다.
예수께서는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를 믿는 자는 복된 부활과 영생에 참여한다. 또 그는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결코] 죽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 있을 때 믿어야 그 생명에 참여함을 말씀하신 것이다. 죽은 후에는 기회가 없다. 그러나 사람이 살아서 그를 믿으면 몸의 복된 부활과 영생에 참여할 것이다. 또 그를 믿는 자는 순종할 것이다. 물론 사람이 그를 믿는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다.
[27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페피스튜카)[믿었나이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그리스도 곧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로 믿었다.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공통적 믿음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된 것이며 여기에 영혼의 구원이 있다.
[28-32절] 이 말을 하고 돌아가서 가만히 그 형제 마리아를 불러 말하되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하니 마리아가 이 말을 듣고 급히 일어나 예수께 나아가매 예수는 아직 마을로 들어오지 아니하시고 마르다의 맞던 곳에 그저 계시더라.
마리아와 함께 집에 있어 위로하던 유대인들은 그의 급히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고 곡하러 무덤에 가는 줄로 생각하고 따라가더니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와서 보이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가로되 [주여,](원문)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남동생]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33-34절] 예수께서 그의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의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사 가라사대 그를 어디 두었느냐? 가로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통분히 여기다’는 원어(엠브리마오마이)는 ‘크게 요동하다’는 뜻이며, ‘민망하다’는 원어(타랏소의 수동태)는 ‘괴롭다’는 뜻이다. 예수께서는 사랑의 심정을 가진 자이셨다. 그가 심령이 크게 요동하시고 괴로워하신 까닭은 그의 사랑하는 나사로가 죽었고 그의 죽음을 인해 여형제들이 슬피 울고 유대인들도 우는 것을 보셨기 때문이며, 또 본래 영생할 수 있는 인간이 범죄함으로 죽게 된 불쌍한 처지를 슬퍼하신 때문일 것이다.
[35-36절]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어떻게 사랑하였는가 하며.
예수께서는 눈물을 흘리셨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을 함께 나누시는 사랑과 동정을 가진 자이셨다. 여기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매우 인간적인 모습을 본다. 그것이 하나님의 형상의 면모이며 성화의 모습이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선한 사람이 되고 선한 말과 선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딛 2:14).
[37-39절] 그 중 어떤 이는 말하되 소경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더라.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통분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예수께서 가라사대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가로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예수께서는 친구 나사로가 죽지 않게 하실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다. 인간은 한번은 다 죽게 되어 있다. 이 세상에서 한번 죽는 죽음을 막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그러나 이 경우는 주께서 나사로를 다시 살리실 것이다. 그것은 일반적인 일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증거하는 특별한 예이었다. 나사로의 시체는 무덤 속에 놓여 있었고 죽은 지 나흘이 되었으므로 벌써 냄새가 났다. 나사로는 확실히 죽었다. 그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 물론 그의 회생은 영원하지 않을 것이다.
[40-42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 [그러므로 그들은 그 죽은 자가 놓여 있는 곳에서](전통본문)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예수께서는 아버지와 항상 기도로 교통하셨고 아버지께서는 그의 기도의 말을 들어주셨다. 아버지와 아들은 매우 친밀하셨다.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라는 그의 말씀은 그가 나사로를 살려주실 것을 기도하신 일을 가리키는 것 같다. 그는 아버지의 허락 속에서 나사로를 살리실 것이다. 또 이 일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43절]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예수께서는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너라” 하고 부르셨다. 그는 나사로의 몸을 떠나갔던 영혼을 부르셨고 잠든 몸을 깨우셨다. 그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를 부르셨거나 아버지께 호소하신 것이 아니었고 자신의 권위로 그를 부르셨다.
[44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베’라는 원어(케이리아)는 ‘붕대’ 혹은 ‘수의’를 가리킨다. 죽은 나사로는 수의를 입은 채로, 얼굴이 수건에 싸인 채로 나왔다. 그는 예수께서 부르신 그때에 살아났다. 아직 수의나 수건을 벗을 겨를도 없었다. 이것은 기적이었다.
[45-46절] 마리아에게 와서 예수의 하신 일을 본 많은 유대인이 저를 믿었으나 그 중에 어떤 자는 바리새인들에게 가서 예수의 하신 일을 고하니라.
기적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고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방편이었다. 요한복음 20:30-31,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나 믿지 않는 자들도 있었다. 똑같은 사건 앞에서도 믿는 자들이 있고 믿지 않는 자들이 있었다.
[47-48절] 이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으고 가로되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만일 저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저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하니.
예수님의 기적 행하심은 객관적 사실이었기 때문에 그의 원수들도 그것을 부정하지 못했다. 단지, 그들은 심령이 굳어서 그를 믿지 않았을 뿐이다. 그들은 예수를 추종하는 자들이 많아지면 로마인들이 그들을 반역자로 간주하여 다시 그 땅을 멸망시킬 것이라고 우려하였다.
[49-57절] 그 중에 한 사람 그 해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저희에게 말하되 너희가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도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지 아니하는도다 하였으니 이 말은 스스로 함이 아니요 그 해에 대제사장이므로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 이 날부터는 저희가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유대인 가운데 드러나게 다니지 아니하시고 여기를 떠나 빈 들 가까운 곳인 에브라임이라는 동네에 가서 제자들과 함께 거기 유하시니라.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우매 많은 사람이 자기를 성결케 하기 위하여 유월절 전에 시골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더니 저희가 예수를 찾으며 성전에 서서 서로 말하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뇨? 저가 명절에 오지 아니하겠느냐 하니 이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누구든지 예수 있는 곳을 알거든 고하여 잡게 하라 명령하였음이러라.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를 제거할 구실을 찾고 있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사람은 참 믿음을 가질 수 없다. 유대 지도자들은 많은 믿을 만한 증거들을 들었음에 불구하고 예수님을 믿지 않았고 오히려 그를 죽이려고 모의하였다.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의 선물이다. 창세 전에 택한 자들만 부르심을 입고 하나님께서 계신 것과 우리가 죄와 진노 아래 있는 것과 구주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