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QT 요한복음 7장 1~53절 생수의 강을 주심
[1-2절] 이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다니시고 유대에서 다니려 아니하심은 유대인들이 죽이려 함이러라.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유대인들이 그를 죽이려 했던 것은 5장에 기록된 대로 유대인의 명절 때 예루살렘에서 38년된 병자를 안식일에 고쳐주신 일로 인한 것이었다. 그때 이후에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 하였고 그 사실을 아신 예수께서는 유대에서 다니기를 꺼려하셨다. 사람이 자신을 죽이려 하는 자들을 피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다.
[3-5절] 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의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 이는 그 형제들이라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예수께는 동생들이 있으셨다. 그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 등이었다(마 13:55; 막 6:3).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지 않으시면 사람은 누구나 예수님을 바로 알 수 없다. 그의 동생들이라도 그를 알지 못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지 않으시면 단순히 교회에 다니는 것이, 단순히 성도의 자녀로 태어났다는 것이 예수님을 믿게 하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2:3에서 말하기를,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야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믿을 수 있다.
[6-9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못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행사를 악하다 증거함이라. 너희는 명절에 올라가라. 나는 내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으니 이 명절에 아직 올라가지 아니하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갈릴리에 머물러 계시니라.
[10-13절] 그 형제들이 명절에 올라간 후 자기도 올라가시되 나타내지 않고 비밀히 하시니라. 명절 중에 유대인들이 예수를 찾으면서 그가 어디 있느냐 하고 예수께 대하여 무리 중에서 수군거림이 많아 혹은 좋은 사람이라 하며 혹은 아니라 무리를 미혹하게 한다 하나 그러나 유대인들을 두려워하므로 드러나게 그를 말하는 자가 없더라.
어떻게 이렇게 정반대의 견해가 가능할까? 그러나 진리에 대해서는 항상 이런 현상이 있었다. 하나님의 참 선지자들은 경건한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참된 종들이라고 인정을 받았으나 불경건한 대중들에게는 배척과 핍박을 받았고 심지어 죽임을 당했다.
[14-16절] 이미 명절의 중간이 되어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사 가르치시니 유대인들이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초막절은 7일간 지킨다(레 23:34). 연중 3대 절기인 유월절, 맥추절, 초막절에는 모든 남자들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하나님께 경배하여야 했다(출 23:17). 예수께서도 예루살렘에 올라가 초막절 중간에 성전에 들어가셨다. 여기에서 성전은 성전의 뜰을 가리킨다. 유대인들은 그에 대해 기이히 여기며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고 말했다. 성경이 증거하는 대로, 예수님은 ‘목수의 아들’(마 13:55) 혹은 ‘마리아의 아들 목수’(막 6:3)로 불렸다. 그는 어릴 때부터 집에서나 회당에서 배운 것 외에 따로 배우신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인간의 지혜와 지식은 어디로부터 나오는가? 가르칠 능력은 누가 주시는가?(출 4:11-12)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안다면 그의 지혜로운 가르치심에 전혀 놀라지 않을 것이다.
[17-18절]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
[19-20절]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 하느냐? 무리가 대답하되 당신은 귀신이 들렸도다. 누가 당신을 죽이려 하나이까?
구약성경의 처음 다섯 권은 모세가 기록하였다(신 31:24; 수 1:7). 우리는 모세오경을 비롯하여 모든 성경의 진실성을 믿는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 중에는 모세의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었다. 유대인들은 도리어 예수님을 죽이려 하였다. 불경건과 부도덕은 사람을 영적 무지와 흑암 속으로 몰아가고 있었고 그래서 그런 사람들은 예수님을 바로 알지 못하고 그를 핍박하고 죽이려 하고 있었다.
[21-24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한가지 일을 행하매 너희가 다 이를 인하여 괴이히 여기는도다. 모세가 너희에게 할례를 주었으니 (그러나 할례는 모세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조상들에게서 난 것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안식일에도 사람에게 할례를 주느니라. 모세의 율법을 폐하지 아니하려고 사람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는 일이 있거든 내가 안식일에 사람의 전신을 건전케 한 것으로 너희가 나를 노여워하느냐?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의 판단으로 판단하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행하신 한가지 일이란 여러 달 전 명절 때 안식일에 예루살렘 양문 곁 베데스다 연못의 한 행각에서 38년된 병자를 고쳐주신 일을 가리킨다. 유대인들은 그 일 때문에 그를 이상하게 여겼고 그를 배척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이 행하신 그 일은 예수님을 비난하고 배척할 이유가 되지 못한다. 예수님의 선한 행위는 오히려 그의 교훈의 진리성을 확증하였다.
할례는 아브라함 때에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의 표이었지만, 모세 때에 율법으로 규정되었다. 레위기 12:3에는, “[사람이 아이를 낳으면] 제8일에는 그 아이의 양피를 벨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38년된 병자의 전신, 즉 영육을 포함한 사람 전체를 건전케 하셨다. 그의 병고치심과 구원은 할례보다도 더 나은 일이었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하는 것은 잘못이며 큰 죄악이었다. 그들은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로 판단해야 했다. 그들이 병고침과 구원의 선한 일을 행하신 예수님을 비방하고 죽이려는 것은 심히 악한 일이었다.
[25-27절] 예루살렘 사람 중에서 혹이 말하되 이는 저희가 죽이고자 하는 그 사람이 아니냐? 보라, 드러나게 말하되 저희가 아무 말도 아니하는도다. 당국자들은 이 사람을 참으로 그리스도인 줄 알았는가? 그러나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아노라.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는 어디서 오시는지 아는 자가 없으리라 하는지라.
예루살렘 사람들 중 일부는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를 죽이려 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악한 자들의 악한 계획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다 드러난다. 또 사람들이 예수가 어디서 왔는지 안다고 말한 것은 그의 육신적 출생과 자란 배경을 두고 한 말이다. 그들은 예수가 갈릴리 나사렛 동네 출신이며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지 못하였다.
[28-30절]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외쳐 가라사대 너희가 나를 알고 내가 어디서 온 것도 알거니와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로라. 나를 보내신 이는 참이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 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니라 하신대 저희가 예수를 잡고자 하나 손을 대는 자가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예수께서는 자신의 육신의 출생과 배경에 대한 사람들의 지식을 어느 정도 인정하셨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스스로 온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보내심으로 왔으며 자신이 그에게서 왔다고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예수를 잡고자 했으나 손을 대는 자가 없었다. 그것은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일은 하나님의 때가 있다. 그때가 아니면, 사람의 악한 계획이라도 실행되지 않을 것이다.
[31절] 무리 중에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고 말하되 그리스도께서 오실지라도 그 행하실 표적이 이 사람의 행한 것보다 더 많으랴 하니.
그의 행하신 표적들과 기적들은 복음서들에 기록되어 있다. 역사상 예수께서 행하신 기적들만큼 기적을 행한 자는 없었다.
[32절] 예수께 대하여 무리의 수군거리는 것이 바리새인들에게 들린지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를 잡으려고 하속들을 보내니.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아마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믿는 자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을 우려하여 그를 잡으러 하속들을 보내었다.
[33-36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하신대 이에 유대인들이 서로 묻되 이 사람이 어디로 가기에 우리가 저를 만나지 못하리요 헬라인 중에 흩어져 사는 자들에게로 가서 헬라인을 가르칠터인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한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니라.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간다’는 말씀은 그의 승천을 가리켰다. 그가 승천하시면, 사람들은 더 이상 그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것이다. 또 회개치 않는 자들은 그가 계신 천국에 들어갈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지 못했고 그의 승천과 천국에 들어가심을 상상하지 못하였다.
[37절]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39절]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40-44절] 이 말씀을 들은 무리 중에서 혹은 이가 참으로 그 선지자라 하며 혹은 그리스도라 하며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 성경에 이르기를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로 또 다윗의 살던 촌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며 예수를 인하여 무리 중에서 쟁론이 되니 그 중에는 그를 잡고자 하는 자들도 있으나 손을 대는 자가 없었더라.
이 말씀을 들은 무리 중에서 그가 참으로 그 선지자라 또는 그리스도라 하는 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이미 은혜를 받은 자들이었다. 그들의 심령은 밝아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믿음의 문 앞에 서 있는 자들이다.
[45-46절] 하속들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로 오니 저희가 묻되 어찌하여 잡아오지 아니하였느냐? 하속들이 대답하되 그 사람의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때까지 없었나이다 하니.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께로서 왔고 자기를 믿는 자는 목마름을 해소할 것이며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말했다. 유대의 역사 속에 그렇게 말한 자는 없었다. 인류의 역사에도 없었다.
[47-49절] 바리새인들이 대답하되 너희도 미혹되었느냐? 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이가 있느냐?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
‘미혹되었다’는 말은 ‘속임을 당하였다’는 뜻인데, 예수님이 무리를 속이는 자이셨는가? 그들이 예수님을 반대한 이유는 타당성이 없었다. 그들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지 못했다. 오히려 예수께서는 성경으로 자신을 증거하셨고 부활하신 후에는 예언들과 예표들을 제자들에게 자세히 설명해주셨다(눅 24:27).
[50-53절] 그 중에 한 사람 곧 전에 예수께 왔던 니고데모가 저희에게 말하되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판결하느냐? 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상고하여 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 하였더라. 다 각각 집으로 돌아가고.
유대 지도자들이 성경대로 판단하기를 원한다면, 그를 판단하기 전에 그의 말에 어떤 거짓이나 잘못이 있는지, 또 그의 행한 바들에 어떤 도덕적 악이 있는지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성경적 판결을 하는 자들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들이나 행동들에는 정죄받을 악이 없었다. 단지 그들에게는 갈릴리 지방에 대해 멸시하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의 말은 정당하지 않았다. 요나는 갈릴리 출신이었고(왕하 14:25; 수 19:13) 나훔도 그러한 것 같다. 확실히, 바리새인들은 성경에 무지했든지, 의도적으로 성경을 왜곡하였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는 유대 땅 갈릴리 나사렛에서 목수 요셉의 아들로 자라셨지만, 실상 처녀 마리아에게 성령의 능력으로 잉태되어 탄생하신 자이시며 그의 근본은 영원 전부터이시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들 곧 하나님이시다. 그는 참된 신성을 가지신 자이시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바로 그가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들 곧 신성(神性)을 가지신 자이심을 아는 것을 말한다.
예수님은 자신이 주장하신 바로 그 분이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곧 참된 신성(神性)을 가진 자이시며 인류를 죄와 사망과 지옥 형벌로부터 구원하실 유일한 구주이시다.